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팩트체크] 태영호 의원이 주장한 “제주 4.3은 명백히 김일성 자행”, 사실일까요?

20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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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물어보고, 찾아보고, 확인해서 정리합니다.
팩트체크
제주 4.3은 김일성에 의해 벌어졌다?
태영호 의원 주장의 개별적인 근거들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근거들은 김일성에 의해 제주 4.3이 발생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았습니다. 개별 근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를 연결시켜주는 맥락이 없다면 진실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이 아님

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제주 4.3 이야기입니다. 13일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제주 합동연설회에서 제주 4.3이 김일성 정권에 의해 발생했다는 ‘김일성 지시설’을 주장했습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발언은 아래와 같습니다.

4.3 사건의 장본인인 김일성 정권에 한때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제주 4.3 사건에서 희생된 유가족분들과 희생자분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빕니다.

이후 태 의원은 “제주 4.3 사건, 명백히 北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제주 4.3의 배경에 김일성 지시가 있었다’는 태 의원 주장에 희생자유족회 등 여러 4.3 단체들은 즉각 사과와 최고위원직 후보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4.3 단체들의 입장 표명 후 14일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태 의원은 자신의 입장을 밝혔는데요. 이날 발언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어제 제주도에서 있었던 합동연설회에서 제주 4.3 사건과 관련한 팩트 하나를 터뜨렸는데, 이 팩트를 터뜨리니 더불어민주당이 저를 보고 최고위원 후보 경선에서 사퇴해라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은 오늘 저를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 사과하라고 합니다. 아니, 사과해야 할 사람은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인데 김정은한테는 입 한번 뻥끗 못 하고 저보고 사과하라고 하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태 의원은 같은 날 게시한 페이스북에 게시글에서도 기존 주장을 고수했습니다. 게시글에는 태 의원이 연설회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김일성 지시설’의 근거들도 등장합니다. 태 의원이 내세운 근거들이 사실인지 같이 확인해보시죠.

 

태영호 의원의 ‘김일성 지시설’과 근거 4가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선 확인 대상을 명확히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태영호 의원 주장과 근거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태 의원의 발언과 페이스북 게시글을 종합하면 ‘제주 4.3은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발생했다는 게 핵심 주장입니다. 태 의원은 이를 뒷받침 하는 근거 4가지를 제시했는데요.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태 의원 페이스북 글을 그대로 가져온 후 편의상 번호를 붙였습니다.(아래부터는 해당 내용을 가독성을 위해 근거 1~4로 정리하겠습니다)

1. 나는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해방 후 혼란기에 김일성은 유엔의 남북한 총선거 안을 반대하고 대한민국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며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기 위해 당시 남로당에 전 국민 봉기를 지시했다.

2. 심지어 4.3사건 주동자인‘김달삼 고진희’ 등은 북한 애국열사릉에 매장되어 있다. 이들을 미화한 북한 드라마를 유튜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즉 북한은 아직도 4.3사건 주동자들은 추앙하고 영웅 대접을 하는 것이다.

3. 당시 남한 전역에서 있었던 남로당 활동의 정점에는 김일성과 박헌영이 있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4. 김대중 대통령도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정리한 4가지 근거 외에 태 의원의 게시글에는 “만일 당시 남로당의 제주도당이 김일성의 5.10 단선 반대 노선을 집행한다며 무장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등 다른 문장들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추측 등은 사실관계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인 대상 근거에서 제외했습니다.(태 의원이 제시한 근거들이 김일성 지시설을 입증하는 타당한 근거인지는 사실관계 확인 후 정리할 예정입니다. 혹시나 정리된 근거를 읽고 같은 생각을 하신 분들이 계신다면 천천히, 끝까지 읽어주세요)


‘김일성 지시설’ 진상조사보고서로 반박한 YTN

태영호 의원 발언 후 당연히 언론에서도 검증 보도가 나왔습니다. YTN의 팩트체크 꼭지 팩트와이 ‘태영호 "제주 4·3 사건, 김일성 지시로 촉발"...특별법·진상보고서 봤더니’도 태 의원의 김일성 지시설을 검증했는데요. 검증 방법으로 제주 4.3 평화재단 홈페이지에 게시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활용했습니다. 

