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내가 다닌 중학교의 체육대회 단체전은 조금 특이했다. 종목은 축구. 반마다 토너먼트식으로 경기를 치러 체육대회 당일 날 끝까지 올라온 두 반이 자웅을 겨루게 된다. 전반전은 여학생이, 후반전은 남학생이 뛰게 되어 있는 규칙상, 지게 되면 무슨 말이 나올지 뻔했다. 나는 여학생 팀을 모아 방과 후에 매일매일 축구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 때문에 졌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공을 어떻게 차는지도 몰라서 우왕좌왕하던 우리는 곧 그럴싸하게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딱히 못 할 이유가 없는 스포츠였다. 아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도 눈앞의 공 때문에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더라. 뜻대로 경기가 풀릴 때의 쾌감도 짜릿했다. 나는 물처럼 흐르는 땀을 대충 소매로 비벼 닦으며 뛰고 또 뛰어다녔다. 결국 우리 반 여자아이들은 모든 전반전을 쉽게 이겨 우승까지 갔다.
그리고 그 후로 우리가 다시 축구를 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즐거워했으면서, 왜일까.
세상에는 수많은 규칙이 있었고, 학교는 충실히 그것들을 가르쳤다. 삼각함수나 문법 같은 규칙뿐만이 아니었다. 여자는 조신하게 다리를 오므리고 앉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수학선생님, 시집 잘 가는 법으로 농담을 하신 국어 선생님,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 얼굴을 가리키며 장애인처럼 생겼다고 웃으신 영어 선생님… 그분들은 우리의 치마 길이를 자로 재며 개성이 강한 친구에겐 창녀가 될 생각이냐고 물었다. 하복은 반투명한 흰 셔츠였다. 브래지어가 비쳐 보여서는 안 됐기 때문에, 그놈의 ‘창녀’가 되고 싶지 않은 학생들은 찌는 듯한 더위에도 꾸역꾸역 나시티를 받쳐 입어야 했다. 여러 장난들이 ‘여자답지 못하다’는 이유가 붙은 채 금지되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차차 움직이기보다는 가만히 스탠드에 앉아 거울을 보며 체육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됐다.
나는 이제 화장이 무너질까 두려워 땀 한 방울도 살포시 두드려 닦는 아가씨로 자랐는데, 이런 내 모습이 모두 잘못된 교육 탓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용납할 수 없이 나쁘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빼앗긴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듯 울분에 가득 차 소리 지르는 일부 남성들을 보면 너무 의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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