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스트리밍과 AI에 맞선 할리우드의 인간적인 파업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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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정치, 시사,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8월 15일 개봉 예정인 영화 오펜하이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 오펜하이머 이후에 파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촬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이 촬영을 하지 않겠다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먼저 할리우드의 조합들과 파업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할리우드에는 미국 배우조합 SAG-AFTRA, 무대공연 종사자 연맹 IATSE, 미국 감독조합 DGA, 작가조합 WGA이 있다. 이들 노조는 영화 및 TV 제작자 조합인 AMPTP와 단체협상을 맺는다. AMPTP 산하에는 넷플릭스, 아마존, 애플, 디즈니, 디스커버리-워너, NBC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소니가 있다. 이들은 미국 영화 시장의 90%를 차지한다. 조합이 이들과 하는 계약은 영상업계의 표준이 된다.

작가 조합 WGA는 영화 및 TV 제작자 조합 AMPTP와 3년마다 협상을 한다. 비디오와 TV로 보던 영상 소비 방식이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으로 점차 바뀌던 시절인 2007년, 스트리밍을 통해 공개된 콘텐츠에 대해 더 높은 재방료를 요구하며 작가 조합은 파업을 했다.

WGA 2007년 파업
WGA 2007년 파업

15년이 흐른 지금 할리우드 작가조합이 다시 파업을 시작했다. 배우조합도 같이 파업을 하고 있다. 작가조합은 AMPTP와 계약 갱신을 앞두고 의견 불일치로 파업에 들어갔다. 작가조합의 요구는 무엇이었을까?

작가조합은 스튜디오들이 임금을 삭감하거나 근로 조건을 훼손했다고 스튜디오 노동 대표들에게 설명했다. 회사 성공에 기여한 가치와 지속 가능한 직업 작가로 보호받길 원하는 내용을 포함해 공정한 급여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스튜디오 측이 반응을 내놨지만 작가들이 직면한 위기를 고려할 때 스튜디오 측의 태도가 불충분하다고 입장을 냈다. 스튜디오들의 행동으로 작가들의 노동 환경에 긱 경제가 만들어졌고, 노조 협상에서 스튜디오의 고집스러운 입장이 전문 작가를 평가 절하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또한, TV 시리즈에서 고용 보장을 거부하는 것, 코미디 버라이어티에서 일당직을 만든 것, 시나리오 작가들의 무급 노동 그리고 AI까지. 스튜디오는 작가라는 직업을 프리랜서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회사가 추구하는 방식으로 작가 직업 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작가 조합 WGA은 아마존을 예시로 들며 기업이 이윤 추구에 몰두한 나머지 전문 작가들을 소모시키듯 했고. 작가들은 짧은 시간 안에 더 일하며 적은 임금을 요구받아왔다고 전한다. 이런 대우에 대해 작가노조는 작가라는 직업이 현재와 미래에 지속 가능하게 남을 수 있는 합리적인 보호책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작가 조합 제안에 대해 아마존은 1년 영업액의 0.006%인 3천2백만 달러만 제시했다.

UNSPLASH
UNSPLASH

영상 업계의 큰손 넷플릭스를 생각해 보자. 고양이 보고 갈래? 보다 넷플릭스 보고 갈래?가 자리 잡은 세상이다. 영상 제작은 물론 소비 방식까지 모두 넷플릭스화 돼버렸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발하기 전에는 시리즈물 편수도 많았다. 편수가 많으니 작가들 일거리도 많았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출시되는 시리즈물을 보면 대게 10화 미만이다. 전보다 일거리가 적고 스트리밍이라는 특성에 맞게 제작도 빨리해야 하니 원고도 단기간에 빨리 작성해야 한다. 할리우드 작가들의 경험담을 보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경영계가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돈을 버는 기간은 짧아지고 단시간에 일거리는 많아진 상황이라 보인다. 흥행이 되면 일거리가 없어질 걱정은 덜 해도 된다. 흥행이 되지 않는다면 다음 시리즈가 언제 촬영에 들어가게 될지 알 수 없다. 언제 다시 일거리가 생길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아야 한다. 스트리밍 시대가 작가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새로운 업계 환경으로 인해 변한 노동 환경 외에 이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는 것이 있다. 인공지능이다.