YTN은 태 의원이 언급한 ‘김일성’에 초점을 맞췄는데요. 보고서에서 ‘김일성’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대목을 검색해 확인한 겁니다. 검색 결과 보고서에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3차례 등장”했는데요. 3차례 등장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당시 한반도의 상황을 설명하며 김일성이 소비에트 연방총리 스탈린, 독립운동가 박헌영 등과 함께 명예의장으로 추대되었다는 대목

2. “김일성이 싫어서 월남했다”는 극우단체 ‘서북청년회’ 출신으로 월남 이후 제주도민 진압에 동원됐던 경찰의 진술

3. 경찰의 고문으로 자백했다고 주장한 피해자의 진술 중 등장하는 고문 방식 ‘김일성 비행기’

보신 것처럼 어느 것도 김일성 지시설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YTN은 “우리나라 특별법에 근거한 진상조사 보고서 어디에도 ‘김일성 지시로 4.3사건이 시작됐다’는 내용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보수단체들이 진상보고서가 가짜라고 주장하며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도 덧붙였고요. 하지만 진상조사보고서에는 YTN 보도에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 더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확인해보시죠.

 

‘김일성 지시설’의 바탕이 된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 진상조사보고서가 부정

보고서에서 제주 4.3의 배경 및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중요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바로 보고서에서 김일성 지시설의 바탕을 부정하는 대목입니다. 태 의원의 김일성 지시설은 ‘김일성, 박헌영이 남로당 활동의 중심이었다’, ‘김일성의 지시로 남로당이 제주 4.3을 일으켰다’는 논리인데요.

태 의원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일성의 지시로 남로당 중앙당이 지령을 내려 남로당 제주도당이 제주 4.3을 발생시켰어야 합니다. 이 내용은 남로당 중앙당이 제주 4.3을 지시했다는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과 유사한 맥락인데요. 진상조사 보고서 162페이지를 보면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부 자료에는 4.3사건이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그 배후에는 북한과 소련이 있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한 글들도 있다.

확인하신 것처럼 태 의원의 김일성 지시설 주장은 보고서에 ‘북한 배후설’로 언급됩니다. 그렇다면 보고서는 태 의원 주장의 바탕이 된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을 어떻게 정리했을까요? 보고서 163페이지 내용을 같이 보시죠. 

그런데 이 글은 실제 상황과는 너무 동떨어진 내용들이었다.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에서부터, 문상길 부대가 경찰감찰청 등을 점령한 것, 14개 서를 모조리 습격했다는 내용, 이중업 이재복 강문석을 제주에 파견했다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실증적으로 입증된 것은 없다. (중략)
존 메릴 박사는 그의 논문에서 “4월 3일의 공격은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남로당의 캠페인으로부터 발생되었지만 제주도당부의 전투적인 지도부의 주도 아래 감행되었다”고 분석했다. 존 메릴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조사 결론 으로는 중앙당의 지령이 없었다는 것이다”고 밝히고 “4 3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대의 분석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보신 것처럼 진상조사 보고서는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제가 가지고 온 존 메릴 박사의 논문 외에 다양한 근거가 보고서에 언급되는데요. “남로당 전문 연구가”로 표현된 북한과 통일문제 연구자인 김남식 씨도 중앙당 지령설을 부정했고요. 남로당 제주도당 정치위원이었던 이삼룡 씨도 중앙당의 지시가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근거로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가 보고서 164, 165페이제에 등장하는데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쉽게 말해 중앙당 지시가 없어 지원 협의에 실패했다는 내용입니다.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는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이 사실이 아님을 명확하게 지적했습니다. 근거도 여러 가지이며, 단순 증언을 넘어 이를 입증하는 문서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자연스레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을 바탕으로 나온 북한 배경설, 김일성 지시설도 반박됩니다. 태 의원이 내세운 근거 중 근거 1, 3은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으로도 사실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개의 근거가 남아 있으니 나머지도 확인해보겠습니다.


