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탄소중립 선언 속 ‘그린워싱’을 찾아보자!
포스코는 한국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다. 포스코의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7,849만 톤으로 국가 전체 배출량의 11.6%에 달했다. 포스코 다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포스코와 같은 철강회사인 현대제철로 배출량은 2,849만 톤이었다. 삼성전자(1,449만 톤), 시멘트회사 쌍용씨앤이(1,061만 톤), 정유회사 에쓰오일(977만 톤)이 뒤를 이었다. 철강, 전자, 시멘트, 정유사를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을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20개 기업의 배출량은 2021년 기준 국가 배출량의 33.8%였다. 그리고 상위 20개 기업의 배출량 비중은 2017년 29%, 2018년 29.6%, 2019년 31%, 2020년 32.2%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탄소중립 선언한 대기업들,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줄여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한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하고 있다. 최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50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보다 5.9% 증가했다. 50개 기업 중 2018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 기업과 감소한 기업은 각각 25개씩이었다.
상위 10개 기업 중에서는 쌍용씨앤지와 SK에너지를 제외한 8개 기업 모두 배출량이 늘었다. 포스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보다 7.3%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34.5% 급증했고, 현대제철(26.5%), 현대오일뱅크(21.5%), 롯데케미칼(20.0%) 등도 20%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늘었다.
한국 정부는 지난 4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전에 수립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대비해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률을 14.5%에서 11.4%로 축소했다. 산업계의 요구로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기업들, 지속가능경영? 탄소 감축률 줄여달라고 ‘로비’
정부는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 수단 부족 등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서 산업부문 감축률을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바이오납사 부족, 수소혼소기술 상용화 지연으로 석유화학 감축 곤란 등 이행 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탄소비용 증가를 고려하면 정부 정책의 탈탄소화 지연으로 인해 국내 산업 경쟁력이 악화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석유화학업종의 주요 기업들은 최소 23%에서 최대 50%에 달하는 자체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석유화학기업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SK이노베이션이 2019년 대비 51%, 한화솔루션은 2018년 대비 35%, 금호석유화학 2018년 대비 23%, 롯데케미칼 2019년 대비 25% 감축 등이다.
포스코와 삼성전자, 현대차, 두산, 한국전력 등 주요 기업 대부분도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 목표와 계획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발표해왔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늘고 있고, 산업계라는 이름으로 정부에 감축률을 줄여달라고 ‘로비’를 해왔던 셈이다.
석탄발전·석유단지·산업폐기물매립장이 ‘친환경’?
ⓒ 2021 포스코에너지 기업시민보고서 6p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환경경영을 의심하게 되는 사례들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1위인 포스코는 강원도 삼척에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친환경’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온실가스 배출량 5위인 에쓰오일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그린’컴플렉스라는 이름의 산업폐기물매립장을 포함하는 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산업폐기물매립장만 따로 인·허가를 받기가 어려워지면서 그린이라는 이름을 붙인 산업단지와 패키지로 추진하는 모양새다.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친환경 위장술)은 친환경을 뜻하는 ‘Green’과 세탁을 뜻하는 ‘White washing’의 합성어로, 기업이 실제로는 친환경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를 포괄한다. 그린워싱은 2007년 테라초이스(TerraChoice)가 발표한 ‘그린워싱의 6가지 죄악들’ 보고서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린워싱이 학술적으로 검증된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나 요건, 명확한 정의는 부재하다.
‘그린워싱’이란 무엇인가
ⓒ 한국ESG기준원, KCGS Report(2023.3.) 11p
이런 상황에서 ESG가 기업 경영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ESG 관련 금융상품이 생겨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그린워싱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ESG기준원이 지난 3월 발표한 ‘그린워싱 유형별 사례 분석’을 보면, 그린워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① 조치 또는 누락에 의해 기업의 공시자료 또는 금융상품의 특성/목적이 기업의 근본적인 지속가능성 위험(risk)과 영향(impact)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 관행② 상품이나 용역의 환경적 속성 또는 효능에 관한 상품 표시·광고·홍보가 허위 혹은 과장되어, 단지 친환경적 이미지만으로 경제적 이익을 보는 것③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등 거짓으로 기업 이미지를 각색하는 행위 ④ 기업의 제품, 목표, 정책이 환경 친화적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기 위한 광고 또는 마케팅의 한 형태
또한 여러 선행연구에서 ‘부적절한 라벨링’을 공통적으로 그린워싱으로 규정하는 만큼 라벨링 실시 주체와 라벨링의 대상, 그린워싱으로 인한 피해 당사자, 세 기준을 토대로 그린워싱의 세부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그린워싱 유형은 ① 제품과 관련된 수준에 국한된, 협의의 그린워싱 ② 투자자를 오도하는 선택적 정보공개 ③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보공개 조작,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협의의 그린워싱, 선택적 정보, 정보공개 조작까지
협의의 그린워싱은 기업이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제품의 친환경성을 내세웠으나 이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다. 팜유 기반 오일에 ‘녹색’을 붙인 이탈리아 국영석유기업 에니(Eni), 새롭게 런칭한 컬렉션을 친환경이라고 홍보한 H&M 등을 들 수 있다. 바이오연료, LNG 등 친환경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분야의 경우 그린워싱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투자자를 오도하는 선택적 정보공개는 금융투자 상품 혹은 채권 관련해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거나 명확한 근거 없이 ESG, 친환경, 지속가능성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다. 녹색으로 라벨링 된 채권에 대한 시장의 감시는 점차 강화되는 추세이고, 각국 금융당국은 ESG 금융상품을 출시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정비하고 있다.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보공개 조작은 그린워싱으로 인한 부적절한 라벨링의 대상이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기업 자체에 해당하는 경우다. 세부 목표나 전략이 수립되지 않은 채 탄소중립을 선언하거나 탈석탄 선언을 했음에도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 그린워싱 사례 16.8배 폭증…시정명령은 0.08%
국내 그린워싱 사례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에 부당 환경성 표시·광고로 적발한 건수는 4,558건이었다. 2021년에 272건에서 16.8배나 폭증했다. 현행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에 따르면 제조업자와 제조판매업자, 판매자 등은 제품의 환경성과 관련해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가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거짓‧과장‧기만 광고를 할 수 없다.
