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특권, 날치기 통과, 다수당의 횡포, 의회의 횡포. 한국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입니다. 물론 계속해서 법안을 수정하고 의원들의 의식을 재고하여 문제를 점진적으로 고쳐나가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한국의 선거제도와 의회제도 자체에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국 의회의 성별 격차와 지역 격차, 특정 학교 출신이나 공직자(특히 판검사) 출신이 너무 많은 문제도 종종 지적이 됩니다. 한국의 의회는 지금 제도를 유지하면서 계속 고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선거제도나 의회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선거구제에 따른 분류
의회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인구, 지역, 부족에 따라 선거구라는 단위를 지정합니다. 그러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의 대표를 뽑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小)선거구제라고 합니다. 선거권을 가진 사람은 후보 중 한 명에게 자신의 한 표를 주는 방식입니다. 일단 선거 방식을 이해하기 쉽고, 특정 지역에서 한 명의 후보를 선출하다보니 선거의 열기도 치열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선거에 문제가 생길 경우 재투표나 재보궐 선거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 지역성이 강한 만큼, 선출자/후보자가 지역민의 민원에 쉽게 휘둘리게 되고, 지연/혈연/학연이 쉽게 연결된다는 점,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정당이나 집권하고 있는 정당을 보고 선출하기 쉬워서 소수파의 의회진출이 어렵다는 점이 단점으로 뽑히고 있습니다.
소선거구제에 대비되는 선거제도를 대(大)선거구제라고 합니다. 하나의 선거구에서 두 명 이상을 선출하는 것을 말하지요. 이렇게하면 승자독식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무효표 문제, 흔히 한국에서 사표(死票)라고 말하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됩니다. 또, 유권자는 집권당이나 널리 알려진 당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에 눈을 돌릴 수 있게 되므로 소수정당, 신생정당에게도 유리한 방식입니다. 하지만 경쟁의 치열함이 줄어들기 때문에 선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우려가 있고, 선거 후 문제가 생겨 재투표나 재보궐선거를 해야하는 상황이 왔을 때 절차가 조금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또, 군소정당이 난립하여 의회 안에 너무 많은 정당이 들어가있을 경우, 정치가 오히려 혼란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생깁니다.
대선거구제는 방식에 따라 유권자가 한 명에게만 투표하는 단기명 투표와, 유권자가 두 명 이상, 혹은 선거구에서 뽑히는 인원수만큼 투표하는 연기명 투표로 나뉩니다.
대선거구제 중에서도 하나의 선거구 안에서 적게는 두 명, 많게는 대여섯 명을 선출하는 것을 중(中)선거구제라고 부릅니다. 중선거구제는 대선거구제 중 하나이기 때문에 보통은 중대선거구제라고 붙여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독식할 우려가 높은 경우에는 이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고, 의회 안에 다양한 입장과 사상을 가진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쏠림현상의 방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중선거구제는 현재는 단점이 더 많은 제도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1995년 이전 일본의 중의원 선거 방식이 중선거구제였는데요, 실제로 해봤더니 오히려 후보자들이 유권자들에게 이익을 유도하는 현상이 더 심했고, 한번 인맥이나 지지기반을 닦아 놓으면, 즉 한번 터를 잡으면 같은 사람이 계속 당선되다보니 오히려 당내 파벌만 심해지는 현상이 심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1995년 이후 이 제도를 폐기했습니다만, 한국의 경우에는 2006년부터 기초의회에서 중선거구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특정 정당이 싹쓸이를 하는 현상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선거구제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례대표제입니다. 정당의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의 수를 정하는 방식을 비례대표제라고 하죠. 이건 우리에게도 친숙한 방식입니다. 비례대표제는 승자독식을 막고 실제 유권자의 의사를 비율적으로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소수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기 쉬워지고, 유권자의 의사를 수치에 따라 의석에 반영하다보니 비교적 공정해 보이는 특징도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국가들은 선거구에 따른 인물 선출을 하지 않고 100% 비례대표제만으로 의회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거 직전에 정당을 급조하여 의회에 진출하려는 정당이 생기는 문제가 있고, 선거구제와 비교했을 때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자질을 하나하나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한 부정한 돈거래가 오갈 수 있다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또, 군소정당이 난립하면 오히려 의견이 잘 안 모아져서 국정이 지지부진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문제도 자주 이야기됩니다.
그래서 비례대표를 성별, 세대, 직업, 민족, 환경, 문화 등으로 구분해 따로 모집하자는 방안, 비례대표 공천과정을 전부 녹취하여 영상, 음성, 문서로 모두 기록해두는 방안이 함께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또 하나 이야기되는 방안은 결선투표제입니다. 아마 최근 마크롱 대통령의 선출 과정 때문에 결선투표제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선거구에서 1위 득표자가 특정 비율(흔히 과반)을 넘지 못하는 경우, 1, 2위만 다시 투표를 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사표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적어지고, 당선자도 다수의 유권자들에 의해 당선되었다고 하는 정당성이 생기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번거로움과 비용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고, 실제로 결선투표에 들어가면 유권자들의 관심이 확 떨어져서 1차투표보다 투표율이 하락하는 현상도 자주 발생합니다. 또, 결선투표제를 노리고 선거를 진행하는 정치 공학의 문제, 결선투표제 안에서도 합종연횡이 존재한다고 하는 정치인의 문제도 가끔 언급됩니다.
