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페미니스트
16살 동생 손에 들린 핸드폰 속 영상에 눈이 멈췄다. BJ는 무언가 열심히 말하고 있었고 동생은 웃으며 응시했다. 동생에게 요즘 BJ가 말이야, 라고 운을 떼니 여혐으로 미디어를 달군 BJ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어떻게 무엇부터 말해야 할 지, 동생은 얼만큼 알고 있을지, 동생도 "여성을 죽이러 가겠다"다는 BJ를 지켜보던 8만명 중에 한 명일지, 막막했다. 대화를 이어가며 동생과 나는 그 자리에 초등학생 BJ도 있다던데, 그걸 또 보는 학생도 있었을 텐데, 누군가의 공포를 쫓으며 얻어지는 재미가 얼마나 잔인한지 학교에서 가르쳐 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대화를 마쳤다. 내 예측대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동생에게 어떤 얼굴과 어떤 말을 비췄어야 했을지 자신이 없다. 나는 매 순간이 이렇게 자신이 없다.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 존중받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해야하고 견딜 게 너무 많다. 왜 내가 감수해야 하나. 왜.
내가 초등학교 때 페미니즘을 배웠더라면. 그럼 나는 선생님이 여자 애들은 쉬라고 하고 남자 애들만 축구를 하라고 했을 때 억지로 우기며 운동장에 뛰어 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남자 애들이
장난삼아 얼굴을 향해 찬 공을 맞고도
의연히 웃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여자 반장은 안된다고 남자 아이를 뽑고는 그 남자 아이가 회의를 진행 못해 대신 진행한 수많은 날 중에 어떤 날, 나댄다고 발로 밟히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여자답지 못하다고, 드세다고 애들이 놀릴 때 위축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교복을 입고 내 다리가, 내 몸이 어떻다는 둥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왜 학교는 페미니즘을 가르치지 않는 걸까.
어른이 되어 페미니즘을 알게 된 나는 여전히 억울하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만큼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과 용기는 생겼지만 딱 그만큼 세상이 두려워졌다. 택시 기사가 나에게 왜 욕설을 하는 지 아는 만큼, 네비게이션에 주소가 찍힌 이상 내가 이 사람을 신고할 수 없다는 무력함을 알게 되었고,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이 없다는 걸 안 만큼 모든 공간에서 불안해 해야 했다. 피해자는 계속 깊이 알아가는데, 가해자는 여전히 무지하다. 알아듣기 좋게 친절하게 알려달라고 하더니, 이젠 보편적 교육을 하겠다고 하니 왜 그런 교육을 하냐고 화낸다. 억울해 죽겠다. 몰라도 억울하고 알아도 억울하고.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을 평온하게 가꾸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초등학생의 우리가, 어른이 된 우리가 동등한 존재로서 안전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는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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