김달삼, 고진희에 대한 설명은 문장 자체로는 사실

근거 2부터 정리해보죠. 태영호 의원은 제주 4.3의 진행 과정에 등장하는 김달삼, 고진희가 애국열사릉에 매장되어 있고, 북한이 이들을 미화한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저는 애국열사릉이 어떤 곳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애국열사릉을 구글에서 검색해봤는데요. 국립통일교육원에서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해방 이후 북한의 유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묘지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충원처럼 이곳에 묻힌 인물은 북한의 국가유공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 태 의원 주장처럼 김달삼, 고진희가 애국열사릉에 매장됐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어떤 자료를 찾으면 좋을지 막막해서 우선 ‘김달삼’과 ‘애국열사릉’이 같이 들어가 있는 정보를 찾아봤는데요. 태 의원 발언 후 나온 기사들이 많아서 2023년 1월 1일 이전 자료를 중심으로 확인해봤습니다. 검색해보니 통일뉴스의 ‘평양 신미리애국열사릉 편’이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이 글은 통일운동가인 최재영 목사가 본인의 방북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는데요. 이런 대목이 등장합니다. 

사이좋게 두 형제가 나란히 안장된 경우도 있었다. (중략) 또한 유동열-최동오, 안중근의사의 조카인 안우생-김달삼, 부주석을 지낸 김병식-안우생 등은 서로 사돈지간이다. 남한의 단독정부 단독선거에 반대하여 4.3봉기를 일으켰던 고진히(고진화)라는 제주도의 해녀도 남편 강규찬과 함께 여기에 묻혀 있어 부부지간의 묘에 해당되고, (후략)

통일뉴스의 기사뿐만 아니라 한겨레 이만열 칼럼 ‘잊힌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한다’, 오마이뉴스 ‘아물지 않은 상처 제주4.3과 김달삼‘ 등에서도 애국열사릉에 김달삼의 묘가 있다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언론 보도는 원자료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검증 자료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요. 북한 관련 정보는 공식 자료 확인의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복수의 언론 보도가 각기 다른 근거를 통해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태 의원 주장 중 애국열사릉 매장 대목은 사실로 보입니다.

북한 드라마를 언급한 대목도 검색을 통해 확인해봤습니다. 마찬가지로 구글을 활용해 ‘김달삼, 고진희’와 ‘북한 드라마’가 포함된 자료를 검색해봤는데요. ‘김달삼’의 경우 유의미한 검색 결과가 없었지만, ‘고진희’의 경우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해당 내용은 북한의 뉴스와 방송프로그램을 연구, 정리한 KBS 통일방송연구 홈페이지에 2006년에 게시된 글인데요. 북한 드라마 ‘한나의 메아리’에 대한 정리본입니다.

드라마에 대한 설명을 보니 “이 드라마는 ‘반미’선전과 ‘북한 정권 수립의 정당성’ 선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4.3사건’에 대한 북한의 시각도 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주로 ‘미군의 잔인하고, 기만적인 모습’에 초점을 두고 그리고 있으며, 드라마의 끝부분은 ‘북한정권 수립의 정당성과 김일성 우상화’ 선전에 치중하고 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실제로 태 의원이 언급했던 고진희가 ‘고진히’라는 배역으로 나오기도 하고요. ‘한나의 메아리’를 검색하면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근거 2는 문장 자체로는 사실입니다.

 