4,558건 가운데 대부분은 문구와 목욕 완구, 물티슈와 같은 생활용품이었다. 그린워싱의 유형 중 대부분이 협의의 그린워싱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린워싱으로 적발 후 시정조치(시정명령)가 내려진 건 단 4건(0.08%)뿐이고, 나머지 4,554건은 행정지도에 그쳤다는 점이다.
탄소중립 이름 붙인 윤활유·원유·LNG에 행정조치는 제각각
ⓒ SK루브리컨츠의 탄소중립윤활유
환경부는 ‘탄소중립 윤활유’를 판매한다고 광고한 SK루브리컨츠에 광고를 수정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광고가 탄소중립 효과를 과장해 소비자에게 환경적 효과를 오인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정부가 탄소중립 화석연료 광고를 행정 제재한 첫 사례다. 반면 SK에너지의 경우는 환경부가 조사한 시작한 지난해 9월 말 이전에 판매가 중단돼 행정처분을 면했다.
탄소중립 원유를 구입했다고 광고한 GS칼텍스와 탄소중립 LNG를 수입했다고 광고한 포스코에는 시정명령 대신 행정지도를 받았다. 환경성을 과장하긴 했지만, 제품에 대한 광고가 아닌 경영활동 홍보이기 때문에 행정처분이 어렵다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기업 광고는 제품보다는 경영전략 및 기업 이미지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환경부는 “기업의 단순 부주의로 인한 표시·광고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교육·인식개선을 우선으로 고려하여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 그린워싱 위반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과태료를 신설하고 감시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하고, 환경표지인증제도를 홍보하는 등 친환경제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미국·EU, 기후공시 의무화·그린워싱 광고 금지 추진
주요 국가들은 탄소중립, 친환경과 같은 표현을 인증 등 검증을 거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기후공시’를 표준화하고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친환경 표시 지침(Green Claim Directive)을 제정해 소비자들에게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입증되지 않은 친환경 광고를 금지하고 소비자를 오도하는 불공정한 관행을 없애겠다고 예고했다. 개정된 지침에 따르면 친환경 인증 라벨 등을 통해 입증할 수 없는 경우 ‘기후중립’, ‘탄소중립’, ’탄소상쇄‘ 등의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중심으로 기후공시를 표준화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고, EU는 지난해 11월 비재무공시 표준안을 공개한 바 있다. 기업이 환경과 관련한 정보공개 방식을 확정하고, 이를 모든 기업에 적용하도록 해 기업 활동의 적절성, 내용의 구체성, 타당성, 현실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도 기업의 비재무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글로벌 흐름에는 뒤쳐진 편이다. 한국은 2025년부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기업만을 대상으로 비재무공시의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TCFD로 그린워싱을 찾을 수 있을까
기업이 기후위기와 관련한 자신들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기후공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이 공개하는 비재무공시 자료 등을 통해 기업들의 그린워싱을 찾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TCFD(Task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이하 TCFD)는 기업이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보 공개를 규정하는 기후변화재무공시이다. TCFD는 국제적 금융위기에 따른 국제협력적 대응과 대처를 위해 각 국가의 중앙은행과 감독기구 등이 모인 단체인 금융안전위원회(FSB)에 의해 지난 2017년 제시되었다. TCFD가 이전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환경경영과 구분되는 특징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과 같은 단순한 정보 이상의 자료를 요구한다는 데 있다.
대기업들의 탄소중립이나 RE100 선언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이 제대로 행동하고 있는지 감시하기는 쉽지 않다. TCFD 공시의 빠른 제도화와 함께 기후활동가와 시민들이 기업들의 그린워싱을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때마침 녹색전환연구소가 지난 5월 9일부터 TCFD보고서를 함께 읽는 강좌를 열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길 바란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