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무엇이 문제인가?
인공지능 시대의 기본소득(?)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좀 더 특유하게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의 현재 상태와 전망을 보면서 일자리 감소와 소멸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기계가 인간을 보조하고 강화하는 게 아니라 “대신”한다고 보면 일자리 감소와 소멸은 필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딥마인드(DeepMind)의 공동창업자인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이 한 경고는 이런 우려의 최신 판본이라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 인공지능의 도래로 일자리가 자동화될 지식 부문 노동자들을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술레이만의 이런 경고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람들이 많이 드는 게 지난 3월 말에 나온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이다. 골드만삭스의 분석가들은 인공지능의 새로운 물결이 전 세계 고용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어 3억 개의 전일제 일자리를 자동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주목받는 게 기본소득이다.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고용 노동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소득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일자리가 없을 가능성이 큰 시대에 적합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나는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지만 새로 생기는 일자리도 있으며, 전체적으로 기술 변화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길게 보아 산업혁명 이후 이른바 경제 성장에 의해 일자리, 즉 고용노동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 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망도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에도 그럴 것인가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제 성장이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인가? 혹은 이런 식의 경제 성장을 계속해야 하는가? 다른 하나의 반론은 기본소득과 같은 해결책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를 표명하는 것인데, 현대 사회에서 일자리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소득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 실현의 통로이자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뒷받침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따라서 어떻게 하든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일자리의 소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자리 보장” 혹은 그린뉴딜의 일자리 창출 같은 정책 대안은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단 인간에게 노동이란 무엇인가 혹은 현대 사회에서 고용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해두기로 하자.     과연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우리에게 가져오고 있는 충격과 전망은 사실 일자리 문제에 국한해서 검토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전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포함한 생태적 전환, 사회 체제 자체의 전환, 그리고 인공지능의 발전 속에서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 전환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들은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의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멈포드는 “기계가 우리의 물리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낸 거대한 물질적 대체(displacements)는 장기적으로 아마 그것이 우리의 문화에 정신적으로 기여한 것보다 덜 중요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술 변화와 발전의 산물이 단순히 우리 삶에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이 이른바 기술 결정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의 잠언은 “기계의 신화”에서 벗어나 기술의 변화를 경제적 변화 및 사회적 변화와 함께 바라보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권력 비판에 근거해야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하고 발전하고 있는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인공지능에 대해 인간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를 훌쩍 넘어서는 것들이다. 전기 에너지, 희토류를 비롯한 물리적 자원, 필요한 노동, 데이터 추출 및 데이터 집합, 필요한 자본과 제도 등으로 이루어진 인공지능은 하나의 체제이다. 이 체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 터잡고 있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인공지능 체제를 이렇게 볼 경우 오늘날 인공지능은 이윤 추구의 자본주의 및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이런 이해에 근거해서 노동 혹은 일자리 문제를 살펴보면 한편에서는 기존의 일자리가 자동화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원 채취와 데이터 정리 같은 일을 하는 힘들고 위험하고 지루한 불안정 노동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노동의 변화 및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있는 셈이다. 자동화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 혹은 직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리고 힘들고 위험하고 지루한 노동을 어떻게 축소하거나 분배할 것인가? 공유부와 기본소득 인공지능을 포함한 디지털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이 공유지(commons)와 공유부(common wealth)이다. 사유 재산도 공적 소유도 아닌 공유지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공유부는 자연의 선물 혹은 모두가 함께 만든 것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만 귀속되지 않는 부이다. 디지털 자본주의의 토대인 데이터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공유지와 공유부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이다. 현재 데이터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인간의 여러 활동의 산물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를 말 그대로 채굴하고 결합해서 빅데이터로 구성하고 타겟팅 사업에 활용해서 이윤을 올리고 있다. 이른바 인공지능의 발전 혹은 개선은 바로 이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윤의 원천 가운데 하나가 데이터임에도 데이터를 생산 혹은 생성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이때 데이터는 데이터 집합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생산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데이터는 모두의 것, 즉 공유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모두의 것을 일부 사적 자본이 포획해서 이윤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이유로 “제2의 인클로저” 혹은 “새로운 인클로저”라는 고발이 등장했다. 게다가 현대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거의 언제나 공적 자금과 기구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아이폰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기술이 미국 정부, 특히 국방부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 혁신 기술을 응용했다는 점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기술 혁신의 과정과 그 결과물도 사실은 공공의 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성과는 거의 대부분 사적 자본이 가져가는 게 현실이다. 기본소득은 이런 부정의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연적인 것이든 인공적인 것이든 공유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며, 이는 모두에게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 게 기본소득의 발상이다. 이는 사회 정의의 문제이다. 이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기본소득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 그리고 그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해법에 대한 모색은 정의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위기의 원인과 책임의 문제를 해명하지 않고는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전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기술 발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에 대한 착취적, 억압적 권력 관계의 산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와 돌봄위기를 비롯한 수많은 위기도 고립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원칙에 근거한 기본소득은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단단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의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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