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동관에 대한 우려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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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 연구자. 일어/중국어 교육 및 번역. => 돈 되는 일은 다 함

(사진출처 이동관 구트위터 현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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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노래 가사집인 『시경(詩經)』에서는 민요를 풍(風)이라고 한다. 민요를 풍이라고 하는 이유는 첫째, 바람이 불면 물건이 움직이듯이 노래를 통해 사람들이 변화하기 때문이고, 둘째, 아래에서 위를 찌르는데(자刺) 방향은 알지만 시작점을 모르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풍자라는 말이다. 후에는 풍(風)에 말씀 언변을 붙여서 풍(諷)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사람들의 입을 막고 싶어한다. 그래서 바람을 막으려 한다. 정치나 풍속을 비꼬거나 무언가를 예언하는 노래가 유행해서 그 노래를 금지시키려고 이런 저런 행동을 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통치자에 대한 이야기는 전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신라 경문왕(景文王)은 원래 화랑인데 얼굴이 잘생기고 똑똑해서 공주의 사위가 되었고 스무 살에 왕위에 올랐다. 경문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갑자기 귀가 길어지더니 당나귀의 귀가 되었다. 임금의 귀에 대해 왕비와 후궁은 물론, 궁녀와 내관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는데 임금의 왕관이나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幞頭匠) 한 사람만이 이 일을 알고 있었다. 복두장은 이 일을 계속 속에 담아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죽을 때가 다가오자 결국 도림사(道林寺)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를 쳤다. - 도림사는 지금의 경북  월성군 내동면 구황리에 있던 절이다. 지금의 경주인 서라벌 성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해당하는 절이었다고 한다. -

그 이후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이 이 소리를 너무 싫어해서 결국 대나무를 싹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산수유나무를 심었다. 그 다음부터는 바람이 불 때마다 “임금님 귀는 길다!”라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삼국유사』권2「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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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탄압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전두환 정권 시절의 언론통폐합일 것이다. 쓰리허(three許), 혹은 삼허(三許)라 불린 허화평, 허삼수, 허문도,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허문도(許文道, 1940~2010)의 아이디어로 실시된 정책이다. 방송사와 신문사, 통신사를 통합하고 언론인들 대다수를 언론계에서 축출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TBC와 KBS의 사례다. 지금 JTBC의 전신인 TBC가 KBS와 통폐합되면서 KBS가 1과 2 두 개의 채널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축하하는 특집 방송 KBS <새가족>이 방영되었는데 이 때 하나같이 표정이 굳어있는 구 TBC 전속 탤런트들의 표정이 그 당시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1980년 11월 30일 TBC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이날 노래를 부른 가수는 이은하, 박경애, 혜은이인데 이 중 이은하는 특히 많이 울먹였다는 이유로 3개월동안 방송출연정지를 당했다. TBC의 간판 스타 중 한 사람이었던 강부자도 이 날 울었다는 이유로 한동안 라디오에만 출연해야 했다.)

(1980년 12월 1일 KBS <새가족> 출처 KBS Archive.)


당시 대중들의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은 이 두 방송이지만 한국 언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연합뉴스의 탄생이다. 언론통폐합을 기점으로 신문사는 방송사를 가질 수 없게 되었고 방송사는 물론 신문사들도 상당수가 폐지 혹은 통합되었는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은 사실상 조선일보 하나가 유일하다 하겠다. 또 지방에 기자를 주재할 수 없게 되면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오로지 연합뉴스가 전해주는 소식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언론통폐합은 언론과 언론인을 정부에 굴종하는 태도를 갖게 했고 특정 언론사들이 거대화되면서 언론보도의 질을 저하시키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 영향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말일까?

또 각 언론사에는 보도지침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에서 보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각 소식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가/불가를 알렸다. (보도지침의 존재는 1986년에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의해 폭로되었다.)

