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 변화가 불러오는 힘…'쓰레기'를 덕질하는 사람들
2019.04.25
출처: http://www.segye.com/newsView/20190425517272?OutUrl=naver
‘덕질’은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 하고많은 것 중에 ‘쓰레기’를 덕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환경단체 ‘쓰레기덕질(이하 쓰덕)’ 회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쓰레기덕후(‘쓰레기’와 한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를 합친 말)’로도 불린다. 쓰덕은 지난해 커피전문점의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실태를 고발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단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 달 또 한 번 대규모 시민 프로젝트를 예고했다. 컵 보증금 제도 부활을 목표로 서울 홍대거리에서 ‘플라스틱컵 어택 시즌2’를 벌이기로 한 것. ‘환경운동이라고 마냥 착하게 쓰레기만 줍지는 않겠다’고 경고한 쓰덕 소속 3인방, 고금숙·박은미·정승구씨를 24일 만나 얘기를 들었다. 이들은 각각 ‘금자’, ‘올삐’, ‘씽’이란 별칭이 더 친숙하다.
◆“제로웨이스트가 아니라 우리 쓰레기덕후들 같아” 그렇게 시작된 덕질
‘쓰레기덕질’이란 단체명이 예사롭지 않았다. 씽씨는 “회원들이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를 실천하려 ‘쓰레기 관찰기’를 쓴다. 어느 날 보니 제로웨이스트가 아니라 쓰레기를 수집하고 있더라”며 “누군가 우리 ‘쓰레기덕후들 같아’ 하니 모두 공감했다. 그렇게 투표를 통해 쓰덕이 단체명으로 낙점됐다”고 전했다.
돈 한 푼 안 주는 일에 열성인 게 덕질의 기본인 것처럼 이들의 활동은 자발적이며 즐겁고 동시에 묵직하다. 매일 자신이 수집한 쓰레기를 모아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쓰레기를 주우며 산을 타는 ‘줍줍등산’을 한다. 쓰레기로 자신만의 예술작품도 만든다. 한가롭게 시장에서 장을 보다 ‘시장 내 일회용품 퇴출 운동’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알맹@망원시장’ 프로젝트다.
◆‘맨땅에 헤딩’ 지속 홍보에… 시장 상인도 “재래시장도 봉투 규제해야” 인식 전환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금자씨는 “재사용 용기에 익숙지 않은 상인들이 한 팩에 3000원인 멸치볶음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당황스러워하시고 손님을 냉대하거나 아예 안 해주는 곳도 있었다”며 “심지어 ‘일회용팩 그대로 가져가서 집에서 옮겨 담으라’는 소리도 들었다. 좋은 일을 하는데 왜 우리가 칭찬은커녕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가? 열 받아서 시장 내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쓰덕 회원을 포함한 여러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일회용품 줄이기 홍보 활동도 하고 장바구니 대여 서비스를 했다.
고작 몇 명이 무엇을 바꿀까 싶었건만 결과는 금자씨의 표현대로 ‘감동적’이었다. 시장에서 장바구니와 재사용 용기를 환영하는 문화가 싹텄다. 일회용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상인들은 스스로 ‘대형마트·중소마트도 비닐봉투를 못 쓰게 하는데 왜 전통시장은 그대로 두냐. 규제가 있으면 손님들에게 안 줄 수 있는데 없으니 그러기가 힘들다’고 속상해했다. 한 반찬 가게 사장은 ‘플라스틱은 멀리, 가족은 가까이’라는 현수막까지 걸고 자비로 장바구니 200개를 제작해 뿌리며 ‘제로웨이스트 반찬 성지’로 거듭나기도 했다. 금자씨는 “물론 10~20년 관성적으로 일회용품을 제공해왔던 상인들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변화는 천천히 오고 있다”며 “그래도 ‘일회용품을 안 쓰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이게 좋은 거고 다 같이 해보자’는 인식과 문화가 생겼다는 게 정말 고무적”이라고 강조했다.
◆“매장 내 일회용컵을 잡았으니 이젠 테이크아웃(Take-out)컵 잡으러!”
‘알맹@망원시장’ 프로젝트도 좋았지만 뭐니뭐니해도 쓰덕의 가장 큰 성과는 지난해 7월 진행한 ‘플라스틱 어택’ 시즌1이다. 커피전문점 매장 내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일회용컵을 줄여 보자는 취지였다. 자발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시민들이 각지에서 자비를 털어 음료를 사마시며 수도권 커피전문점 28개 업체 총 84개 매장의 일회용품 사용 실태를 조사했다. 이 중엔 환경부와 ‘일회용품 줄이기 및 재활용 촉진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맺은 곳들도 있었다.
