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대화는 세상을 부드럽게 바꾼다 (2024 한국의 대화 참여 후기)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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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봉도치야 고마워

대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재밌을 것 같다." 2024 한국의 대화 홍보글을 단체 톡방에서 보았을 때 든 첫 생각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였다. 온라인에서 익명의 사람들은 늘 날이 서 있었고, 그 영향으로 오프라인에서는 점점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는 명절 때 어르신들의 질문이 "꼰대"로 악마화되곤 했고, 주변 어르신들은 자신이 그 "꼰대"로 낙인찍힐까 봐 점차 말을 아끼시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이미 알고리즘의 필터버블로 원하는 콘텐츠에만 둘러싸여 있는 시대다. 불편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일지라도, 한 번쯤은 주의 깊게 듣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의 성장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대화의 기본인 상호 간의 예의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누군가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염려되었던 점

26일 행사장으로 향하면서 읽었던 롱블랙의 의사결정에 관한 아티클을 통해 과거 읽었던 <바른 마음>이란 책이 떠올랐다. 아티클과 <바른 마음> 모두 인간의 도덕성(또는 의사결정)에 있어 감정에 의한 직관이 우선하고, 이후 전략적인 추론을 통해 도덕성을 정당화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동일한 행동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먼저 "거부감"으로 그것의 도덕성을 판단하고, 이후에 여러 근거를 들어 그 판단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성은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선천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한국이라는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같은 사안을 다르게 평가하고, 각자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사장에 도착하여 한국의 대화에 대한 설명을 들은 순간, 과연 이성적인 대화가 감정적인 도덕성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핵심적으로 느꼈던 점

타인은 한끗 차이였다.

30대 남성인 나는 4인 대화를 신청했고, 50대 이상의 남성, 20대 남성, 20대 여성과 매칭되었다. 평소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50대 이상의 남성분과 매칭된 점이 고무적이었고, 바라던 바였다.

<노키즈존이 어린이에 대한 차별일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화가 특히 인상 깊었다. 우리 네 명의 대화자는 모두 다른 답변을 선택했다. '매우 그렇다'부터 '매우 아니다'까지, 얼핏 보면 서로 완전히 다른 사고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모두 '약자에 대한 차별을 방지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이견 없이 동의했다. 다만, 누구를 약자로 보는가에 대한 시각차가 있었다. 노키즈존을 차별로 보는 쪽은 성인 중심 사회에서 어린이를 약자로 보았고, 차별이 아니라고 보는 쪽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 사이에서 자영업자를 약자로 보았다.

우리는 평소 사람들의 생각이 대부분 비슷하고, 한 가지만 다른 것을 "반대"라고 지칭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날을 세워 대립하는 상대방은 나와 대부분이 닮은 사람일 수 있다.

변화의 시작점에 서서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가" 보다는 "대화"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타자화하여 악마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개인이 아닌 집단의 대표로 여기게 된다. 집단과 집단의 충돌 속에서 나는 어느덧 물러설 수 없는 검투사가 되어버린다. 물론 법 제정과 같은 집단적 정치 과정에서는 이런 태도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한 발 물러서서 상대방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고, 상대방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는 논쟁이 불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 서로 이해할 수 없더라도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분노가 많이 누그러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있는 건 검투사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나와 다르지 않고, 거의 닮은, 개인이자 사람이니까. 이러한 대화의 장이야말로 사회를 부드럽게 하는 변화의 시작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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