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와 테무의 초저가엔 기후위기가 빠졌다
기후위기와 고물가 밥상은 물가 체험현장이다. 식생활은 기본 욕구이기에 물가 상승을 바로 체감할 수 있다. 식자재 가격이 연일 상승하면서 고물가를 체감중이다. 양배추는 한 포기에 5,000원을 넘었고, 도매가격도 2배 올랐다. 고물가에 차라리 “직접 키워 먹겠다”는 아우성이 나온다. 식자재 물가 상승 이유는 기후위기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내리지 않아서, 생산량이 줄고, 공급량이 감소해 가격이 오른 것이다. 이는 세계적 추세로, 심지어 ‘기후 플레이션'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기후 변화로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해 물가가 치솟는 걸 말한다. 네이처지에는 “2035년이면 기후 플레이션으로 인해 식품 물가는 최대 3.5%, 전체 물가는 1.2% 증가할 수 있다"는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기후위기 대처 없이 고물가 대책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후위기와 경제성장의 디커플링 기후위기를 벗어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대표적으로 이산화탄소(CO2) 배출 감소가 있다. 기업과 정부가 가장 집중하는 부분이다. 탄소 중립과 2050 Net Zero 달성, Scope 1, 2, 3 배출량 측정도 CO2 배출 감소가 목적이다.  문제는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CO2 배출도 함께 증가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CO2 배출은 동조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물러날 수 없듯, 경제성장도 물러날 수 없다. 때문에 경제성장과 CO2 배출 감소를 동시에 이루는 건 대부분 선진국과 기업의 꿈이다.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이라는 용어가 있다. 물리학 용어로, 서로 영향을 주던 변수의 연결이 끊어지는 걸 말한다. 기후위기가 커지면서 산업계에도 쓰이고 있다. 경제 성장을 이루며, CO2 배출 감소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루어진 적은 없다. 오히려 요원해 보인다. 위 사진은 GDP 성장과 CO2 배출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대한민국, 호주와 뉴질랜드 등 선진국 그룹은 GDP 성장과 CO2 배출이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반면, 중국, 인도, 아프리카 대륙, 라틴 아메리카 대륙,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그룹은 GDP와 CO2 배출이 동조하는 걸 볼 수 있다. 사진만 보면 선진국 그룹이 디커플링을 이룬 듯 보인다. 착각이다.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생산 단계에서 측정한다. 선진국 그룹 배출량이 줄어든 건 생산 공장을 개발도상국,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에 이전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하며 탄소 배출량을 개발도상국에 떠넘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국 경제가 성장하며 CO2 배출이 줄었다고 하는 건 오류다.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도 이루었다고 선진국이 자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류'다. 선진국의 환경오염이 개선된 것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의한 결과가 아니며, 자원 채굴과 쓰레기 처리 등 경제 발전에 따라오게 마련인 부정적 영향의 적지 않은 부분을 글로벌 사우스라는 외부로 떠넘긴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1) 현재의 생산자 단계의 측정법을 소비 단계 측정법으로 바꾼다면, 선진국은 디커플링을 입에 담을 수 없다. 오히려 개발도상국의 탄소 배출량은 감소하고, 선진국의 배출량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진국이 누리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개발도상국이 희생하고 있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이런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선, 생산보다 소비에 초점을 두고, 제품 1개 생산에 얼마나 많은 물질이 소비되지도 봐야한다. 물질 발자국으로 보면 경제성장과 디커플링 되지 않았다 물질 발자국(Material Footprint)이란, 특정 국가의 자원에 대한 최종적인 소비가 국제적 자원 추출에서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기 위한 지표으로, 바이오매스, 화석 연료, 금속 광석 및 비금속 광석 물질발자국의 합계다. 예를 들어 금 3.75g을 얻기 만들기 위해선, 3.75g만큼의 땅만 파면되는 게 아니다. 광산을 부수고, 깨며 그중 일부만 추출하는 것이다. 실제 금 3.75g을 얻기 위해 소비된 자원은 54만 배에 달하는 2,025kg이다.2)  두 개 그래프를 보면 GDP가 증가하는 동시에, 물질발자국도 동시에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 해당 그래프를 국가별로 살펴보면 아래 그래프가 나온다. 조금 오래된 논문이긴 하지만, 내용은 유효할 것이다. 해당 그래프는 1990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별 물질 발자국을 추적한 논문인 ⟪The material footprint of nations⟫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GDP와 MF(물질 발자국)가 동조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물질 발자국 차원에서 보면 선진국이 말하는 디커플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제품 생산은 전 세계적 자원 소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CO2 배출은 당연하다. CO2 배출만 봐서도 안 된다. 태양광 에너지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였다고 해도,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지구 어딘가에서 광산을 깨부수고 있다면 그건 환경 오염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환경 오염을 CO2 배출로만 한정해도, 약 30년 간 CO2 배출이 줄어든 건, 세 번 뿐이다. 모두 경기 침체와 연관됐다. 세 번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세번의 사례는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 2009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이중 경제성장과 환경 파괴의 분리, 녹색 성장, 지구를 보호하려는 의도적 행동으로 감소한 사례는 없다.3) 오히려 경제의 엔진인 생산과 소비에 제동이 걸려 나타난 결과였다. 경기가 침체하자 우리는 본적 없던 맑은 하늘을 마주했다. 