그리고 저녁 뉴스의 첫머리는 늘 전두환과 이순자에 대한 뉴스여야 했다. 이른바 땡전뉴스라고 하는 것이다. 아홉 시를 알리는 알림 소리 땡땡땡이 울리면 바로 ‘오늘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이라는 말로 뉴스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땡전뉴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두환에 대한 보도가 끝나면 ‘또한 이순자 여사께서는’으로 시작되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에 전두환의 호는 오늘이고 이순자의 호는 또한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지금도 정권을 지나치게 찬양하는 뉴스를 두고 땡전뉴스라고 비유적으로 부르는 것은 바로 이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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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통제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한국 사회에 퍼지게 된 것은 이명박 정권 때였다. 각 방송사 노조가 파업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던 그 시간 동안,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지고 방송국 간부들에 대해 청와대가 퇴출과 사찰을 지시했다는 것이 훗날 밝혀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사람이 바로 이동관이다. ‘MB의 허문도’ 이동관은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을 역임했다.

2008년, KBS 정연주 사장을 해임한 후 새 사장을 뽑는 이사회 회의가 열렸을 때, 이 회의의 시작부터 끝까지 분 단위로 기록한 문건이 청와대로 전달되었다는 것, 그리고 정연주 사장 해임에 공을 세운 네 명을 승진시키는 데에도 청와대가 관여했음이 밝혀졌다. 이동관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있던 시절, 대변인실에서 만든 문건에는 그 네 명이 '정연주 사장 배임 혐의 고발을 유도'하고, 특정 직군의 협회장 선거에서 '정연주 사장 반대파 인물인' '후보 당선에 기여'했다고 적혀 있고, 사장 교체를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을 때 '채증장비를 활용, 직원들의 집회 참가를 저지'하고, 노조 간부를 지내면서 '사내 내부 동향 및 좌파들의 대정부 투쟁 동향을 제보'해주었다는 직원의 이름도 등장했다. (KBS.2023.08.16.)

2008년 3월 18일에는 이동관이 MBC와 YTN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했음을 문서로 지적한 바 있는데, 같은 해 8월에는 언론계 쇄신이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막판 저항이 있다는 식의 기록을 남겨두었다. 그래서 MBC 파업은 8월 중에 마무리할 것이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정적인 보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니 이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활동을 강화하겠다고도 기록해 두었다. 보수단체와의 협력을 통한 공중파 견제를 통해 좌편향 언론을 견제하겠다고도 했다. (이동권 언론장악 개입 입증 공공기록물)

이 씨가 홍보수석이던 당시, 청와대 행정관 하나가 택시기사를 폭행하고 또 다른 직원은 20대 여성을 폭행한 일이 있었는데 이를 MBN과 YTN이 보도하자 문제내용이라며 보도를 자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KBS.2023.08.16.)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걸까?

또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쓴 언론인에게는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를 하고 이들에게 특혜를 주는 방법까지 존재했다. 이 또한 이동관이 한 일이다. 예를 들어 이병규 문화일보 사장은 <“망루농성 사전 연습했다”>(1.21, 1면), <민노총 ‘성폭력 사건’ 피해 여성 “조직적 은폐 수사해야”>(2.6, 1면), <“MBC 盧 추모기사, SBS의 7배”>(6.26, 8면) 등의 기사를 실었는데 이동관은 이 기사들을 직접 인용하며 “보수·우파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한다”, “VIP의 국정운영 및 정부 정책에 비판적 지지 입장”, “VIP 동정·정부 시책에 대한 기사를 부각시키거나 기획기사 및 사설 보도 협조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한다고 말하고 대통령의 격려 전화를 요청했다. 이병규 사장은 훗날 한국신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 다른 격려 대상자인 박보균 당시 중앙일보 편집장은 “편집국장 시절, 친박 성향으로 분류되었으나 대기자를 거치며 VIP 국정운영에 동조·지지로 성향 변화”, “중앙일보의 균형 잡힌 보도 논조를 이끌고 있는 박 편집인은 칼럼을 통해 VIP 국정운영과 정부 정책에 대해 지지와 고언을 해왔음”이라는 평이 달려있다. 그는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하고 있다.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은 “10년간 경영·편집 전반에 뿌리내린 구 좌파 정권의 잔재 청산 주력”, “좌파 세력들의 반발에도 꿋꿋하게 논조 시정을 위해 노력”해서, 배인준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의회민주주의 짓밟은 언론노조의 국회 난입>(7.24)이라는 사설을 쓴 공으로 격려 전화를 받았다. (미디어오늘.2023.08.15.) 이동관은 그런 기억 없다고 일관 중이다.

