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거 재미있겠다!
<한국의 대화> 홍보 글을 봤을 때의 첫 느낌이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랑 '토론'이 아닌 '대화'를 한다고? 마침 시간도 가능해서 단번에 (zoom참여로)신청하고, 주변에도 추천했다. 특히 교사로 일하고 있는 지인들에게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너무 좋을 것 같다며 소개했다.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난 후에는, 학교에서부터 이런 시간이 필수로 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제시된 10개의 질문들은 자주 접하는 물음이어서, 확고한 나의 생각이 있는 주제들이다. 가끔 지인들과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또 생각의 다름이 확인될 경우에는 굳이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지 않는다. 이번 기회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가 됐다. 기왕이면 4인이 내용이 풍부할 것 같아서 4인으로 신청했다. 시작할 때 작년 영상을 보여주신 덕분에 행사의 전체적인 흐름과 취지를 파악할 수 있었고, 기대감이 더욱 상승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다만 처음보는 사람들과 줌 공간에서 사회자도 없이 진행하는 대화는 처음이라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과정 내내 ‘어떻게 하지?’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게 됐다. 지금부터는 그 과정의 기록
전체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가 마무리되고 4인대화방이 만들어졌다, 사회자는 정하지 않았지만 곧장 누군가 나서서 제시된 주제로 아이스브레이킹을 시작했다. 키워드를 가지고 자신을 소개하기, 관심사 말하기 등이었다. 나를 나타내는 하나의 단어가 뭘까를 고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를 얼마나 노출하는 게 좋을 지도 걱정이었다. 먼저 시작한 분들이 편안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준 덕분에, 나 또한 자연스럽게 인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소개 대화를 나누면서 1회성 온라인 대화 모임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으로 제일 적절한 방법은 무엇일지 계속 고민이 들었다. 내가 저사람에 대해 저런 정보까지 알아야 하나 싶기도 했고, 또 추상적인 소개에 대해서는 추가 질문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다. 내 소개에 대해 추가 질문을 받고 좀 당황스런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이니, 아예 소개를 안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참, 사전에 시간관리자 2인, 호응자 2인으로 역할을 정하고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회자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이 대화의 진행에 대한 책임을 공동으로 인식하며 자연스러운 역동성 속에서 대화가 진행된 것 같다.
의견이 다른 사람과 토론이 아닌 대화 하기
4개의 주제로 대화를 진행했는데, 처음 시작한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일본과의 협력은 지속되어야 하는가' 하는 주제는 4명의 의견 스펙트럼이 골고루 분포했다. 나의 스펙트럼과 가장 멀리 있는 참여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왜 저렇게 생각하지?' 싶어서 바로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졌다. 평소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게 아니죠' 라며 나의 주장을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의 자리는 토론이 아니니까,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펙트럼 끝의 그 분도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가르치려는 듯이 말한다고 느껴진 순간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신거죠?‘라는 말을 덧붙였다. 토론이 아니라 대화이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마무리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주제는 노키즈존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에게 동일한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해, AI 기술의 위협에 대해서 였다. 이 주제들은 4인의 참여자들 의견이 대체로 비슷해서, 대화가 심심해져 버리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맞아맞아’ 하고 맞장구를 치는 선에서 마무리하지 않고, 각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들을 나누다 보니 재미있고 풍부한 대화가 이어졌다. 이야기가 옆길로 살짝 빠지는 순간들도 있었는데, 주제와 일치하지 않는 대화가 잠시라도 이어지는 순간에는 제지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모임을 하거나 회의를 할 때 나는 주로 이런 역할 담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번, 이건 토론이 아니라 대화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게 그런 역할이 주어지지도 않았고,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규칙 또한 없었다. 이런 내적 고민을 하는 사이, 대화는 금새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어떤 방식으로 질문해야 할까
주어진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질문이 명확한가? 질문에 대해 제대로 일고 있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 도중에 AI기술과 자동화 기술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은 것 같았고, 서로 '위협'이라고 느끼는 분야들이 창작자, 일자리 등 각기 달랐다. 그래서 질문이 좀 더 세분화 되는 것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용어가 적절한 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도 '외국인 노동자'라는 단어에서 백인을 상상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혜택'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도 모호하다. 적어도 빠띠가 주최하는 행사라면, 편견이 들어가 있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한다면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화를 유도하는 행사가 될 것 같다. <한국의 대화>의 의도가, 세상을 어떤 정치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캠페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상호 접촉면을 넓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대화'의 자리가 만들어지기를
신나게 시간이었는데, 4개의 주제를 충분히 다루기에는 시간이 아쉬웠다. 시간이 좀 길거나, 시간 내에 다루는 주제를 줄여도 좋았을 것 같다. 나같은 경우는 독서모임 들에 참여하고 있어서, 세상일에 대한 얘기도 종종 하는 편이다. 하지만,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보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는 굳이 만나지 않는다. 때로 다른 견해가 확인되면 굳이 끄집어내서 이야기하지는 않는 것 같다. 이 날 <한국의 대화> 참여로, 다른 생각들을 차분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 생각의 옮음을 주장하는 대화가 아니라, 여러가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당연히 나의 생각도 더 풍부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일정한 공간에서 서로 예의를 갖춘 안전한 대화의 자리라면, 나의 스펙트럼과 더 멀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차분히 들어볼 수 있을 것 같고, 안심하고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다음 <한국의 대화>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 그 때는 나와 의견이 더 많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
코멘트
1모르는 사람과,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잘 없는데 그걸 '한 번 해 봤다'라는 경험이 우리에게 참 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