코로나 19 팬데믹 당시, 인도에선 30년 만에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고, 국내엔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이 목격됐다. 마스크를 잠시 내려 들이마신 공기는 상쾌했고, 사람들은 열광하며 저마다 사진을 찍고 올렸다. “많은 사람이 공기가 깨끗해진 것은 다들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이유는 소비경제가 멈춘 것이었다. 공장이 문을 닫았다. 비행기가 운항되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쓰기 위해 매일 하던 통근이 중단되었다. 이것이 바로 본질을 꿰뚫은 듯 분명해진 소비의 딜레마였다. 우리 경제의 동력은 소비지만, 소비는 탄소 배출의 동력이다. 이 관계가 너무나도 견고해서, 기후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둘 중 하나의 성장을 다른 하나의 성장 지표로 삼았다.”3)  경제 성장 지표인 GDP는 생산과 소비로 측정된다. GDP 성장을 위해선 작년보다 더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 생산량 증가는 자원 소비의 증가이고, 제품 소비량 증가는 곧 그만큼의 제품이 버려졌다는 의미다. 경기 침체기의 CO2 배출 감소는 생산과 소비 자체를 줄여야 CO2 배출 감소를 이룰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문제는 경기침체와 고물가에 “물건을 더 적게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저렴한 물건을 구매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유롭게 원하는 물건을 구매한다”3)는 점이다. 고물가는 더 싼 제품을 소비하게 이끈다 기후위기로 인한 고물가를 벗어나기 위해선, 생산과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 문제는 고물가가 저품질 제품의 생산과 소비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기업도 이러한 소비자 심리를 자극해 끌어모은다. 최근 급성장 중인 중국 이커머스 기업인 ‘알리 익스프레스(Ali Express, 이하 알리)’와 ‘테무(Temu)’가 하는 일이다. 이들은 값싼 제품을 빨리 가져 가라며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국내를 잠식한 알리와 테무 알리와 테무는 모두 중국 이커머스 기업이다. 한국에서 서비스 런칭 후, 급격히 성장 중이다. 2024년 2월 기준 알리의 월 이용자 수는 818만 명(국내 2위)이고, 테무는 581만 명(국내 4위)이다. 테무가 2023년 7월에 한국 서비스를 런칭했다는 점에서, 그 성장세가 얼마나 급격하고, 한국 소비자가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두 개 기업은 국내 이커머스 1위 기업인 쿠팡(월 이용자 3,010만 명)을 위협하고 있다. 알리와 테무는 중국 제품을 직거래할 수 있게 해준다. 2023년 4/4분기 해외 직구 구매액은 1조 9,639억 원이었다. 2022년 4/4분기 대비 46.1% 증가한 수치다. 이중 중국 직구 구매액은 1조 656억 원으로 전년도 동분기 대비 161.1% 증가했다. 알리와 테무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졌다. 미국은 4,645억 원, 유럽연합은 1,765억 원이었다. 거래규모는 택배 물량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CJ 대한통운은 알리 물류를 독점하고 있다. 2023년 1분기에 350만 박스, 3분기에는 900만 박스를 처리했다. 4분기에는 중국 광군제(중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매출액 기준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 이벤트다) 영향으로 1,000만 박스를 처리했다.4) 2024년 알리의 택배 물량은 월 500~600만 박스, 테무 물량은 월 200~300만 박스로 전망된다.5) 초초초저가, 알리와 테무의 전략 알리와 테무가 급성장한 데는 초초초저가 전략이 있다. 테무는 ‘억만장자 처럼 쇼핑하기'를 내세우며, 신규 가입자에게 13만 원 상당의 쿠폰을 발급하는 등 저가 제품을 마음껏 사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제 테무 홈페이지에는 초초초저가 상품이 즐비하다. 아무리 골라 담아도 비싸지 않게 느껴진다. 알리의 경우 ‘천억 페스타'라고 하여 초저가 상품을 내세우고 있다. 천 억 페스타는 알리가 천 억의 손해를 보면서, 진행한다는 의미다. 두 기업 모두 적자를 감내하고, 싼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테무는 배송 한 건 당 7USD의 손해를 감내하고 있으며, 2023년 한 해에만 30억 달러의 손해를 손해를 봤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적자를 보더라도, 이용자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값싼 제품을 무료로 배송해주고 90일 내 무료 반품까지 해주는 이유다. 고물가 시대에 초저가 제품은 소비자 구매욕을 자극한다. 알리 천억 페스타 당시 딸기 한 팩에 750원, 계란 두 판에 1,000원이었다. 테무에서는 가습기가 원화로 1,500원에 판매됐고, 미국에서는 광고비에 560억 원을 쓰는 등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 테무는 국내 방송사와도 협업해 방송에서 PPL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알리와 테무를 이용하는 이유(중복투표)는 ①제품 가격이 저렴해서 (93.1%), ②다양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서 (43.5%), ③득템하는 쇼핑 재미가 있어서 (33.8%), ④할인혜택이 많아서 (30.6%), ⑤국내 상품도 함께 구입가능해서 (10.3%), ⑥정품 같은 가품을 구입할 수 있어서 (8.9%)로 조사됐다. 가격 경쟁력이 압도적 1위다. 물론 불만사항도 많았다. 전체 사용자 중 80.9%는 불만이 있었다. 상위 3개 이유(중복투표)는 ①배송 지연 (59.5%) , ②낮은 품질 (49.6%), ③제품 불량 (36.6%)이었다.  이용 이유와 불만 사항에서 알 수 있는 건, 10개 중 1~2개만 성공해도 국내 이커머스보다 싸기 때문에 쓴다는 것이다. 8개를 버려도 2개 건지면 이득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향후 알리와 테무를 이용하겠다는 비율도 높다. ①의향 있다(56.6%) ②반반 (37%) ③의향 없음 (6.4%)으로 이용하겠다는 의견이 절반 이상이다. 인터넷에 테무 이용 후기를 검색하면 제품불량 후기가 쏟아진다. 구입한 제품이 아예 망가져서 오는 경우도 있다. 품질이 낮고, 망가져서 온다면 사용 몇 번 사용 해보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 제품이 튼튼한 건 그 자체로 환경에 이롭다. 오래 쓸 수 있고, 버려지지 않으며, 불필요한 소비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반면, 제품을 버리는 건 환경에 큰 피해다. 그 점에서 테무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테무의 경영은 환경에 위협적이다. 한편 테무는 한발짝 더 나아간다. 개인적으론 믿을 수 없는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테무, “쓰던 제품 버리고 무료로 새제품 받아 가세요" 테무의 광고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이어버드는 버리세요. 지금 테무에서 무선 이어버드를 무료로 가져가세요. 작은 우주선 모양으로 아주 좋습니다. 사운드 품질도 정말 좋습니다. 운동할 때도 쉽게 빠지지 않아요. 세 가지 색상으로 원하는 색상을 고르세요. 지금 테무에서 무료로 받아가세요.” 