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2024년 상반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영화 ‘서울의 봄’의 명대사이다. 12.12 쿠데타(군사반란)를 통해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은 쿠데타에 성공한 이후 약 10년간 정권을 잡는다. 전두환은 80년 5월의 광주에서 일으킨 참혹한 학살과 수많은 폭압 정치를 저지르고 노태우를 후계로 세운다. 이러한 만행을 저지르고도 ‘광주는 폭동’이라고 거짓 주장하며, 과오를 반성도 하지 않은 채 회고록을 남기고 생을 마쳤다. 앞서 언급한 명대사는 영화상 연출이며, 전두환이 실제로 했던 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권력을 장악한 후 ‘대통령’으로서 받을 평가와 쿠데타에 실패한 ‘반역자’로서 받을 역사적 평가는 명백히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전두환이 대통령이자 상당한 권력을 누리고 행사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에 부역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거짓 주장’에 동조하며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는 누가,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그 해석이 ‘자유’라는 이름을 달고 왜곡과 폄훼의 명분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학기 우리는 헌법에도, 국민들의 역사의식에도 남아있는 진실에 대해 왜곡하고 폄훼하는 세력, ‘뉴라이트’가 무엇이고, 그들이 어떤 주장을 하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올바로 쓸지 탐구해보고자 한다.
1. 역사는 의지를 가진다
역사를 집으로, 역사가를 건축가에 비유해보자. 역사적 자료(유물, 기록 등)인 사료는 ‘건축 자재’로 비유할 수 있다. 건축가의 건축에 대한 생각이 건축 설계로 구체화되 듯 역사가의 사회의식은 역사 연구로 구체화 된다. 역사가는 역사를 연구하고 특정한 역사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태어난 역사는 대중들에게 전달되어 어떠한 ‘역사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우리는 이를 ‘역사관’이라고 한다. 결국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가를 통해 탄생한 서사이자 대중들이 특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대중들 안에 자리 잡은 역사의식은 사회를 인식하는 토대가 되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밑바탕이 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역사가의 역사 연구에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사회의지’가 내재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1945년 8월 15일은 일제의 입장에서는 ‘패전’이고, 조선의 입장에서는 ‘해방’, ‘광복’이었다. 패전은 일본 제국주의가 세계를 점령하고, 식민지배 하려는 야욕이 좌절되었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해방과 광복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부당하게 점령당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고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던 민중들의 사회의지가 드디어 실현되었음을 뜻한다. 또 다른 예로 1894년부터 조선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해 현재는 ‘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전쟁’ 등의 이름으로 부르며 그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2023.5.18.)되었다. 하지만 당시 왕과 지배자들은 이 사건을 ‘동학난’, ‘민란’으로 부르고 이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이들을 ‘동비(동학을 지지하며 무장하고 떼를 지어 다니며 사람을 해치는 도둑)’라고 칭했다.
이렇듯 역사는 역사가의 사회의식과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석’의 범주 안의 모든 서술이 역사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왜곡된 사회의식에 따라 해석된 역사는 타당성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로 예시를 들었지만 역사를 배우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인식하는 행위는 과거의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최근 사료 중 특정 부분만 발췌해서 편향되게 해석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 미화, 폄훼하는 시도들이 다수 있다. 심지어는 헌법에 명시된 3.1운동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계보, 4.19혁명의 이념마저 왜곡하려고 한다. 이는 말 그대로 ‘역사를 왜곡하고 후퇴시키려는 사회의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2. 상식을 벗어나는 역사관
“일제시대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일본 국적이었다.”
“정치적 목적으로 친일파 논쟁이 과도하게 이루어졌다.”
“(백선엽 장군에 대해)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사실만으로 진실을 오해한 것 아니냐", "친일파라는 불명예를 쓰고 별세했다.”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 (독립기념관장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
“균형 잡힌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봐야 하며, 국정 교과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새로 임명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어록이다. 김형석 관장은 과거 ‘뉴라이트’ 계열 단체인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이사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즉, 위의 내용은 뉴라이트에서 주장하는 역사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뉴라이트의 정체는 무엇이며,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한국에서 뉴라이트’(New Right)는 ‘신보수주의 우파’라는 뜻이다. 기존의 ‘올드라이트’(Old Right, 낡은 우파)와 차별화하려 이런 이름을 썼다. 이들은 기존 보수층인 올드라이트가 구시대적 반공주의만을 유일한 이념으로 내걸고 있다고 비판하며 등장했다. 이들이 반공을 반대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에는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가리지 않고 독재자라고 배척했던 대표적 친일 반공주의자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그걸 넘어서 새로운 국가주의적 정통성을 주장하며 독립운동을 폄훼하고 친일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헌법에도 명문화되어 있는 임시정부의 정통성마저도 부정하는 것이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뉴라이트 세력의 이념적 근거를 마련해준 대표적 인물은 1987년 ‘낙성대경제연구소’를 만든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다. 안 교수는 1986~1987년 일본 도쿄대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유입된 기술과 자본 등으로 한반도의 근대화가 이뤄졌으며 해방 뒤에는 이를 통해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뉴라이트의 이념적 근거를 마련한 사람들의 특징은, 정통 역사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나 정치학자가 다수라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실증주의를 내세우면서도 일제강점기의 산업 통계를 왜곡하거나 일부를 발췌하여 편향적으로 해석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의 근거로 삼는다. 이는 친일적이며, 학문적으로도 실증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안병직 교수의 제자로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에서 공동대표를 맡은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9년 식민지 근대화론을 다룬 책 ‘반일 종족주의’를 내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일 종족주의’는 일제 강점 당시 일본은 조선에서 식량을 수탈하지 않았고, 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으며, 독도가 원래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도 없다고 주장한다. 