토론

[벌거벗은 남자들] ‘남페미’를 보고 놀란 당신에게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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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남성성' 의제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입니다.

남성들과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자는 취지로 활동하고 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남성들과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자는 취지로 활동하고 있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스탑 럴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유명한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즐겨 해본 이에게는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럴커(Lurker)'는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유닛의 종류 중 하나로, 땅을 파고 들어가 숨어 가시가 달린 촉수로 지상에 있는 적 유닛을 공격한다. 여기에 '스탑(stop)'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적이 충분히 가까이 오기까지 공격을 멈춰놓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공격하는 방식을 '스탑 럴커'라고 부른다.

갑자기 게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얼마 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SNS에 달린 한 댓글 때문이다. 여성신문 정기 연재 글을 공유한 게시물에 어떤 이가 남성 페미니스트를 '스탑 럴커'에 비유했다. 지금은 여성들이 듣기 좋은 말만 잔뜩 하고, 나중에 결혼하면 본색을 드러내 정반대로 변할 거라는 말이었다.

댓글을 읽고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어떻게 이런 비유를 쓸 수 있을까? 신기하다!"였고, 두 번째 생각은 "정말 남성 페미니스트는 결혼하면 변할까?"였다. 그리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달한 궁금함이 있었다. 그는 왜 댓글을 달았을까? 수많은 온라인 글 중에 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글에 반응했을까?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


모든 인간에게는 두려움이 있다. 나와 다른 존재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 마치 학창 시절 수능을 위한 영어 공부를 실컷 하고도 길거리에서 외국인이 말을 걸면 어찌할지 피해다니는 그 두려움 말이다. 익숙지 않은 존재는 부정적 감정을 일으켜 나의 존재를 흔든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아마 댓글을 쓴 이에게 남성 페미니스트는 처음에 그런 존재였으리라. 눈 크게 뜨고 찾아봐도 주변에 하나 없는 독특한 존재. 그래서 어색하고 낯설고, 경계하게 되는 새로운 인간상이었을 테다.

남성들이 자신과 다른 존재를 두려워하는 현상은 게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남성 집단에서 게이는 무척 양가적 존재이자 모호한 개념으로 여겨진다. 다수의 남성들이 여성을 사랑하는 이성애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보통의 기준을 흔들어 놓는 이의 등장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런 현상은 남성 청소년의 학교 모습에서 쉽게 관찰된다.

필자의 고등학교 학창 시절, 목소리가 얇고 남성 친구들에게 애교가 많은 학생들은 어느 순간 '게이'라고 불렸다. "넌 게이 같다"라는 표현은 "넌 나와 달라"의 대체어이다. 남성 청소년들은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집단적 놀림을 택한다. 달라서 느껴지는 어려움과 두려움을 다수라는 숫자 속에 파묻어 가리고 자신을 안심시킨다.

이렇듯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싶어지는 욕구로 이어진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일각의 시선이 대표적이다. 그들이 그러한 방식을 택한 이유에 대해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대신에 시위의 결과물이 나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었는지부터 고려한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당연한 걸까?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사실 두려워하는 존재를 재빠르게 판별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이기적인 본성 때문이 아니라, 잡아먹히고 싶지 않은 포유류 호모 사피엔스의 본능에 가깝다. 야생의 상황에서는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렇게 행동한 우리의 조상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그러나 낯설다고 배척하는 대응 방법이 현대사회에서 옳은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본능대로 움직이는 인간의 운집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공동체와 규칙을 만들었다. 야생의 삶 속에서는 내가 오늘 타인을 때리면 밤에 자다가 칼에 찔려 죽을 위험이 몇 배로 증가한다. 그래서 수많은 경험 끝에 인간은 최소한의 규칙을 정했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지킬 공동체를 구성하고 대표를 뽑았다. 그렇게 인간은 '사회화'됐다.

게이에 대한 집단적 따돌림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비난은 이런 면에서 전혀 인간적이지 못하다. 더 나은 공동체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오히려 역행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개인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는 '도덕'을 개발했고 최소한의 기준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평등한 존재로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 가장 인간적이며 함께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인 셈이다.


변화의 가능성에 투자하기


접해보지 못했던 존재에 대한 두려움, 그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선입견으로 내리는 판단 그리고 따돌림과 괴롭힘까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촉발된 사회적 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서울시의 서울퀴어문화축제 준비위원회 대관 취소, 교제 살인을 보도하며 가해자의 인적 훌륭함을 기사 제목으로 사용하는 언론, 군대 훈련병에게 군기 훈련을 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군인의 신상 털기. 각각의 사건들은 각자 다른 배경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라면 남성의 일상적 습관을 바꾸는 데에 투자해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존재를 마주했을 때 그를 깊게 알고자 하는 노력으로, 선입견이 개입하려고 할 때 억지로라도 반대의 모습을 발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따돌림과 비난의 언어 대신 관심과 질문의 언어를 사용하는 노력으로 바꿔야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이념이나 가치관보다 일상을 살아내는 태도이다. 거부하고 싶지만, 기꺼이 마주하고 바꾸려는 삶의 의지 말이다. 


김태환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은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남자들> 시리즈는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합니다.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김태환 활동가가 작성하여 여성 신문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여성신문 원문 주소 : https://n.news.naver.com/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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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스탑럴커..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비유를 통해서 상상하니까, 이야기하는 내용이 잘 들어오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