제품 수명이 다해 교체하는 게 아닌, 새것을 위해 기존 것을 버리는 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환경을 짓밟는 행위다. 또한 불필요한 소비를 창출하는 행위다. 테무 판매 제품이 고품질이라면 모를까, 이용자 중 약 87%가 낮은 품질 (49.6%)과 제품 불량 (36.6%)을 불만사항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테무가 고품질 제품을 줄리없다고 생각한다. 기존 제품 고쳐쓰라고 광고해도 모자랄 판에, 쓰던 걸 버리라는 건 소비자에게 쓰레기를 만들라는 것과 다름 없다. 금 3.75g에 2,050kg의 물질이 소비된 걸 생각하면, 테무의 광고가 얼마나 많은 자연을 파괴하는 내용인지 생각할 수 있다. 테무의 광고가 무시무시한 이유다. 한편, 테무는 광고와 달리 환경 지속가능성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테무의 의심스러운 나무 심기 더구나 포집할 수 있다는 CO2의 양도 납득하기 어렵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나무 한 그루가 40년 동안 CO2 4톤을 흡수하는 게 정설이다.6) 기부한 나무 수로 따지면, 약 20년 간 최소 1,600만 톤의 CO2 흡수가 되어야 한다. Trees for the Future에서 CO2 계산 근거를 계속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또한, 2022년 9월에 정식 출시한 테무가 2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8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도 너무 큰 비약이 아닌가 싶다. 유한킴벌리는 40년 동안 5,700만 그루를 심었다 국내 대표 기업 사회공헌 사업으로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가 꼽힌다. 국내 최장수 사회공헌 사업으로, 2024년 40주년을 맞이했다. 40년 간 유한킴벌리가 심은 나무는 약 5,700만 그루다. 국내에 약 3,100만 그루, 북한 지역에 약 1,300만 그루, 몽골 지역에 약 1,280만 그루, 중국에 약 42만 그루를 심었다. 나무 심기에 참여한 사람은 약 40만 명이다.7) 유한킴벌리가 40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서 5,700만 그루를 심은데 반해, 테무는 2년도 채 되지 않아 800만 그루를 심었다고 말하고 있다. 결론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유한킴벌리가 게을렀거나, 테무가 엄청 빨랐거나. 개인적으론 유한킴벌가 게을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테무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테무의 문맥에서는 차이도 있다. 상단 설명에는 '심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하단에는 '기부했다'고 말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통계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테무의 나무 심기는 그린워싱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그린워싱의 7가지 죄악 그린워싱은 친환경이 아닌데, 친환경으로 포장하는 걸 말한다. 테라초이스(Terra Choice)는 ⟪그린워싱의 7가지 죄악:북미 소비 시장의 친환경 주장에 관한 연구⟫에서 그린워싱을 7가지로 분류했다. 7가지 분류는 이렇다. ①숨겨진 상충 효과 ②불충분한 증거 ③애매모호한 주장 ④관련성 없는 주장 ⑤유해상품 정당화 ⑥거짓말 ⑦허위 라벨 부착이다.8) 테무의 나무심기 공약은 ①숨겨진 상충 효과 ②불충분한 증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은 나무와 포집 양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또한, 소비 양산으로 만들어지는 환경 오염 역시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설령 테무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테무의 경영 전략은 나무 심기보다 더 빠르게 나무를 뽑는 전략이다. 지속가능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 곳에서 나무를 뽑고, 한 곳에 나무를 심었다고 자랑하는 건 그 자체로 그린워싱이다. 생산과 소비 메커니즘 자체는 어떤 친환경을 내세워도 지구를 갉아 먹는다. 나중엔 친환경 드릴로 땅을 파헤칠지도 모른다. 생산과 소비가 바뀌지 않는 한, 기후위기는 늦출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 멈추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가속화되고 고물가는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테무와 알리 같은 저가와 저품질 제품의 양산과 소비 매커니즘은 더욱 주목받고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비즈니스를 막기 위해선 생산과 소비개념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 21세기에 가장 주목해야 할 과제일지 모른다. 제 값을 안 치르면, 사채 이자가 붙는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지구진화 및 역학 센터 교수인 ‘호프 자런'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도록 해주는 마법 같은 기술은 없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21세기의 궁극적인 실험이 될 것이다.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는 것은 우리 세대에게 던져진 가장 커다란 과제다.”9) 라고 말했다. 우리의 소비 품목은 다양해졌고, 방법은 편리하고 빨라졌다. 동시에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또 사용하는 방식은 점점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왔다. 무분별한 소비,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유행을 좇는 패스트패션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달려오는 당일배송 등이 이런 현상을 입증한다.”10) 쿠팡의 유산인 당일 배송은 이제 고정값이 됐다. 당일 배송하지 않는 유통사는 살아남기 어렵다. 알리와 테무 역시 국내에 물류 센터를 설립하고, 당일 배송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경제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언론도 알리와 테무가 위협하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위험성만 경고하고, 환경 이슈는 다루고 있지 않다. 침체기의 경제 효과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환경을 파괴하고, 그 파괴로 침체가 더욱 커진다면 우리는 한발자국 물러나 그 위험성을 봐야 한다. 그것이 경제를 살리는 것인지 지구를 죽이는 것인지 따져야 한다. “죽은 행성에서는 어떤 비즈니스도 할 수 없다.” 비즈니스가 없으면 경제효과 창출도 어렵다. 기존 제품을 버려서까지 소비하라는 테무, 값싼 제품을 내세우며 구매를 유도하는 알리의 제품 구매가, 당장은 싸게 느껴지겠지만 이는 비용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 것이다. 당장 치르지 않은 비용은 사채 이자를 붙여 갚아야 한다. 그때가 되면, 지금 비싸다고 말하는 5,000원짜리 양배추가 몇 년 뒤 “정말 싸다"고 말하는 가격이 될지도 모른다.  