작가 조합은 영화와 TV 대본에 AI 기술 적용 제한을 목표로 하고 있다. AI를 사용해 원천 자료와 문학 자료를 작성하는 것에 대한 규정을 제안했다. 하지만, AMPTP는 작가 조합의 제안을 거절했다. AI 기술을 경계하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AI에 의해 각본이 쓰이면 작가들을 위한 일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또는 AI가 작성한 각본을 사람들이 수정하는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현재는 심각하지 않지만 스튜디오 회사들이 AI 기술을 더 채택하게 되고, 별도의 규제 없이 향상된 AI 기술을 이용하게 된다면 영상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들 생존권에 큰 문제가 된다. 작가들이 파업하는 이유가 이해된다.

미국 작가조합
미국 작가조합

작가조합 파업에 이어 배우조합도 7월 14일 파업을 시작했다. 마지막 배우조합 파업은 1980년이었다. 배우조합이 AMPTP에 요구하는 조건은 작가조합의 요구 조건과 비슷하다. 스트리밍 대기업에 공정한 수익 분배를 요구하고 더 나은 근무 조건과 AI 사용 제한이다. 스트리밍 이전 사업 모델에서는 방송 재상영 분배금을 지급했지만 스트리밍 회사들은 이와 관련한 정보를 밝히지도 공유하지도 않고 있다고 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 출연한 키미코 글렌은 자신이 받은 재상영 분배금은 27달러라고 인스타에 게시했다. 유명한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가 이 정도라면 다른 배우들은 어떨까.

kimikoglenn insta
kimikoglenn insta

배우조합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배우의 디지털 복제품(Digital Replica)이 만들어지거나 배우들의 목소리나 형상, 연기가 변한다면 배우들에게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며 공정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반면, AMPTP는 배우들의 동의나 배우들에 대한 보상 없이 배우들의 모습을 사용하고 싶다며 입장을 밝혔다. 이 부분은 초상권이나 저작권 침해 문제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배우들의 목소리나 얼굴 또는 연기를 허락 없이 사용하며 AI까지 접목시켜 재가공하겠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 이번 협상이 결렬되어 스튜디오가 규제 없이 AI를 사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극장에서 영화가 아닌 컴퓨터 그래픽만 보고 나오게 될 것이다. 배우들의 파업 이유가 남의 일 같지만 않다. 작가조합 역시 이들 파업에 대해 연대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AMPTP는 배우조합 파업이 수많은 업계 종사자를 재정적 어려움에 빠뜨리게 될 거라며 반발했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배우조합과 작가조합 모두가 비현실적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혼란을 가중시키기에는 세계적으로 최악의 시기라고 덧붙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번 파업을 가족을 부양하고 식탁에 음식을 계속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직업 배우에 관한 것이며, 텔레비전 프로그램 스태프 작가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들 절대 파업을 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파업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그게 지금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말한 것처럼 할리우드 업계 사람들이나, 그들이 만든 작품을 감상하는 소비자들도 파업을 원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일터를 거대 자본과 새로운 기술에게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지극히 인간적인 파업이다. 단순히 임금을 더 달라는 파업이 아니다.


* 두 노조의 동반 파업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배우로서 SAG를 이끌던 1960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 감독조합 DGA는 지난 6월 단체 협상에 성공해 이번 파업에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데드풀3, 글래디에이터2, 베놈3, 미션임파서블 등의 영화가 촬영 중단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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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얼핏 접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찾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잘 정리해주셔서 이제 이해가 됐네요. 인공지능의 등장이 어디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인간의 노동을 중심에 두고 고민해야 한다는 걸 또 느끼네요. 배우, 작가 조합의 파업이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기술이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시대에서 좋은 노동을 지켜내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은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입니다. 다국적기업이 점점 성장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보통의 삶을 만들어 나갈지 꾸준히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여기나 저기나 프리랜서들의 처우는 비슷하구나 싶은 생각도 들면서 저기에는 그래도 조합이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가 각자의 효용을 중시하는 사회라곤 하지만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가 주는 '즐거움'에 너무 많은 돈이 몰려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AI의 활동영역(?)이 확대되면서 인간이 더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배제'되거나 심지어는 종속되기까지 하고, 더 안좋은 노동을 인간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렴풋이 들었던 내용인데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I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떠오르고 있는데, 이들을 찬찬히 보다보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분배의 문제가 점차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소개해주신 할리우드에서의 파업이 긍정적 결과로 이어져 바람직한 선례로 남았으면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