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벌거벗은 남자들] '안전 이별'은 정말 여성만의 문제일까?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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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남성성' 의제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입니다.

최근 한 의대생 남성이 교제 중이던 여자 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살해의 원인을 묻는 말에 그는 여자 친구의 '헤어지자'는 말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답했다.

언론은 앞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교에 다니는 남성이 왜 끔찍한 범죄를 실행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 창에서는 가해자의 신상과 외모를 들먹이며, 살해의 원인을 가해자 개인에게서 찾고 있었다.

필자의 여성 지인은 이 사건과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지인은 교제 중이던 남성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후, 스토킹과 협박을 1년 가까이 받았다.

"너밖에 없다"는 말과 "다시 안 만나주면 죽어버린다"라는 협박 그리고 집 앞에 찾아오기까지. 전화번호를 차단당한 이후에는 회사 동료의 휴대전화를 빌려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지인은 필자와의 약속 시간이 길어져 귀가가 늦어질 때 '그 남자가 집 앞에 와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대한민국 여성은 일상이 불안하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023년 발표한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분노의 게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남성에게 살해 피해를 당한 여성은 최소 449명(살인 138명, 살인미수 311명)이다.

19시간에 1명 꼴로 여성이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또한 범죄의 동기로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가 1위를 차지한다.

ⓒfreepik


문제의 원인은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남성문화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교제폭력 또는 교제살인은 왜 일어나는 걸까? 통제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위계적 남성문화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학창 시절 남성 청소년들의 위계질서를 생각해 보라. 학기 초부터 서열을 세우기 위한 분위기가 자연스레 조성된다.

특히 힘, 외모, 성적 등으로 서열이 결정되는데, 이때 힘으로 충돌하는 남학생들은 물리적 싸움으로 서열을 결정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위 말해 "친구끼리 싸우기도 하면서 크는 거야"의 사례다. 남성은 누군가를 통제하고 폭력을 가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학창 시절부터 몸으로 배우고 눈으로 익히는 셈이다.

여성을 트로피로 여기는 남성문화도 교제폭력 또는 교제살인의 원인으로 작동한다. 뛰어난 외모의 여성을 '가지고' 싶어 하는 남성들의 연애 문화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남성인 나의 능력을 키우고, 돈을 많이 벌고, 외모를 가꾸어 여성을 취득하는 방식의 연애 또는 결혼 서사는 각종 미디어의 드라마와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노력으로 무언가를 얻어냈을 때, 그 트로피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 같은 (또는 그렇게 착각하는) 남성들의 인식이 한국 남성 특유의 '억울함' 서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성을 평등하고 자유로운 한 명의 주체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남성들은 여성과 평등하게 관계 맺는 방법에 대해 무지하다.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하는 법,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는지 파악하는 법 등을 충분히 배우거나 훈련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남성의 친밀한 관계 범주 안에 여성이 들어왔을 때 의견이 다르거나 갈등적 상황이 발생하면 일방적 설득 또는 폭력적 방법만을 해결책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안전한 이별'은 모두에게 당연한 일상의 권리다. 그러나 여성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 노출되는 일이 잦다 보니, 법과 제도가 닿지 못하는 일상의 영역에서도 안전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더 이상 교제폭력과 교제살인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남성문화를 바꿔야 한다.

연인 간의 다툼을 개인 간의 사적인 문제로만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 개인과 개인은 관계로 연결되고, 사회는 수많은 관계로 구성된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하는 관점을 넘어서야 변화가 시작된다.

남성의 연애 문화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여성을 리드하고 관계를 주도하는 남성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리는 분위기는 때때로 여성의 사생활을 통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교제 중인 여성을 통제하는 행위는 상대방을 나와 평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옷을 입는지, 누구와 만나는지에 대해 일일이 짚어야 하는 관계라면 이미 위계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를 민감하게 느끼고 알아챌 수 있는 관점을 탑재해야 비로소 평등하고 안전하게 교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남성에게도 유익하다. 여성이 교제 관계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자연스레 남성에게도 전해진다. 관계는 늘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걱정을 줄이고 행복한 교제를 하고 싶지 않은가? 사랑이라 불렀지만 사실 폭력이었던 언행이 있는지 성찰하고,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을 때 남성 또한 긍정적인 교제를 경험할 수 있다.

파괴적인 교제살인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싸움 정도로 치부하는 파트너에 대한 옷단속, 시간단속, 외부 관계를 통제하려는 행동 등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

일상과 폭력은 분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꾼, 찐사랑으로 섣불리 포장하기 보다 그 이면에 파트너에 대한 지배가 없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폭력을 사랑으로 부르지 않아야만이 이 교제살인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은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남자들> 시리즈는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합니다.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김태환 활동가가 작성하여 여성 신문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여성신문 원문 주소 : https://n.news.naver.com/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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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폭력은 분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꾼, 찐사랑으로 섣불리 포장하기 보다 그 이면에 파트너에 대한 지배가 없는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라는 문장에 공감합니다. 서로의 행복을 위한 사랑이라면 이정도의 성찰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을 트로피로 여기는 문화가 아직까지도 주위에 많이 보이는데요, 글을 열심히 공유해서 알려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