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페미니스트
주말 낮 도서관에 들렀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이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 세 명과 가는 방향이 겹쳤는지 의도치 않게 내가 그들을 뒤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보호자가 걸음을 분주히 해 앞서나가는 동안 남자아이는 아마도 그의 누나였을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계속해서 잡아당겼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성을 냈지만 남자아이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계속해서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발로 차고, 급기야 주먹으로 치기까지 했다. 말리고 싶었으나 버젓이 보호자가 있는 상황에서 나서도 될지 망설여졌다. 여자아이가 벌써 몇 번씩이고 남자아이를 말려 달라 보호자에게 호소했는데도 보호자는 무시할 뿐이었다. 지하철역에 다다르고, 입구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여자아이가 또 한 번 보호자에게 말을 걸었다. 보호자는 홱 몸을 돌리고는 "네가 좀 무시해!"라며 비명처럼 소리질렀다. 내내 앞서 있던 그가 몸을 돌렸기에 나는 짜증과 분노가 가득한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한참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그 얼굴이 떠오른다.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양육자의 노기 가득한 그 눈빛을 마주쳐야 했을 여자아이의 당혹감을 생각한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여자아이들이 "무시하면 된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까닭이 없는 듯한 우울에 시달리다 페미니즘을 접할 때, 무시하지 않아도 되고, 화를 내도 되고, 남을 귀찮게 해도 된다고 배울 때, 그 모든 슬픔이 비로소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나가기를 바란다.
학교에_페미니즘이_필요한_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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