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기자로 일했고 페미니즘을 계속 배우는 중인 최지은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는 반에서 가장 키가 큰 여학생이었습니다. 친구들의 치마를 들치고 도망치는 남학생들을 붙잡아 혼내주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아무도 그 애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훈계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같은 반 남학생이 저를 끊임없이 놀리고 괴롭혔습니다. 참다못해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너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 느꼈던 억울함과 답답함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떠오릅니다. 고학년이 되었을 때 순하고 얌전한 여학생들만 골라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거나 신체를 만지고 도망가던 남학생들의 모습도 잊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장난으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학교는 우리 여학생들에게 평등한 공간도 안전한 공간도 아니었습니다.
여고에 다닐 때는 적지 않은 수의 남자 교사가 복장 검사나 진로 상담을 핑계 삼아 학생들을 성희롱하거나 추행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뒤에서 선생님의 험담을 하거나 상담실에 단둘이 있게 되는 걸 눈치껏 피하는 정도였습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럴 때 대응할 수 있는 방법도, 대응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도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여자애들이 교실을 이렇게 더럽게 쓰면 시집 못 간다”거나 “다 큰 계집애들이 남자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냐”는 말들만이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옭아맸을 뿐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을 맡으신 P선생님께서는 저희 반 모두에게 책을 한 권 읽도록 하셨습니다. [세상의 절반, 여성 이야기]였습니다.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던 우리 사회의 성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깨우치고 의문을 갖게 된 것은 P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었습니다. 청소년에게 믿을 수 있는, 내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 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은 무척 큰 행운이었습니다. ‘남자 농구’만 있던 특별활동 시간에 ‘여자 농구’도 만들어 달라고 무작정 찾아갔던 제 말을 경청하고 즉시 실행에 옮겨 주셨던 교장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도 잊을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거치며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저는 이 두 분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목소리를 내고, 부딪히고, 성취하는 경험은 인간이 성장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요즘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여성으로서 겪게 되는 폭력에 대해 털어놓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나 미안하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책임을 느낍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때보다 훨씬 심각한 여성혐오적 콘텐츠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조차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지금 학교에는 무엇보다 페미니즘이 필요합니다. 저의 십대 시절에 P선생님이 계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더 많은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아니, 모든 선생님은 페미니스트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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