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전세사기 피해자 연속기고] 3. 저는 사기꾼의 빚을 대신해서 갚고 있습니다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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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더 안전한 살 곳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2023년 2월 28일,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남긴 말입니다. 그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습니다. 피해자들의 죽음, 절규, 투쟁으로 2023년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제대로 된 피해 구제와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피해 소식이 터져나오고, 기존 피해자들은 빚으로 빚을 돌려막거나 빚을 더 내서 피해주택을 떠안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4·10 총선을 앞둔 지금도 제대로 된 피해 구제 공약과 대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직접 호소하고자 합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공약과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관련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답해주세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피해를 회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보이고 있다. 위원회 측은 이날이 전세사기 첫번째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라며 피해자를 위한 조속한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눈물 보이는 전세사기 피해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보이고 있다.
위원회 측은 이날이 전세사기 첫번째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지 1주기가 되는 날이라며 피해자를 위한 조속한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저는 전세사기 피해자이자 '선순위 임차인'입니다. 이는 피해주택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 순위로 배당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제3자가 피해주택을 낙찰받으면 낙찰자로부터 모든 보증금을 회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선순위 피해자'는 손쉽게 전세사기 피해 회복이 가능한 걸까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현실입니다.

주택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던 시절이 지나고 우리들 모두 깡통전세, 업계약 등으로 시세보다 많은 보증금과 이자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경매 투자자 입장에서 이는 큰 부담일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시세가 2억인 주택을 경매로 사려는데, 추가로 낙찰자에게 승계되는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3억을 인수해야 해서 2억은 배당으로 받더라도 추가로 1억을 더 임차인에게 지급해야 한다면 시세보다 1억이 비싼 3억을 주고 낙찰을 받으시겠습니까? 저라도 입찰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선순위 피해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피해주택을 셀프 낙찰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정부가 제시한 지원대책은 바로 '경락자금' 대출과 '특례채무조정'입니다. 경락자금이란 경매낙찰 시 필요한 자금을 말하는 것으로 여러 대출 상품들이 나와있는 상태입니다.  특례채무조정은 HF(한국주택금융공사)와 SGI(서울보증보험)의 보증으로 대출을 받은 피해자가 피해주택 경공매 이후에도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 경우 보증기관인 HF와 SGI가 대출금을 우선변제하고 피해자는 이를 최장 20년간 무이자로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즉, 경락자금 대출을 받아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계속 내거나 특례채무조정을 통해 임대인이 갚아야 할 빚을 긴 시간에 걸쳐 갚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나마 경매 신청 시 낙찰 대금에서 보증금 금액만큼은 대금을 지급한 것으로 간주하는 '상계신청'이 가능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선순위 피해자들에게 남은 것은 원치 않았던 피해주택과 임대인이 갚아야 할 '빚'에 추가 '빚'까지 떠안는 일인 셈입니다. 

전세사기라는 곪아터진 상처가 제대로 치료받지도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데 정부와 국회는 '빚'이라는 '빨간약'만 처방하고 있습니다. 기존 전세대출에 또 새로운 대출을 받거나 대출로 대출 이자를 갚으라는 그 잘난 '빚+빚' 정책이 지금의 전세사기 특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빚더미 정책이나마 지원을 받으려 해도 또 다른 난관이 있습니다. 바로 SGI(서울보증보험)의 무지막지한 행태입니다. 


모든 것은 SGI의 비공개 공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지난해 12월 SGI 측이 은행권에 보낸 공문 내용 일부

▲ 지난해 12월 SGI 측이 은행권에 보낸 공문 내용 일부

SGI의 전세대출은 대출 실행 전 임대인에게 '질권설정'을 진행합니다. 질권이란 한 마디로 돈을 받을 권리입니다. 이 질권은 등기부등본에도 기재되지 않고 보증서로서만 존재합니다. 질권이 설정되면 경매 배당 시 선순위 임차인보다도 먼저 배당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낙찰자가 확정되고 경매가 거의 종료되는 '배당기일' 직전까지도 배당요구(질권행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알기 어려웠습니다. SGI나 대출을 받은 은행에서 설명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한 번 생각해봐주십시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서 피해주택이 경매에 넘어갔고, 도저히 보증금을 받을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최소한이라도 피해를 보전하고자 경매에 참여한 피해자의 입장을 말입니다. 이 피해자는 경락자금 대출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특례채무조정만이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남은 마지막 희망은 보증금과 낙찰 대금을 상계처리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당장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이라도 확보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이자로 조금씩 대출금을 갚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행이 뒤늦게 배당요구를 하는 경우, 피해자의 보증금은 상계처리가 불가능해집니다. 경매가 이미 진행된 만큼 입찰보증금(낙찰가의 10%)도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잃어버린 보증금을 어떻게든 구해와서 현금으로 일시납하지 않는 한 다시 해당주택의 경매에도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즉, 또 다시 대출을 받거나 집을 포기하거나입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된 것은 작년 11월 경이었습니다. SGI는 당시 전세사기 피해의 경우 당시 질권자인 은행이 질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SGI가 은행이 가입한 보험금을 지급할 것이라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서 말한 특례채무조정 제도를 이용하는 데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경매 개시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은행에서 배당요구를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SGI는 공문을 통해 은행에 엄포를 놓은 것입니다. 은행이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 피해자가 전액을 배당받으면 이는 은행의 책임이므로 은행의 책임 소재를 따져보아 지급했던 보험금을 재청구할 수 있다, 전세사기피해주택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배당기일까지 배당요구를 하라는 경고였습니다. 이런 공문을 받은 은행 입장에서 어떻게 배당요구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이 공문은 은행에게만 배포된 비공개 자료여서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피해자 누구도 저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은행에 변제할 보험금 지급을 줄여보겠다는 악덕한 심보를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공문 한 장에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선순위이면서 다른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 피해자들에게는 특례채무조정 제도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그것을 틀어막은 것입니다. 최저가로 낙찰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 다른 대출을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을 하는 분도 있었지만 그조차 어렵습니다. 공문 내용을 미리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얼마나 더 긴 세월을 경매에 매달리라는 것입니까? 또 고금리 대출을 더하라는 말입니까? 8회차, 10회차, 또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유찰을 반복하며 올라가는 경매비용 역시 큰 부담입니다. 이미 긴 시간을 피말라가며 기다렸던 피해자들에게는 온전히 버텨내기 힘든 시간입니다. 

그동안 많은 전세사기 피해자 분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선순위 임차인 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SGI에게 묻고 싶습니다. 특례채무조정 하나만 바라보고 버텨온 사각지대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아닙니까? 선순위 임차인도 같은 피해자입니다.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마시기 바랍니다.

SGI는 전세사기 특별법 취지에 맞게 질권설정의 계약이라는 이유로 은행에 피해자에 대한 배당요구를 하도록 종용해서는 안 됩니다. 비공개 공문에 대한 입장을 철회하고 은행 역시 배당요구, 채권신고를 철회하여 피해자들이 낙찰대금으로 상계신청을 진행하고 채무조정이 가능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미 대다수 선순위 피해자들은 돌려받지 못한 사기꾼의 빚을 대신해서 갚고 있습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투잡, 쓰리잡을 뛰며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것만이 피해자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부디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 전세사기 피해자 강승현 님 -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으며, 캠페인즈에도 중복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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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한국에서 대출 없이 부동산 전세, 매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자연스레 전세 사기는 피해자들에겐 현재의 경제 상황으로 단박에 해결할 수 없는 큰 단위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것이고, 구조적으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도록 방치되어 왔다면 개인의 책임으로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대책들이나 대응을 보면 개인이 책임지도록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