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
고등학교에선 수시로 복장 검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는 높은 언덕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였습니다. 하복은 흰 바탕의 반팔, 남색 치마 교복이었어요. 복장 검사는 긴장되면서도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선생님들은 책상의 줄과 줄 사이를 돌아다니며 우리를 살폈습니다. 하복 밖으로 비치는 브라끈 색깔이 너무 '야해보이면' 막대기로 툭툭 치며 주의를 주었습니다. 치마가 너무 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소떼 같은 여고생들이 날이 갈 수록 살이 쪄서 교복이 작아지는 걸 두고 저렇게 교복 단추가 터질 듯 가슴이 크다니 지나치게 섹시한 것 아니냐며 농담을 했습니다. 남자 선생님이 브라끈을 지적하고 여자 선생님은 교복이 가슴 때문에 터지겠다며 농담을 하면서 학생이 '단정하고 조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복장검사를 했습니다. 우리는 브라끈 때문에 혼나고 살찐 가슴이 야하다며 혼나면서 자랐습니다. 그건 그냥 우리의 몸이었습니다. 그건 그냥 속옷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해야한다고, 스스로의 몸이 누군가에게 '야하게' 비출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네가' 조신해야 한다고 혼이 났습니다. 그게 우리가 다닌 학교의 모습이었습니다. 몇 년 후 남동생은 남자 고등학교에서 심한 군대식 체벌을 받다가 몸을 다쳤습니다. '사내새끼'면 이 정도는 견뎌야지, 하는 기준으로 '사람새끼'가 평균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벌을 받았습니다. 응급실에 동생을 데려가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학교는 나아진 것이 없구나. 편견이 만들어낸 보통의 지옥. 거기서 내가 자랐고 또 우리의 동생들이, 아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여자애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편견이 견고해지면 '남자애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편견도 함께 견고해집니다. 남자아이들이 운동장을 대부분 쓰고 있고, 여자아이들은 왜 운동장에서 보이지 않을까. 이 이야기는 운동장 땅따먹기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도 있습니다. 교실에 있기를 정말로 좋아하는 여자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냥 ‘사람’ 중에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운동장에 남자아이들이 대부분인지는 생각해볼 만한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나는 남자와 여자가 '태어나기를' 땀 나는 걸 더 좋아하는 성별이 있다거나 그럴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내새끼가 계집애처럼 왜 교실에 틀어박혀 있냐는 종류의 놀림도 그 이유일 수 있습니다. 저 여자애 뛰면 가슴 흔들린다고 수박 같지 않냐고 희롱하는 수군거림도 그 이유일 수 있습니다. 축구 잘하는 여자를 가리키는 헤드라인이 '여자' 박지성 밖에 없는 것도 그 이유일 수 있습니다. 뛰기 싫은 남자애가 운동장에 억지로 나가고, 뛰고 싶은 여자아이가 교실로 들어오게 만드는 파편 같은 이유들이 우리 사회에 널려있습니다. 그 조각들이 우리의 운동장을 다른 모습으로 만듭니다. 당신이 '나는 여잔데 운동장 나가기 싫던데?'라고 말하고 싶다면 '나는 남잔데 운동장 존나 싫어하는데?'라고 말하고 싶다면,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건 여자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무조건 내보내자는 외침은 결코 아닙니다. 운동장에 나가기 싫은 당신의 이야기를 남잔데,여잔데라는 전제를 뺴고도 들어주는 귀를 갖는 것입니다. 나는 차별을 인식하고 귀기울이는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학교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누구에게나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학교에_페미니즘이_필요한_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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