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함께 기억] 타자화 될 수 없는 참사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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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가. 이것 저것 기록합니다.

4월 16일을 기억하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타자화 없는 참사  -인연은 이어져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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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부 자격증 있는 장병. 지휘통제실로.“

기상 나팔소리와 함께 지휘통제실에서 나온 방송을 잊지 못한다. 2014 4 16일, 육군 훈련소 가입소 기간 사흘 되던 날인 오전 6.

지휘통제실에서 전파합니다. 잠수 자격증이 있는 장병이 있으면 지휘통제실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육군에서 숱한 자격증들 중에 하필 잠수부 자격증을 찾는걸까. 의문은 훈련소 연대로 넘어갈 있었다.

훈련소에서 맞이한 주말 종교행사 날이었다.  연무대 교회는 1주차 훈련병부터 5주차 훈련병 모두 공간에서 예배를 드린다. 1주차에 접어든 나는 4~5주차 전부터 선임(?) 훈련병들과 함께 있었다. 

육군훈련소 연무대교회 훈련병 2천6백명 진중세례식(기사 내용과 무관) 내 육군훈련소 연무대 교회

김성수,「육군훈련소 연무대교회 훈련병 2천6백명 진중세례식」, 『가스펠투데이』,2019.5.22,(2024.3.25 접속)
사진은 설명을 돕기 위한 참고자료입니다

선임 훈련병에게 있어 우린 괴롭히기 좋은 대상이었다. ‘우리는 갈게! 너희들 각개!((훈련소 수료 자대로 가니까 너네들은 남아서 각개 전투(훈련소 5주차 마지막 주에 실시하는 훈련) 해라는 의미)’ 라 조롱하는 것도 모자라 연무대 교회의 실로암찬양에 맞춰 이들은각개전투!’ 외치며 자극하기 바빴다. 이 곳만의 환영방식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하게 있던 찰나 군종 목사가 강대상에 올라 훈련병들을 향해 호통을 치셨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웃고 떠드는거야!”  무슨 시기이기에 이토록 그는 분개한걸까. 며칠 동안 꼬리표처럼 붙은 잠수부 자격증의 정체에 혼란스러워질 즈음 그는 스크린으로 영상을 띄우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안산에 고등학생들이 배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는데 웃을 때가 아니다.“ 

세상과 단절 1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접한 소식은 충격이었다. 스크린에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배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하여 400 명이 실종되었고, 잠수부들은 실종자 수색에 들어갔다. 기자는 눈시울 붉히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고 택시와 버스기사들은 유가족들을 진도까지 실어나르는 장면이 스쳤다. 입대한 불과 이틀 사이에 배에 470 명의 사람들이 사라졌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목사는제발 0.0001% 라도 기적이 있다면 이들이 전원 구조되길 바랍니다.라며 애통한 심경으로 기도와 함께  “부디,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오라.” 는 말로 예배를 마쳤다. 

안산을 포함한 대한민국은 애도의 분위기였다. 자대배치받고 간 교회에서도 기도제목 말미가 세월호 무사구조로 맺곤 했다. 하지만 사회와 군대 사이 해소할 없는 단절감이 존재했다. 군대는 ‘정치적 중립' 이라는 이유로 애도가 들어설 틈도 없거니와 그런 이야기도 꺼낼 수도 없었다. 바쁜 일과도 한몫했다. 선•후임 심지어 나조차 당장 주어진 일상과 휴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세월호는 관심에서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다.

"이윤에 눈 먼 기업과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빚은 참사"

그러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날이면 혼자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답답함만 커졌던 같다. ‘배가 침몰했고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나님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나?’  원망의 마음도 따라서 커졌다파편처럼 끊긴 기억은 휴가 읽은 권으로 선명하게 그려나갈 있었다

세월호는 화물을 너무 많이 실었고, 선체를 불법으로 증축했고, 배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평형수를 빼냈고, 갑판 위의 화물을 단단히 묶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흔들릴 복원력을 상실하고 한쪽으로 쏠려서 침몰한 것이라고 검찰은 수사결과를 밝혔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 (문학동네,2015)

세월호의 최대 화물 적재량은 2500t. 객실 증설을 위해 개조하여 선박의 무게중심이 높아지고 복원성이 악화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윤에 멀어 생명을 버린기업과 비상사태에 부재한 국가가 빚은 참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도 침몰 사실에 충격만 받았다. 반복되는 일상이 물밀듯 밀려오니 또 다시 세월호 생각은 진전되지 않고 가라앉았다.

자대에 정착한 1년이 3개월 정도 지났을 즈음, 후임이 들어왔다. 그의 고향은 안산. 세월호에 탔던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대였던 그와 대화를 오랫동안 나누지 못했으나, 고향에서 전해진 슬픔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멀게만 느껴진 안산이 가까이 스민 순간이었다.


"이제 그만할 때 안됐나? 안산 출신 후임과 대학 동기의 죽음을 통해 슬픔은 외면할 수 없어"

10년이 흘렀다. 여전히 세월호의 아픔은 그치지 않았다. 인양해야할 진실은 곳곳에 남아있다. 더러는 이제 그만하라며 날선 비난과 피로감을 호소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의 죽음을 결코 외면해야할까. 사람의 죽음은 가능성이 소멸하는 것이다. 사람과 그와 관계된 세계도 줄줄이 무너지는 비극이다. 고통이 국가의 외면으로, 고통은 나와 무관하다는 타자화로 이어진다면, 세상은 지옥이 되지 않을까. 나와 무관하다 여겼던 것들이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체감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2023 12 토요일 아침. 대학교 동기의 비보를 접했다. 대학원 학비를 벌려고 여름방학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창호 작업 6 높이에서 추락사한( 또한 안전 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지 못한 빚어진 참사였다) 대학교 동기의 소식을 그와 인연도, 연고도 없던 지인에게서 접할 줄은 몰랐다. 슬픔은 결코 나와 일이 아님을 절감했다. 죽음은 먼 일처럼 느껴졌는데 인연의 고리는 어떻게든 닿아 삶과 연결되어 있었다.

동기의 죽음을 접한 이후 변화가 필요했다. 살아가면서 인연은 어떻게 맞닿을 아무도 모르기에 만나는 사람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했다. 내가 만난 누군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칠 인연이 지도 모르니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통해 세상은 연결되고 이들과 함께 시대를 관통하기에. 

홍준표,「[DL이앤씨 중대재해 반복 ①] “고리만 걸었어도 살았다” 노모의 애끓음」,『매일노동뉴스』,2023.10.5,(2024.3.25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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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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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어 있기에 기억을 나누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언뜻 보아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사건들도 사실 연결되어있는 것이 바로 사회라는 걸 다시 생각해봅니다.

함께 기억 프로젝트의 글들을 읽으면서 사회적 참사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집중해서 보게 되네요.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본문에 적어주신 동기분의 사고도 그렇고 개인의 삶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 게 지워지지 않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럼에도 이렇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남긴다는 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마음을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가능성이 소멸하는 것이다. 한 사람과 그와 관계된 세계도 줄줄이 무너지는 비극이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고,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사라지는 세계들이 있는데요. 나와 몇다리만 건너면 연결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늘 듭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