이걸 막기 위해서는 우리는 당장 값싼 소비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을 멈추고, 값싼 소비와 성장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부디 싸다는 제품에 현혹되어 새로운 물품을 사기보단, 집에서 안쓰고 있던 물건을 다시 쓰는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 환경을 생각한다며 온라인 쇼핑몰에서 싼 에코백 여러 개를 구매해 쓰는 것 보단, 집에 있는 비닐봉지를 쓰는 게 훨씬 낫다. ※ 참고자료 1)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사이토 고헤이/ 다다서재/ 2020) p.35 2) ⟪좋아요는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기욤 피트롱/ 갈라파고스/ 2023) p.87 3) ⟪디컨슈머⟫ (J.B. 매키넌/ 문학동네/ 2023) p.41, 84, 87 4) ⟪CJ대한통운:택배 성장 추세로 북귀 전망⟫ (양지환/ 대신증권 리포트/ 2023.11.24) 5) ⟪한진:쿠팡 가고 알리&테무 온다⟫ (양지환/ 대신증권 리포트/ 2024.03.22) 6) ⟪빌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빌게이츠/ 김영사/ 2021) p.183 7)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40주년 백서⟫ (유한킴벌리/ 2024) 8) ⟪The sins of Greenwashing⟫ (Terra Chice/ 2010) 9)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김영사/ 2020) p.127 10) ⟪넷 포지티브⟫ (폴 폴먼, 앤드르 윈스턴/ 현대지성/ 2023) p.376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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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지 도봉구갑, 김재섭이 뽑힌 이유
수도권의 두 이변 2024년 4월 10일 총선,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애초 더불어민주당 우세로 전망된 총선이었다. 파란색 물결은 누구나 예상했다. 기대한 건 이변의 발생이었다. 의외 지역에서 이변이 나왔다. 첫 째는 경기도 화성시 을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당선이다. 더불어민주당 텃밭으로,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 지역이다. 이준석 후보는 여론조사부터 공영운 후보에게 밀렸다. 첫 여론조사에서 20.2%가 나왔고, 공영운 후보는 43%가 나왔다. 결말은 달랐다. 이준석 후보가 최종 42.41%의 득표율로 공영운 후보 39.73%를 누르고 당선됐다. 여론조사부터 지지율 20%를 끌어올린 이변이었다. 화성시을에서 이변이 일어나는 사이, 서울 동북부에도 이변이 일어났다. 도봉구갑 김재섭 후보의 당선이었다. 도봉구는 더불어민주당 텃밭으로, 더불어민주당 안귀령 후보 당선이 예상된 지역이었다. 출구조사도 안귀령 후보가 52.4%로 김재섭 후보 45.5%를 약 7% 앞섰다. 현실은 달랐다. 최종 득표율은 김재섭 49.05%, 안귀령 47.89%였다. 현 도봉구갑 국회의원인 인재근 의원이 3선이라는 면에서 12년만의 교체였다. 예상못한 이변이었다. 궁금증은 왜 이변이 발생했는가다. 전문가와 평론가의 의견은 그들의 생각일 뿐이다. 정확한 답은 유권자에게 있다. 도봉구갑 이변은 도봉구갑 유권자에게 물어야 한다. 김재섭 후보를 찍은 유권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흥미로웠다. 인터뷰 내용이다. — Q. 자기소개 부탁한다 도봉구 주민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도봉구에서 나왔다. 이사도 도봉구에서 맴돌았다. 토박이다. Q. 김재섭을 찍었다. 이유는 난 언더독 편이다. 뻔한 결말은 재미없다. (웃음). 농담이고 간단하다. 안귀령은 도봉구에 비전이 없었고, 김재섭은 있었다. 그 비전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맞든, 맞지 않든 난 비전있고 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를 준 이유다. Q. 언더독 이변에 대한 심정은?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 기쁠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다. 김재섭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해서 뽑은 게 아니다. 후보자 모두 국회의원으로서 능력을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소위 경력자가 없었다. 다만, 김재섭이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니까, 해보라는 마음이었을 뿐. 안귀령은 그게 없었을 뿐이다. Q. 녹색정의당 윤오도 해보고 싶은 건 있었을 것 같은데 맞다. 윤오도 4번째 도전하는 것으로 안다. 문구가 기억난다. ‘땀이 빽을 이기는 정치’였다. 땀 흘릴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개인은 많이 아쉬울 거다. 그런데 그런 말이 있지 않나. 노비 생활도 대감 집에서 하라고. 같은 땀을 흘려도, 큰 정당이냐 작은 정당이냐에 따라 받는 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걸 타파하려면, 대감 집에 가거나 소속된 정당을 대감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했다. 녹색정의당이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만큼 컸다면 그가 뽑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인물 자체도 어필이 안 됐다. 같은 시간 같은 노동을 해도 대기업은 돈을 많이 벌고, 중소기업은 적게 번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같은 비전이 있다면 난 더 가능성 있는 사람에게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일 할 사람 뽑는 거다. 그렇다면 일할 가능성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총선 전 현수막 Ⓒ 한량 Q. 유권자로서 김재섭에게 비전이 있고, 안귀령에게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하다 현수막부터 차이가 난다. 김재섭은 현수막에 “재건축, 재개발 용적률 개선, SRT와 KTX를 창동으로 가져오겠다” 등 공약을 걸었다. 안귀령은 “검찰 독재 못살겠다. 심판하자.”였다. 생각해봐라. 누가 도봉구에 비전이 있어 보이겠나? 선거 공보물도 차이가 난다. 안귀령은 얼굴과 구호만 있다. 그나마도 검찰・정치・언론개혁이 절반이다. 지역 발전이 없다. 어느 구에 내놔도 다 쓸 수 있는 내용뿐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선거는 구호와 사진이 아니라, 공약이다. 주먹 꽉 쥐고 열심히 하겠다가 비전이 될 수 없다. 반면, 김재섭은 공보에 지역 발전 공약을 나열했다. 이것만 봐도 누가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건지 바로 나온다. 추진하겠다고 한 정책 옆 사진을 봐도 “아, 이 사람이 지역에서 뭔가를 했구나.”를 알 수 있다. 보여주기라고 해도, 중간에 본인 사진 크게 배치한 사람과 지역 활동 사진 배치한 사람 중, 누가 지역에서 뛰었는지는 명확히 나온다. 또한 김재섭은 각 동별 정책을 정리해놨다. 내가 사는 '동'의 정책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안귀령 공보물엔 없는 내용이었다. 