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가 힘든 사람입니다.
저는 아주 운 좋게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처음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스무살 이전에 페미니스트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기란 무척 드문 일인데, 어쨌거나 저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우리의 현실에 분노하고 연대하고 행동하며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정말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특별히 '페미니즘' 수업을 따로 개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페미니즘은 거의 전 과목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1학년 연극 수업의 메인 텍스트는 인형의 집이었습니다. 연극 선생님은 열일곱살인 저와 친구들에게 '억압받는 현실에서 더 크고 세게 과하게 목소리를 내야한다. 사람들이 듣기 좋고 얌전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란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압니다. 2학년 고전문학 시간에는 한 달 내내 여성중심서사의 작품들을 공부했습니다. 규원가를 읽으며 남편샛끼..에 분노했고, 홍계월전에서 명예남성과 경력 단절, 유리천장을 이야기했습니다. 2학년 담임선생님 책상에는 여권의 옹호, 성정치학 등 여성주의 고전들이 꽂혀있었고 제 친구들은 그런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학교가 성평등 유토피아!!였던 것은 아닙니다. 남학생들의 단톡방 얼평, 성추행, 스토킹, 폭행은 드물지않게 있었고. 다른 점이라면 우리는 항상 분노할 줄 알았고, 그래서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입니다. 그 목소리를 지지해주는 선생님도 언제나 곁에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지내는 3년 동안 페미니즘은 저에게 희망이었는데요. 불행히도, 졸업 후 저를 비롯해서 제 친구들은 절망에 빠져있습니다. 대학은 빨간 약을 먹은 우리에게 끔찍하고 비참한 곳입니다. 여자는 과대를 하면 안 된다, x여대 애들은 시집못갈까봐 얼굴가리고 시위한다, 너네는 모유수유를 해라, 여자 교수가 없는건 능력 문제다, x는 예쁜데 꼴초년이다, 좌파 꼴페미년 한 트럭 줘도 안 먹는다, 여자애들이 독해서 학점이랑 토익이 좋아 로스쿨에 많이 가지만 걔네는 어차피 여자라서 판검사변호사 못한다
등등. 혐오는 쏟아지는데 아무도 분노하지 않더라구요. 남톡방과 성추행 성폭행은 매번 문제가 됐지만 매번 바뀌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페미니즘은 너무나 필요합니다. 청소년기에 페미니즘을 만난 저와 같은 친구들이 더이상 절망하지 않길 원합니다.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을 교육해야합니다. 이 ㅈ같은 현실좀 엎어볼라니까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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