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아저씨, 그런 식으로는 내 표 못 받아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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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남성성' 의제로 활동하는 페미니즘 단체입니다.


MBC '무한도전' 캡처 ⓒMBC

필자는 이대남이다. 부산이 고향이지만 인생의 1/3을 서울에서 살고 있다. 반골 기질이 있어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고 자유와 다양성을 추구한다. 동시에 대한민국 육군 장교 출신이며 안보에 있어 보수적인 편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번 총선, 어디에-누구에게 투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고민이며, 내 친구의 고민이자, 많은 주변 사람의 말이다.

나는 큰 걸 바라지도 않는다. 획기적인 기후 정책이나 신냉전에 맞설 새로운 외교-안보 노선을 제시하는 정치인을 기대하지 않은지는 이미 오래됐다. 그저 공인답게 품격 있고, 사회적 참사에 슬퍼할 줄 알며, 타인을 차별하지 않는, 그저 조금 더 공공선을 지향하는 인물(정당)이면 표를 줄 생각이었다.

ⓒPixabay


하지만, 내가 안일했다. ‘이재명 후보가 차은우보다 잘생겼는지’, ‘대파 가격이 한 단인지 한 뿌리인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내가 이상한 멀티버스 지구에 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모 당의 후보는 지역을 여성의 가슴에 빗대 성적 대상화를 하질 않나. 다른 당의 후보는 ‘연예인 성적 대상화’부터 ‘난교’ 발언 등 처참한 성인지 감수성으로 논란을 빚다 공천이 취소되기도 했다.

큰 걸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혐오 표현’을 하지 않는 것도 기성 정치엔 매우 어렵고 큰 일인가 보다.

김연웅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는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본인 제공


나도 선거를 뛰어봤다. 유권자들을 설득하며 정책을 제안하고, 나라는 인물을 세일즈 해 본 경험이 있기에 선거의 어려움을 안다. 이기기 위해 애쓰다 보면 보다 대중적인 정책을 고민하게 되고, 더욱 자극적인 멘트로 연설을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넘어선 안 될 ‘선’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공인의 책임이 있고, 선출직 후보자의 품위라는 게 있다. 그리고 그 전에 인간으로 해야 할 도리가 존재한다. 그 선을 넘으면 ‘괴물’이 되는 것이다.

2차 가해를 저지르거나, 피해자를 탓하고 공격했던 전력이 있는 인물들을 떳떳하게 후보로 내세우는 주요 정당을 보며 정말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가해 전력과 검증 부실에 대한 국민과 당원의 비판을, 오히려 ‘우리 편’이라며 옹호하거나 감싸는 행태였다.

비판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낙마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끝내 피해자에게는 단 한 문장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괴물’이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왜 정치는 혐오를 놓지 못하나.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여성과 소수자, 장애인과 참사 피해자에 대한 혐오를 늘어놓아도 제대로 된 제재나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나아가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과 비판을 불러오더라도, ‘상대편’을 잘 공격하는 일이면 오히려 승승장구 하게 되니 너도나도 괴물이 되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러한 ‘대결 정치’와 ‘혐오 정치’를 해결할 희망은 없는 걸까. 우린 이대로 훌리건과 헤이러에게 이 사회를 맡기고 자포자기해야 하는 걸까.

3·8 세계 여성의 날의 날을 맞은 8일 여성들이 “성폭력 2차 가해자 버젓이 공천하는 4·10 총선 뒤집어엎자”고 외치며 행진했다. ⓒ여성신문


아니다. 극약 처방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대결을 부추기는 정치 구조를 개혁하는 일일 테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다양성에 투표하는 일’이다.

현역 정치인의 대다수는 여성도, 소수자도, 장애인도, 피해자나 약자도 아닌 ‘기득권 중년 남성’이다. 당장 현 21대 국회만 봐도 여성 비율은 19%에 불과하고, 2030 청년 비율은 5%가 채 안 된다. 그에 비해 5060 정치인은 무려 82%에 육박한다.

만약 국회가 중년 남성과 같은 숫자의 여성과 소수자와 장애인과 다양한 사회적 약자로 구성된다면, 그때도 함부로 이들을 대상화하고 혐오하는 표현이 난무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1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모의개표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수검표 실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색빛 국회가 무지갯빛으로 다양해진다면, 더욱 획기적인 기후 정책과 사회적 안전망 확립부터 자살 문제와 지역 불균형 문제 해결 그리고 성평등 사회 실현과 디지털 전환까지 수많은 시급한 의제들을 ‘자기 일’처럼 다룰 일꾼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들에게 대결 정치는 사치다. ‘자기 일’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당신이라면, 혹은 대결 정치와 혐오 정치에 질려버린 당신이라면, 이번 총선 투표 테마로 ‘다양성 있는 국회’를 적극 제안한다.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김연웅 활동가가 작성하여 여성 신문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여성신문 원문 주소 : https://n.news.naver.com/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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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직접 출마해보신 경험을 이야기해주셔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큰 걸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혐오 표현’을 하지 않는 것도 기성 정치엔 매우 어렵고 큰 일인가 보다." 공감되네요.
약자도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하는 게 투표인데, 정치인들이 너무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