물론 안귀령도 공약은 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의 공약은 찾기 어려웠다. 애초, 유권자가 왜 일일이 그걸 찾아야 하는지 싶다. 뽑히고 싶으면, 유권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게 맞다. 유세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김재섭과 윤오가 직접 와서 하는 유세를 보진 못했다. 근데 안귀령은 우연히 봤다.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데, 거기서도 도봉구에 대한 비전은 들리지 않았다. Q. 뭐라고 했었나 창동역 부근에서 한 차량 유세였다. 안귀령이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총선은 첫 번째가 윤석열 정권심판, 두 번째가 도봉구 발전입니다.” 도봉구 후보로 나온 사람이 첫 번째로 하겠다는 게 도봉구 발전이 아니라니, 말이 되나? 아무리 정권심판이 프레임이었다고 해도, 너무 안일한 거 아닌가? 지역구 후보가? 이걸 듣고 누가 지역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겠나. 지역 무시로 보이지. Q. 안귀령은 후보 전략 공천부터 말이 있었다 도봉구가 더불어민주당 텃밭이다. 지금 현역 의원도 3선인가 했다. 3선 의원이 당 대표 말에 후보 자리를 포기했다. 그것도 이상했다. 아니 괴상했다. 저렇게 쉽게 물러나나? 그 뒤 전략공천 한 게 안귀령이었다. 누군지도 몰랐다. 연고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연고가 없어도 능력과 인물 파워가 되면 뽑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전 YTN 앵커, 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이라는 걸 빼면, 가진 게 없었다. 애초 그 경력이 도봉구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나 싶었다. 또 갑자기 떨어진 인물 아닌가. 도봉구를 알리도 없고, 전문성이 있을리도 없다. 과거엔 지역 연고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안귀령을 보니까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후보로 세우는데 도봉구와 주민을 어떻게 본 건지 싶다. 텃밭이니 될 거라 생각한 건 아닌지. 정당 전략 공천이 왜 중요한지 알겠다. Q. 개혁신당 이준석도 연고가 없는데 뽑혔다. 연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방증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준석과 안귀령은 입장이 다르다. 그간 보여준 모습 자체에 차이가 크다. 이준석이 대중에 등장한 건 10년도 넘었다. 거기에 여당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했다. 경력이 다르다.  이준석은 원래 다리 건너 노원구에서 세 번인가 나왔다. 노원구가 고향인 걸로 안다. 계속 나오다 안 돼서 경기도로 내려갔다. 고향에서 3번 나와서 안 됐는데,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내려와 당선되는 것도 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이준석 SNS에 들어가면 “~동 주민은 친구추가 최우선 순위” 이런 걸 써놨다. 노원구에 있을 때부터 그랬다. 개인적으론 주민과 가까워지겠다는 신호로 느껴졌다. 지역을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안귀령은 오히려 "여기가 어느 동이냐"는 주민 물음에 아무 답변도 못했다. Q. 안귀령이 유세 동을 몰랐던게 유권자 입장에선 어떻게 보였는지 “아, 지역을 모르는구나.” 그게 패착인지는 알 수 없어도, 유권자가 안귀령을 안 뽑을 이유는 됐다고 생각한다. 치명타는 이재명 고향은 알았다는 점이다. 지역은 모르는데 당대표 고향은 안다라. 참. 그 외중에 후보 포스트에는 ‘도봉 대변인’으로 써놨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인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말과 행동이 다르게 느껴졌다. 박자와 음정을 못 맞추는 가수가 좋은 노래를 할리 없다. 총선 이후 현수막 Ⓒ 한량 Q. 도봉구갑 출구조사와 실제 결과가 달랐다. 어땠는지. 출구조사를 보곤 “그래, 뭐 그렇지.”라며 당연하게 생각했다. 예상 결과도 5% 이상 차이가 났다. 5% 이상이면 뒤집기 어렵다. 오차범위 밖이니까. 그런데 막상 까보니 달랐다. 김재섭이 근소하게 이겼다. “어? 이긴다고? 이걸?” 출구조사 한 사람들이 출구를 잘못 안건 아닌가 싶다. (웃음). Q.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프레임은 정권심판이었다. 실제 민심이 안 좋기도 했고. 그래서 더 먹힐 줄 알고 텃밭에 신입을 후보로 냈는데, 인터뷰를 해보니 그 심판론이 역으로 먹혔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점에선 김재섭이 더욱 발전을 이야기할 수도 있어서 유리했다고도 생각이 드는데, 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실제 지역발전보다 심판이 우선한 걸 비판했으니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해봤다. (웃음). 갑자기 생각해보면, 심판받아야 한다는 당의 입장에선 심판을 막아달라고 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더군다나 정부가 헛발질을 너무 많이 하자 않았나. 민심이 돌아선 건 여당 후보라도 다 알았을 것이고. 심판 단어 언급 자체가 꺼림칙 할 테니. 질문처럼 발전을 더 말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도봉구갑 개표 결과 켭처 생각해보면 김재섭은 몇 년 전부터 계속 자신을 어필했다. 지하철 입구, 신호등 주변에 현수막을 걸고 어필했다. 내 기억으론 GTX 개통과 지하화가 확정 됐을 때 모두 그랬다. “저 홍보 예산이 어디서 나오나" 이런 생각도 했었다. 그 모든 게 메시지였고, 총선에 작용 한 것 같다. 최소 하늘에서 떨어진 후보가 아니라, 몇 년간 준비해 올라왔다는 인식을 주니까. 혹시 아나, 안귀령도 김재섭처럼 어필하면 다음 총선에서 뽑힐지. Q. 밑에서 올라온 사람과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의 차이라는 것인지 내겐 그랬다. 사실 그간 도봉구 발전에 김재섭의 기여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의원도, 구의원도 아닌데 지역 발전에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었겠나. 그래도 계속 어필 한 게 통한 것 같다. 놀라운 점은 안귀령이 꽤 많은 표를 가져갔다는 점이다. 김재섭과 불과 1% 남짓 차이였다. 텃밭은 텃밭이다. 만약 안귀령이 정말 도봉구에 정착해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면, 다음번에는 뽑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낙하산 이미지로도 1% 남짓 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김재섭처럼 이미지를 쌓아 올린다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말하면 도봉구갑 주민 절반은 김재섭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곧 4년 동안 보여주는 게 없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의미다. 물론 4년 뒤 김재섭이 나온다는 가정하에 이야기지만. 1% 남짓으로 진 안귀령이, 4년동안 차곡차곡 입지를 쌓아 올린다면 다음에는 된다고 생각한다. 