이것 말고도 그의 공로(?)는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는 당시 대통령에게 MBC 경영진을 교체해야 한다고 직접 보고하기도 했고(MBC.2023.08.14.) 아침 라디오 방송들이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진행자 퇴출/교체, 프로그램 폐지 등을 권고했고(한겨레.2017.09.21.)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정원에 언론을 통제하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미디어스.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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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론 통제를 정권의 유지에만 사용하지 않았다. 2004년, 그는 부인, 지인과 함께 절대농지를 공동 구입한 뒤 직접 경작을 하지 않아 농지법을 위반한 바 있다. 농지 취득 과정에서 허위로 위임장을 작성하기도 했는데 국민일보에서 이를 보도하려고 하자 국민일보에 수십차례 전화를 걸어 보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경향신문.2008.05.01.)

또 이동관의 아들이 하나고등학교 재학 중 학교 폭력을 저질렀으나 째려만 봐도 열리던 학폭위는(MBC.2023. 6. 16.) 이동관 아들의 사건엔 열리지 않고 유야무야 무마된 바가 있었다. MBC가 이를 보도하자 MBC를 두고 특정 진영 나팔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연합뉴스.2023.08.16.) 이동관은 조국과 조민을 두고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며 “그 자식을 보면 부모로부터 어떻게 교육받은지를 알 수 있다”라 말하기도 했다. (JTBC.2019. 10. 4.)

조국 씨의 딸 조민 씨의 ‘동양대 표창장’ 의혹이 나왔을 때 김두관, 유시민 씨가 최성해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를 한 바 있다. (중앙일보.2020.12.27.) 통화 내용이 알려지진 않았으나 증거 인멸과 관여가 있지 않냐는 의혹이 나오자 이동관은 김두관, 유시민을 언급하며 “존재 자체가 압력인데 전화를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2023.06.14.) 만약 자신의 과거 행실을 알면서 이런 말을 했다면 뻔뻔하기 그지 없는 것이고 자신의 과거 행실이 기억이 안 났다면 공직을 맡기에는 기억력이 부족한 것이다.

자신이 공인으로서 책임과 임무를 지키지 않은 죄를 가리기 위해 언론에 보도하지 말 것을 직접 요구를 하는 청와대 대변인. 보통 사람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공직, 그것도 언론과 관련이 있는 공직에는 오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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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고상한 이론이나 논리를 가져올 필요가 없다. 그 동안의 행적을 보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는 부도덕하고 무책임하며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행실의 원인은 개인의 악함이나 야비함도 있겠지만 공사구분이 안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물론 소위 한국의 자칭타칭 지도층이나 사회 엘리트라 부르는 이들이 공사구분 못 하고 사고를 친 게 한 두 번이겠으며 인맥 장사를 열심히 하는 게 한 두 사람의 문제겠냐마는,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람이 공직에 나아가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사람은 언론 계통 공직은 물론 그 어떤 공직에도 진출해선 안 된다. 이런 뉴스는 좀 그만 보고 싶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을 못하게 하면 사람들은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임금님 귀는 길다고 말할 것이다. 옛날 임금들은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가 닥쳐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사과를 했다. 지금 와서 그런 것을 바랄 수야 없겠지만서도 윤석열도 이동관도 명백한 자기 잘못 앞에서도 남의 탓을 하고 모른다고 발뺌하는 것을 보면 참 얼굴이 두껍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관리들보다 못한 것이다.

지금은 2023년이다. 2023년에 우리가 땡윤뉴스 같은 것을 봐야하는 것일까? 4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또 ‘오늘 윤석열’이나 ‘또한 김건희’ 같은 조롱과 농담을 주고 받아야 한다면 한국 국민으로서 나는 너무나 비참하고 참담한 마음만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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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분에서 동감합니다. 이동관 위원장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보이는 언론관은 '언론은 정부의 나팔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졌던 비판하는 언론은 색출해 압력을 넣고, 제도 내에서 탄압과 장악이 가능한 언론은 더 이상 비판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들은 이와 같은 인식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인물이 다시 방통위원장이 돼서 언론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한국 언론과 사회의 흑역사입니다.

80년대 언론통폐합과 땡전뉴스의 유래에 대해서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네요ㅠㅠ 또한 기억력도 부족하고 뻔뻔하기 그지 없는 분이 또다시 공사구분을 못 하게 될까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