단원제와 양원제
단원제(單院制)는 입법부를 하나로만 구성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한국은 단원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강하다는 점, 국정 처리 속도가 빠르다는 점, 국민의 의사는 하나라고 하는 일원적 민주주의 이론을 실현한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실제 한국 정치에서도 간혹 볼 수 있듯이 다수당의 횡포나 의회의 횡포를 행정부가 막을 수 없다는 점, 입법에서의 잘못이나 날치기 통과를 걸러내기 어렵다는 점이 자주 이야기됩니다. 또 한국처럼 수도권과 지방의 인구격차가 심각한 경우나 고학벌, 공직자 출신 남성 의원이 많은 경우, 단원제라는 제도 자체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것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단원제와 대비되는 제도는 입법부를 두 개의 의회로 구성하는 양원제(兩院制)입니다. 대체로 양원제 국가들 중에는 과거 귀족의회와 평민의회로 나뉘어져 있던 전통이 그대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미국의 경우에는 각 주 별로 2명을 뽑는 상원과 인구비례로 의원을 선출하는 하원으로 구성하여 지역 인구 격차에 따른 유권자 의사 반영의 불균형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양원제를 채택하는 경우, 시간은 좀 걸리지만 한 쪽 의회의 통과만으로는 법안을 완전히 통과시킬 수 없기 때문에 날치기 통과나 잘못된 법안을 방지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다수당이나 의회의 횡포를 견제할 수 있고, 지역대표제나 직능대표제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안 처리의 지연을 막기 어렵고, 상하원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도 자주 등장할 수 있습니다. 또, 두 의회 사이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양원제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게 되고, 불일치하면 의회가 두 개라서 비효율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는 근원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현행 단원제 하에서 의회 내의 지역 격차, 성별 격차, 학력 격차, 출신 직업 격차 등을 줄이기 위해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국회의원 1인당 보좌관의 수나 각종 특권을 대폭 줄이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아무래도 의원의 수가 늘어나면 비판과 감시의 목소리도 더 많아지게 되고, 더 많은 민의를 반영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또 표결과 법안 처리에 있어서도 더 많은 수의 의원이 존재하는 것이 특권을 줄이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의원수를 늘리는 게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고, 한국이 국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신감을 생각하면 쉽게 통과되기도 어렵습니다.
✏️ 한국 의회의 구성 방안, 시민주도 공론장에서 논의하자!
한국의 국회는 현재 소선거구제에 비례대표제를 혼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행 한국 의회의 구성 방식은 민의의 반영이나 행정부 감시 차원에서 적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어떻게 바꿔나가는 게 좋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코멘트
5덕분에 의회제도의 다양한 모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저는 줄곧 파랑과 빨강의 갈림길 앞에서 회의감을 느꼈는데요. 그래서인지 소수 정당, 국회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모델을 지지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될 시 말씀대로 의견을 조율/합의하거나 그 절차 자체가 매우 비효율적일 것 같지만요...
소수정당의 국회진출을 위해서는 비례대표제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정당이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해야한다 이런 마음 보다도, 현재와 같은 공고한 거대 양당체제에 긴장감을 불어주는 역할을 기대합니다.
결국엔 지금과 같은 양당체제를 약화시켰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왠지 지금 시행되고 있는 제도의 반대나 보완 제도에 더 눈이 가게 되네요.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 때문일까요?
여튼 저는 사표가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선과 그 이후 과정을 보면서 '내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선출직'에 대한 국민의 거부반응이 엄청나다고 느꼈는데요. 제도적으로 사표를 방지하는게 국민에게 '민주주의 효능감'을 주는 안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례대표제 확대도 취지는 좋으나 본문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후보자의 자질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도가 있어도 꼼수를 부리는 우리나라 정치 때문에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보완책이 우선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인구 불균형 문제, 특정 성별/계층/학력, 법조인 출신이 의회에 너무 많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양원제까지는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의 수를 늘릴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출 과정을 전부 공개한다거나 선출 이유를 세세하게 밝히는 등, 비례대표 선출 과정을 완전히 투명화하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양당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이 강하면 강할수록 양당 또한 공약을 지킬 가능성, 제대로 일할 가능성, 개혁을 내세울 가능성,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할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제도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재의 한국정치상황에서는 양당제를 약화시키고 다른 정치의 가능성의 높이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비례대표제의 확대, 결선투표제의 도입, 선거구제의 개편 등은 진지하게 논의 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