김재섭은 지난 총선에서 인재근에게 졌다. 아마 4년간 계속 준비했을 것이다. 이젠 보여줄 때다. 과연 4년 동안 진짜 지역을 위해 뛰었는지, 사진찍기 위해 뛰었는지 기대가 된다. Q. 윤오도 가능성이 있나 아, (침묵) 그게 참 (침묵) 힘들다. 한 정당에서 한 지역구에 4번이나 같은 후보를 냈다. 그런데 계속 떨어진다. 지지율 10%를 넘긴 적도 없고. 정당과 후보 모두 힘이 없다는 의미다.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단 1석도 못 가져 간 건 물론 당의 실패다. 하지만 윤오가 도봉구갑에서 보여준 게 없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총선 이후 현수막 Ⓒ 한량 소수정당이 소신있는 건 좋다. 철새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소수의 소신이 소수에 머무는 건 이유가 있다. 윤오가 4번째 나왔다는 것도 몰랐었다. 4번이면 익숙할 법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4번 모두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고, 존재감도 없었다는 의미다. 같은 후보를 계속 내는 것도 당에 인물이 없다 의미고. 4년 후에 또 뵙겠습니다, 라고 하던데. 다른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다. Q. 도봉구에 새인물이 온 건 어떻게 생각하나. 어째든 3선 의원이 물러난다. 개인적으로 물러난 의원이 다시 돌아오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후보 등록을 양보했다는 건 지역을 스스로 떠난 거니까. 이번 선거 양강 후보 모두 젊었다. 두 후보는 4년 뒤에도 만 40세 이하다. 이 점이 주민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좋다. 개인적으로 국회의원이 3선 넘어서까지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3선이면 12년이다. 국회의원이 300명인 상황에서 한 인물이 너무 오래하는 건 좋지 않다. 고이면 썩는다. 그 점에서 3선이 나가고 새인물이 들어온 건 좋다. 질문처럼 김재섭과 안귀령은 4년 뒤에도 젊다. 한 지역에 젊은 정치인들이 경쟁하는 건 그 자체로 좋은 현상이다. 개인적으론 내 지역이 젊은 사람들의 무대가 돼서 좋다. 젊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늙었다고 더 좋은 것도 없다. 4년 뒤에는 어떨지 벌써 기대 된다. Q. 비례대표는 어느 정당을 뽑았나 조국현식당을 뽑았다. (웃음). 개인적으로 조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 정권은 더 좋아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부다. 조국이 잘났다는 것도, 과오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잘못한 사람들 밖에 없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여론의 난도질을 당한 사람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최소 같은 과오를 반복하진 않을 테니까. 그 점에서 조국혁신당은 현 정부를 비판하며, 제 1야당에게 영향력도 행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지역구 의원은 정부 여당 후보를, 비례대표는 그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당을. 아이러니하다.  지역구에는 지역 발전을 말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민심이 정권에 불만족스럽다는 걸 아는 여당 당선인이라면, 민심을 우선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점에서 여당 정치인 뽑는 걸 현 정부에 힘을 실어 주는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당 당선인이 민심을 따르면 정부 비판에 더 힘이 실린다고 생각한다. 김재섭이 당선돼서 그렇지, 실제 안귀령과 표 차이 얼마 나지도 않는다. 윤오까지 합치면, 김재섭 지지자는 과반이 안 된다. 도봉구을은 더불어민주당이 뽑히기도 했고. 눈치 볼 거라고 생각한다. 22대 총선 결과 하면 캡쳐 Q. 민심은 정부에 반한다고 생각하나 총선 결과에 답이 있다. (웃음). 개혁신당도 철저히 야당 입장이라던데. 생각 제대로 있는 정치인이라면, 민심이 뭔지는 정확힐 알 거다. Q. 다음 총선에선 누굴 뽑을 건가 (웃음) 총선 끝난지 언제라고 벌써 다음이냐. (웃음). 난 언더독 편이다. 이제 언더독이 누구일까? (웃음)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재밌었다. 정치 얘기하면 싸우기 마련인데, 다 까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누굴 뽑고,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건 아닐 텐데. 어째 사회는 그렇게 몰아가려는 것 같다. 그 점에서 신선한 대화였다. — 22대 총선 및 인터뷰 후기 : 이변을 만드는 건 유권자다 개인적으로 소신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그 소신이 나와 맞다, 안맞다는 다른 문제다. 제 22대 총선 도봉구갑 선거에서 소신 있는 사람은 김재섭과 윤오였다. 김재섭은 21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다시 나왔고, 윤오는 3번의 낙선을 딛고 다시 나왔다. 이 자체로 지역에 대한 소신은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이의 말대로 그 소신이 진짜였는지는, 김재섭 당선인이 향후 4년동안 보여줘야 할 모습이다. 평가는 4년 뒤 총선에서 유권자가 할 것이다. 도봉구갑 지역의 개표 과정은 흥미로웠다. 출구조사부터 승리가 점쳐진 안귀령 후보는 개표 초기, 김재섭 후보를 앞서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차이가 좁혀지더니, 김재섭 후보가 역전을 했다. 이후 탑독이던 안귀령이 언더독이 되어 김재섭 후보를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그 차이가 너무 미묘해, 개표가 완료될 때까지 '유력'이란 글자가 뜨지 않았다. '당선'이라는 글자는 선거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떴다. 덕분에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서울 도봉갑과 경기도 화성을을 보며 두 가지가 보였다. 첫째, 선거는 시작 시점 숫자가 아니라, 끝날 때의 숫자로 하는 경기라는 것. 둘째, 그 경기의 이변은 유권자가 만든다는 것. 도봉갑과 화성을은 모두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이었다. 이변이 보여주는 건 텃밭이라고 안심하지 말고, 지역 유권자의 바람을 정확히 알라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언제나 이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텃밭이 당의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지역은 당의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 즉 유권자의 것이다. 텃밭이 누구 텃밭인지도 지역 유권자가 만든다. 김재섭이 이변을 만들었다, 이준석이 이변을 만들었다는 건 맞지 않는 표현이다. 유권자가 만든 이변이 정확한 표현이다.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건, 지역민은 당의 프레임이 아니라 지역 발전을 위해 투표한다는 것이다. 후보가 지역에 어떤 비전과 공약을 갖고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 인터뷰였다. 