김대중의 CNN 인터뷰 제주 4.3 발언 다룬 언론 보도 존재

근거 4도 비슷했는데요. 태영호 의원이 언급한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은 2018년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8년 CNN과 인터뷰 할 때 제주 4.3은 공산폭동이라고 말 한 바 있다”고 주장해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 이 시기 한겨레, CBS노컷뉴스 등에서 홍 대표의 발언을 검증했는데요. 검증 과정을 보면 두 언론사 모두 ‘김대중 사이버 기념관’에 게시된 게시글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기사로 확인한 게시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질문: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48년 제주 4·3 사태에 대한 진상은 서로 언제 공개할 방침입니까?
-대통령: 제주 문제가 국회에 청원되어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과거의 억울한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이 게시글을 직접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겠죠? 그래서 직접 확인하고자 했으나 현재 김대중 사이버 기념관의 홈페이지가 사라져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검증에서 가중 중요한 건 원문을 확인하는 거라는 사실 기억하고 계시죠? 김 대통령은 CNN과 인터뷰를 했으니 인터뷰 원문을 찾는다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1998년 11월 23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인터뷰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겠죠. 국내 언론이 인터뷰를 전달한 기사를 찾을 수 있다면 같은 내용을 확인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습니다.(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선 과거 신문을 검색할 수 있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1998년 11월 23일과 24일 기사들을 검색해봤습니다. 검색 결과 CNN 인터뷰 내용을 다룬 기사들은 존재했지만 제주 4.3 관련 발언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KBS의 과거 보도를 한 번 더 찾아봤는데요. 다행히 여기서 관련 내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KBS ‘김대통령 CNN 회견, 북핵 의혹 점검돼야’를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김대통령은 이와 함께 제주 4.3사건에 대해 공산당의 폭동으로 발생한 일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KBS 보도 내용과 김대중 사이버 기념관 게시글의 내용은 큰 틀에서 맥락이 일치합니다. 즉, 태 의원이 페이스북에 언급한 김대중 대통령이 해당 발언을 했다는 문장 자체는 사실일 것으로 보입니다.(CNN 인터뷰 원문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로 단정 짓지 않았습니다. 혹시 저보다 뛰어난 검색 능력으로 인터뷰 원문을 찾으신 능력자분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단편적 사실만으로 진실은 완성되지 않는다

태영호 의원이 내세운 근거를 함께 확인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사실은 검증 불가능의 영역이 대부분입니다. 태 의원이 내세운 근거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보셨다시피 정확한 상황을 입증하는 근거를 찾는 것이 까다롭고, 오래된 역사일수록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근거가 없다면 당연히 추측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 검증이 이뤄질 수 없겠죠. 그럼에도 태 의원의 발언을 검증하고자 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근거의 사실 여부를 제외한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죠. 누군가가 ‘나한테 치즈 케이크 여러 조각이 있다’라고 말한 뒤 ‘그러니까 나는 치즈 케이크 한 판을 가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이 사람을 신뢰하실 건가요? 저는 매우 못 미덥습니다. ‘여러 조각’이 얼마나 되는지도 명확하지 않은데 그걸 ‘한 판’이라고 단정 짓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나한테 치즈 케이크 8조각이 있다’로 문장을 바꾼다면 어떨까요? 여전히 저는 이 사람이 의심스럽습니다. 케이크 한 판이 몇 조각으로 잘렸는지 모르기 때문이죠.

뜬금없이 케이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실과 진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진실은 사실을 종합해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사실이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진실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한 여러 사실이 서로 맥락으로 연결됐을 때 비로소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도 맥락입니다.

앞서 같이 확인한 것처럼 태 의원이 김일성 지시설을 주장하며 내세운 근거들은 사실인 것도, 사실이 아닌 것도 있었습니다. 근거의 사실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맥락이죠. 태 의원이 내세운 근거들은 개별적으로는 사실일 수 있어도 김일성 지시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본인이 대학생 시절에 제주 4.3은 김일성의 지시였다고 배운 것, 북한이 제주 4.3 과정에 등장하는 남로당 인물들을 국가유공자 대우하고 있다는 것, 김대중 대통령이 제주 4.3 관련 발언을 했다는 것은 모두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들이 김일성이 제주 4.3을 지시했다는 태 의원 주장을 진실로 만들어주진 않습니다. 개별 사실을 엮어 진실로 해석될 수 있는 맥락이 없기 때문입니다.

