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젠더 회색 무성애자 최지수입니다.
2차 성징이 찾아오고 나서부터 제 몸은 '가려야 할 것'이었습니다. 제 몸만 잘 가린다면,
제가 처신만 잘 한다면 성희롱이나 성추행 같은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교복을 단정히 입어도 제 몸은 언제나 평가의 대상이었어요.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여자아이들의 신체를 품평하며 희롱하는 일은 빈번합니다. 쟤는 얼굴은 별론데 가슴이 어쩌고 저쩌고, 엉덩이가 어떻고 다리는 또 어떻고 하는 이야기들. 뉴스에서 대학교 단톡방 사건이 화제가 될 때, 사실 놀랍지 않았습니다. '김치년, 된장녀, 보빨러, 자박꼼, 창년' 등 이미 저는 성희롱과 혐오발언에 수없이 노출되어 있었으니까요.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닐 때 남자아이들은 특정 여성과 불특정 여성을 향해 성희롱성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반 안에서 모든 아이들이 있는데도 큰 소리로 농담처럼 웃고 떠들던 그 아이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공개적 장소에서도 그랬으니 선생님들께서도 알 법 한데도 아무런 제지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여고를 재학중인데, 제가 지금 학교를 온 이유는 오로지 '여자고등학교'여서 였습니다. 적어도 가슴이 어쩌고 자박꼼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안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얘기를 하면 '어쩌다 나쁜새끼들을 본거다, 어딜가나 저런 새끼들은 꼭 있으니 무시해라'라고 합니다. 저를 성희롱한 남자아이와 온갖 혐오발언을 일삼던 남자아이들은 천하의 나쁜 새끼들이었을까요? 어쩌다 가정환경도 불우하고 학교에 적응도 못해서 그랬을까요? 아니요, 그 아이들은 모두 교우관계도 원만하고 밝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걔들이 진짜 천하의 나쁜 놈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미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요. 여성혐오를 방관하고, 피해입은 여성에게 공감하기 보다는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거냐며 화를 내고, 여성의 몸을 부위별로 쪼개 상품화 및 품평을 하는 사회라서 그런 것이라고요. 더불어 학교 교육현장에서조차 여성혐오가 만연하기 때문이라고요.
페미니즘은 비판적 사고 능력과 인권감수성을 높이는데에 탁월합니다. 기존의 남성 중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사소한 일' 취급받으며 드러나지 않던 것들에 의문을 가지고, 잊혀져
왔던 여성의 삶에 자신을 대입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도 동등한 인격체며, 여성의 몸을 부위별로 (그것이 남자들끼리의 사적인 대화, 사적인 단톡방이며, 당사자에게 직접 말한 것이 아니더라도) 품평하는 것이 성희롱이라는 인식과 함께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 차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공교육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통령도 페미니스트라는데, 언제까지 피해입은 여성만 숨어야 하나요.
페미니즘이 학교에 필요한 이유는 학교를 다니는 절반이 여성이고 여성도 동등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재생산하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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