김재섭 당선인이 어떤 지역 발전을 이룰지, 낙선한 안귀령 후보가 어떤 절치부심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 안귀령 후보는 "여기가 무슨 동이냐"는 지역민의 물음에 우물쭈물하며 답하지 못했다. 그걸 보고 지역민이 "어차피 철새처럼 떠날 사람인데, (왜 뽑냐)"고 하자, 안귀령 후보는 "아니에요, 저 이제 여기에 뿌리 박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인지 기대가 된다. 진심이라면 행동은 따라올 것이다. 소신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다음 총선에서도 소신있는 후보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때는 진짜로 내 한 표가 선거를 결정짓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작할 때의 숫자가 아닌, 끝날 때의 숫자에 내 표가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내 표를 누구한테 줄지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김재섭, 안귀령, 윤오 모두 지역을 위해 힘 내줬으면 좋겠다.
[함께 기억] 🎗 시민이 기억하는 모습, 시민이 해야 할 질문
🎗 시민이 기억하는 모습, 시민이 해야 할 질문 기억하자는 말에서 출발한 질문 2014년 이후 4월 16일마다 “기억하겠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궁금했다. 무엇을 기억하겠다는 걸까?, 어떤게 미안하다는 걸까?  기억하자와 미안하다는 말에 주어가 없는 느낌이었다. 기억하겠다는 사람이 많을 수록 내 의문은 더 많아지고 깊어졌다. 그 의문은 두 개로 좁혀졌다. 저 말로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참사 원인을 드러내고 있을까?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유는 참사 방지다. 만약, 기억하겠다와 미안하다는 말이 참사 원인에 접근도 못 하고, 제거도 못 하고, 행동하게 하지 못 한다면, 우리는 같은 참사를 또 겪을 게 뻔하다. [함께 기억] 프로젝트로 세 편의 글을 썼다. 그 중 두 편은 인터뷰였다. 모임도 참여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모임에 참여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세월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고 싶었다. 둘째, 기억하자는 말에 무엇을 떠올리는지 알고 싶었다. 셋째, 그 기억이 참사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알고 싶었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론을 내렸다. "그들의 기억은 참사 예방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번 글은 이렇게 생각한 이유와 내가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 원인, 시민이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한 내용이다. 시작은 떠내려오는 아이들부터다. 떠내려 오는 아이들 두 사람이 강가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강 쪽에서 다급한 외침 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가 물에 빠진 것이다. 아이는 온 힘을 다해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소리를 들은 두 사람은 서둘러 아이를 구했다. 그런데 숨 돌릴 틈도 없이 또 다른 아이가 도움을 요청했다. 이번엔 한 명이 아니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이 보이고, 보이고, 또 보였다. 아이들이 계속 떠내려오고 있던 것이다. 두 사람만으로는 구하기 벅찰 만큼 많은 아이들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물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물에 있던 사람이 “너 어디가?!”라고 물었다. 친구가 답했다. “상류(Upstream)로 올라가서 아이들을 물속에 던져 넣는 놈을 잡으려고.” 업스트림,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가는 여정 해당 사례는 행동 경제학자 댄히스가 ⟪업스트림⟫에서 소개한 사례다.1) 업스트림이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거나, 그 문제로 인한 피해를 체계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반면, 다운스트림은 문제가 발생한 뒤에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댄 히스는 업스트림으로 올라가며 문제 원인을 찾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1) 문제 발생 후 해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애초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탓하는 게 아니라, 소가 왜 탈출하려고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앞선 사례는 아이들이 떠내려오는 상류(Upstream)로 올라가서, 애초 밑(Downstream)에서 아이들을 구할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예시다. 참사 발생 이후 인명 구조, 피해자 수습, 책임자 처벌에만 집중하지 말고, 참사 근본 원인을 찾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 수습, 배 인양, 책임자 처벌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체가 참사를 예방하는 건 아니다. 문제불감증, 업스트림으로 가는 길에 마주하는 방해물 업스트림으로 올라가는 여정은 어렵고 오래 걸린다.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감춰진 문제와 원인이 보이고, 그 위에 또 다른 문제와 원인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문제불감증'이다. 문제불감증이란, 부정적 결과가 자연스럽고 통제할 수 없으며, 바꿀 수 없다는 믿음이다. 어떤 문제에 무지할 때, 마치 그것을 날씨 대하듯 “어쩔 수 없지"라며 어깨를 으쓱하고 마는 것이다.1) 문제를 당연시하는 태도는 문제와 원인을 못 보게 한다. 원인이 그대로인데, 문제가 사라질 리 없다. 때문에 문제불감증은 업스트림으로 가는데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억하자는 말은 참사 당시 우리의 문제불감증을 기억하고 경계하는 구호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산재한 문제를 볼 수 있다. 기억의 현주소를 보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문제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기억의 현 주소 모임에 참여하고, 인터뷰하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그렇다’였다. 무엇을 기억하냐고 물으면, 참사 날짜, 타고 있던 사람들, 목적지, 언론 오보, 정부 대처, 선장의 탈출 시점과 선내 상황 등이었다. 또한, 참사 당일 자신들이 하던 일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수업 듣고 있었다, 일하고 있었다, 카페에 있었다. 낮잠을 잤다. 식사 준비를 했다” 등등 다양했다. 