태 의원 주장과 근거를 검증하며 저는 앞서 예시로 설명한 케이크가 떠올랐습니다. 태 의원의 주장은 마치 ‘나는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 초코 케이크 한 조각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이게 치즈 케이크라 배웠다. 나는 이제 치즈 케이크 한 판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실을 나열하더라도 개별 사실을 연결해주는 맥락이 없다면 진실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아물지 않은 국가 폭력, 학살의 상처 다시 헤집은 태영호

마지막으로 태영호 의원의 주장과 근거를 검증하며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태영호 의원이 ‘태구민’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와 당선됐을 때 그가 소속된 정당이 내세워 온 색깔론과 적대적인 대북관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선 신분과 출신을 떠나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태 의원의 당선은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 색깔론 정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발언을 통해 태 의원 당선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차별해소 기회에 대한 희망이 조금은 사그라들었습니다. 태 의원은 제주 4.3 김일성 지시설을 주장하며 ‘종북좌파 척결’을 들고나왔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세웠던 케케묵은 색깔론을 꺼내 든 것입니다. 태 의원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분열과 갈등을 유발하는 색깔론이더라도 자당의 지지자들이 원한다면, 본인이 권력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검증 과정에서 언급했던 진상조사 보고서를 보면 무장봉기 발발 초기 무장대 인원이 약 350명이라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반면 제주 4.3에서 희생된 제주도민은 약 2만 5천~3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희생자의 숫자만으로도 1948년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일은 명백한 학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피해 당사자이자 목격자, 생존자인 이들이 증언한 내용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상조사 보고서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의 증언은 차마 읽기 힘든 정도의 학살 현장이 담겨 있습니다.

태 의원이 색깔론을 꺼내 들며 제주 4.3을 이용했다는 게 큰 문제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주 4.3의 배경에는 5.10 단독 선거가 있었고,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색깔론을 이용한 학살도 서슴지 않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태 의원은 2023년에 과거 학살 세력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들고 와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했습니다.

제주 4.3은 아직 공식적인 명칭이 없습니다. 그 영향으로 제주 4.3을 폭동이라 부르는 이들과 항쟁으로 정리하는 이들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1980년 5월의 광주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기 전까지 있었던 갈등과 동일합니다. 우리 사회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역사적 과오의 인정과 사과가 필요합니다. 수십년간 외면됐고, 아직까지 성격조차 정해지지 않아 여전히 아물지 않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헤집는 발언으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태 의원의 제주 4.3 김일성 지시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마지막으로 자료를 조사하던 중 알게 된 TMI 하나를 공유합니다. 태영호 의원은 북한의 보복 등을 피하기 위해 주민등록상의 이름을 가명 ‘태구민’으로 사용했습니다. 그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태구민이라는 이름으로 당선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출마 당시 태 의원은 이름인 ‘구민’은 북한 주민들을 구원한다는 뜻에서 가지고 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거를 계기로 개명 신청을 했고, 당선 후 개명 절차가 완료됐습니다. 본래 이름으로 돌아왔지만 태 의원이 남은 임기 동안은 또 하나의 이름 ‘구민’의 뜻이 잘 드러나는 의정 활동을 펼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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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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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서 태의원은 팩트만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말하네요.

 "사과할 거리를 알려주면 사과하겠다"고.

아직 한국 사회에서 태의원 같은 사람이 '의원'의 직함을 달고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슬프네요.

태의원의 문제제기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동의가 되지 않네요. 국회의원의 역할이 이런 것일까요? 본문 마지막 소제목에 공감이 갑니다. '아물지 않은 국가 폭력, 학살의 상처 다시 헤집은 태영호'. 국회의원은 공간경찰, 공안검사도 아니고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제시해주셔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극적으로 종족(?)간 갈등을 부추겨, 여러 다른 문제들을 묻어버리고 지지를 결집하겠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면 제가 너무 넘겨 짚은 걸까요? 

선우님의 말씀에 적극 동감합니다. tmi를 보니 더 눈에 띄네요...세세한 팩트체크 감사합니다.

....;; 아직도 이런 사람이...;; 싶다가도 여전히 먹히는(?) 전략이니 그랬겠지요?...

태 의원의 개인적인 사항이나 월남 과정의 의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정권의 위기를 이런 식의 종북몰이, 색깔공방으로 시선을 돌리려 하지 마십시오. 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