조사 결과 허술했던 일회용품 규제 수준이 그대로 드러났다. 커피전문점 86.7%가 손님에게 묻지도 않고 일회용컵을 제공했고 플라스틱 빨대 제공률은 100%였다. 로고나 그림이 인쇄돼 재활용이 어려운 컵의 비율은 90.5%나 됐다. 언론을 통해 비판 기사들이 보도된 후 1000여명의 시민이 일회용컵 줄이기 대책 마련 촉구 서명에 힘을 보탰다. 쓰덕은 시즌1 활동이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감소에 큰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올삐씨는 “친구들이 그 일 이후 카페에 가보니 확실히 일회용컵 사용이 줄었다고 했을 때 무척 뿌듯했다”며 웃었다.
시즌1의 성공을 자양분으로 쓰덕은 플라스틱컵 어택 시즌2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금자씨는 “매장의 일회용컵을 잡았으니 이젠 테이크아웃(Take-out)컵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 달 쓰덕은 시민들과 서울 홍대거리에 버려진 일회용컵을 모아 브랜드별로 분류한 뒤 가장 많은 양을 배출한 커피전문점 브랜드 매장에 이를 다시 갖다 주는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컵 보증금 제도 부활을 촉구하는 맥락이다. 올삐씨는 “매장에서 일회용컵을 아무렇지 않게 많이 제공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그러한 관성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며 “보증금 제도가 있으면 지금 당장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일회용품 과다 사용을 막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되던 2002~2008년 매장당 일회용컵 사용량은 평균 2만7011개였으나 폐지 후 10만7811개로 5배 증가했다. 이후 증가 추세는 계속돼 폐지 6년 만에 일회용컵 전체 사용량은 2009년 4억3246만개에서 2015년 7억1914만개로 66.3% 늘었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좋아” 2% 변화가 불러오는 힘
지금은 어딜 가든 텀블러와 재사용 용기를 꼭 챙길 만큼 제로웨이스트가 습관이 된 이들이지만, 처음부터 모두 환경운동가였던 건 아니었다. 쓰덕들은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제로(0)’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지나친 완벽주의에 금방 지칠까 봐서다.
한 마을에 재활용 교육 강연을 갔던 경험을 들려준 올삐씨는 “마을 리더 분이 ‘그렇게 재활용해봤자 몇 퍼센트나 바뀌겠냐’고 하시길래 ‘지구온난화로 지금 기온이 계속 올라가고 있지 않냐. 고작 2도를 낮추는 게 지구에 큰 변화를 주듯이 우리 삶에서도 고작 2% 바뀌는 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면서 “한 사람의 작은 변화가 또 다른 사람의 변화까지 끌어내는 ‘나비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자씨는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환경운동가 비 존슨(Bea Johnson)은 1년 동안 배출한 쓰레기가 1L 유리병에 들어간다. 한국에서 이게 가능할까? 귀농해서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며 “우리가 말하는 제로웨이스트는 100% 쓰레기가 없는 삶이 아니라 ‘적어도 일회용 쓰레기를 덜 쓰겠다’는 다짐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행착오를 실망할 것도 아니다. 인식의 변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금자씨는 “제로웨이스트를 직접 해보면 마트에서 나오는 포장재와 재활용이 힘든 포장 방식, 일회용품을 권하는 문화 등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을 맞닥뜨린다”며 “그래서 쓰덕이 하는 일이 의미있다. 경험을 통해 그동안 당연하다 생각했던 제도의 허점을 찾아낸다. ‘금속탐지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개인만으로는 넘기 힘든 장벽을 여럿이 힘을 모아 무너뜨리거나 넘어가자는 것이다. 플라스틱컵 어택 시즌2 참여를 독려한 씽씨는 “책이나 영상을 통한 간접경험보다 직접 몸을 움직였을 때 사람이 훨씬 더 많이 배우고 변한다”며 “이번 시즌2 행사는 그러한 의미에서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플라스틱컵 어택 시즌2는 다음달 25일 토요일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서 열릴 예정이다. 참여 신청은 웹페이지(bit.ly/플라스틱컵어택)에서 할 수 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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