아래는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의 서술은 일제시기 농민의 궁핍을 엉뚱하게도 일제가 쌀을 수탈했기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수출’한 것인데도 말이죠. 그들은 거짓말이라도 만들어내서 일제를 비판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교육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낙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일본 기업으로 하여금 한국인 한 명당 1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 또한 명백한 역사왜곡에 의해 근거한 황당한 판결입니다. 모집과 관알선에는 법률적인 강제성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조선인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맡겨졌습니다. 당시 조선인 청년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로망’이었습니다.”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 정부가 독도가 역사적으로 그의 고유한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제시할 증거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은 실정입니다. 독도는 한국인을 지배하는 반일 종족주의의 가장 치열한 상징으로, 가장 신성한 토템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이런 저열한 정신세계로는 독도 문제에 대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발적인 시설이나 관광도 철수하고 길게 침묵해야 합니다. 최종 해결은 먼 훗날의 세대로 미루어야 합니다.”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반일종족주의> 중
이들은 왜 이렇게 일본에 머리를 숙이는 것일까? 뉴라이트 역사관은 시장주의가 합리적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에서 시작한 ‘합리적 시장 가설’을 역사에도 적용한다. 시장이라는 경쟁의 장소에서 승리하면 비판 없이 미화한다. 즉 뉴라이트는 ‘승자의 역사관’을 전적으로 긍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열강이 겨루던 시기에 일본은 승자였고 조선은 패배자였다. 문제는 이런 역사관으로 세계를 보니 피해자를 향한 공감은 찾기 힘들고, 오히려 피해자를 실패자로 여긴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일제강점기 당시 자주독립과 해방을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들과 임시정부의 역사는 지워지고, 1919년부터 전국에 울려 퍼졌던 수백만 민중의 3.1 만세 시위에서는 어떠한 가치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이들의 이러한 왜곡된 역사관이 비단 시장주의에 입각한 판단 때문만은 아니다. 뒤에 이어서 보겠지만 뉴라이트의 상식을 벗어나는 듯이 보이는 역사왜곡은 그럴만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 작년부터 이어졌던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 발표(3.6), 일본 핵오염수 방류(8.25) 방조,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8.31) 등 친일적이고 저자세의 외교는 윤석열 정권에게 그해 8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태평양지역의 해양 안보를 이유로 한 ‘한미일 해양안보협력 프레임워크’를 출범시키는 ‘성과’를 남겼다. 지난 9월 초 일본의 기시다의 방한 일정에 맞추어 서울 지하철역 전쟁기념관 등의 독도 조형물이 철거된 것도 단편적인 예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일, 한미일 간의 동맹의 ‘방해물’로 여겨졌던 식민지배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사죄배상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포기한 대신에 얻은 것은 피해자들의 눈물과 핵오염수, 독도 내어주기, 한반도 전쟁위기 고조로 보인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반응이다. 뉴라이트의 부흥과 한일 외교의 불균형은 그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라고 전문에 명시했다. 그러나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은 이처럼 헌법이 선언한 국가 정체성을 무시하고, 1945년 8월 15일을 광복절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영훈 교수는 2006년 7월 31일 자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칼럼을 썼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일제가 무리하게 (…) 미국과 충돌하여 제국이 깨어지는 통에 이뤄진 것”이라며 광복절을 평가절하한 뒤, 남한 단독정부가 들어선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이승만 대통령은 ‘민국 30년’이란 연호를 쓰며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된 해가 건국의 뿌리임을 분명히 했다.
글이 길어 이후의 연재 형식으로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뉴라이트가 어떻게 오늘까지 이어져왔는지, 최근 정부가 시도했던 왜곡된 역사 교과서는 어떤 것인지, 서울-인천 7개 대학에서 모인 100여명의 대학생들이 모인 역사동아리 '사다리'는 왜 뉴라이트를 새로 바꿔 쓰려고 하는지 내용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여러분은 수많은 사회 이슈 속에서 역사왜곡에 분노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올바른 역사를 지켜나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 여러분의 생각을 묻고 싶습니다.
코멘트
4앞으로의 연재 응원해요. 역사는 쓰이는 사람들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에 동의하고요. 다만 제가 '뉴라이트는 대체 왜?'라는 걸 떠올릴 때, 단편적으로 생각하다보면 '에이 그걸로 다 설명 가능하겠어?' 이런 질문이 남더라고요. 예를 들어 시장자유주의에 입각해서 그런 것이다, 또는 OOO 정권의 지지율(또는 재창출)을 위한 것이다, 또는 한미일 동맹을 굳건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같은 거요. 그런데 이런 설명이 어딘가 단편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왜냐하면 저 스스로 그런 이유로 그 선택을 납득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에요^^) 풍부하고, 두꺼운 해설 기대할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역사가 어떻게 기록되어 왔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관점에서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이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문장이라고 늘 느낍니다. 반면에 윤석열 정부의 뉴라이트 인사들에 대해선 여러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동시에 드는데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통령 선거 한 번 이겼다고 스스로를 '승자'로 생각하며 과거의 역사까지 부정해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주장이 반복되기 때문에 '왜곡', '날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걸 뉴라이트 인사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네요.
NEW WRITE! 좋네요. 이명박정부 시절 등장했다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다시 복귀해서 황당해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역사를 다루는 것이 낡고 고루하다고 인식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역사에 대한 치열한 WRITE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재라고 하셨는데, 기대됩니다!
한때 굉장히 핫한 주제였다가 최근에는 잠잠해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연재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