선명하고 깔끔한 기억이었다.  그 외 기억은 그날의 감정이었다. 분노와 슬픔, 비참함, 죄책감 등이다. 한 사람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알게 됐어.”라고 말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것에 죄책감을 느꼈어.”라고 말했다. 표정은 침울했고, 일부는 울었다. “2024년 4월 16일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뭘 할 거야?” 내가 던진 질문이다. 답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할 말이 없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참사 현장에 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드물다. 직장인은 일을, 학생은 수업을, 부모는 자식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잠시 멈출 수는 있겠지만,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부는 팽목항에 간다고 할지도 모른다. 서울시청부터 팽목항까지는 약 420km다. 시속 80km로 가도 5시간이 걸린다. 물에서 숨을 가장 오래 참은 기록은 24분 33초다. 도착했을 때 생존자가 있을까. 아마 도착해서 10년 전과 똑같이 분노와 슬픔, 죄책감만 느낄 것이다. 참사 후 느낀 감정은 참사의 원인이 아니다 참사 후 느낀 감정과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건 참사 예방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사 희생자가 나온 뒤 느낀 감정과 참사 이전 상황은 인과관계가 없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유는 참사 방지다. 때문에 참사 후 감정이 아니라, 참사 원인과 막지 못한 이유를 기억해야 한다. 혹자는 시스템 부재를 원인으로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큰 원인은 참사 이전 누구도, 시스템 부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스템 부재를 눈치챘다면, 우리는 배가 뒤집혀도 바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을 것이고, 304명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하다” 시스템 부재를 눈치 못 챈 문제불감증 앞서 "2024년 4월 16일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뭘 할 거야?"라는 질문에 기대한 반론이 있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돼지."였다.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또다시 참사를 마주해서, 2014년 4월 16일의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세월호를 기억하겠다고 하는 것일텐데. 왜 이런 질문을 그대로 받아 들일까. 기억하겠다 하면서도 마음 속으론 참사는 발생해, 라며 체념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한 체념 속에서, 질문 자체가 '발생하면'을 가정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질문이 발생하면인데, 당연하다 반문할 수도 있다. 그 당연하다는 태도가 문제 불감증이다. 시스템 부재를 눈치 못 챈 이유는, ‘시스템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비됐고, 작동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작동 안 했는지, 없었는지 모를 시스템을 우리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믿음 자체가 문제임을 알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그 시스템이 있었고, 작동했나? 답은 바로 나온다. 문제불감증은 “눈앞의 문제가 문제인지 모르는 무지”1)에서 비롯된다. 문제를 모르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태도는 세월호 이전부터 만연했고 참사 후 드러났다. 다큐멘터리 <그레이존>이 보여준 모습이다. 세월호 오보는 왜 발생했나 다큐멘터리 <그레이존>은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상황을 보여준다. 전원 구조로 보도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그대로 보도됐다. 자막을 쓴 사람도, 보도를 본 기자도,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그레이존>에서 가장 심각하게 들렸던 대사는 “정부가 다 구했대.” “그래서 그걸 믿었죠.” 였다. 상부 지시와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상부 지시는 당연히 맞겠지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과다. 질문하고 확인했다면 막을 수 있었지 모르는 오보였다. 우리 주변에 이를 막을 신호가 없었을까? 국내 언론은 세월호 이전부터 질문하지 않았다. 2010년 방한한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국내 기자들에게 질문하라고 했다. 손을 든 건 중국 기자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 기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며, 국내 기자에게 손들어 질문하라고 했다. 손든 기자는 없었다.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돌아갔다.  강남순 교수는 이를 보고 “질문하기가 삶의 방식이어야 하는 저널리스트조차도, 왜 제대로 질문권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가.”2)라며 비판했다. 모두가 똑같이 행동했다는 건, 그게 당연한 문화였다는 것이고, 누구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방증한다. 외부에도 질문 안 하는 기자가, 내부 지시에 질문할 리 없다. 국민도 다르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태도가 기자만의 문제였을까? 아니다. 국민도 다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고 처음에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은 없었다. 언론 보도가 당연히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월호 구조 오보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다. 만약, 2010년 질문하지 않는 기자들을 보고 “왜 질문하지 않냐”, “내부에서 질문하지 말라고 했냐”,  “질문하지 않는 걸 문제라고 생각한 적 있냐”, “질문하지 않는 문화는 언제부터 왜 만들어졌냐”고 물었다면 오보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레이존> 출연 기자들에게 질문하고 싶었다. ①왜 지시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지 않았는지. ②질문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갖거나 문제라고 생각한 적 있는지. ③질문하지 않는 모습은 어디에서부터 만들어졌는지. ④같은 참사가 있을 때, 더는 오보를 안 내도록 바뀌었는지. 세월호 이후 기자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로 불렸다. 항상 붙는 말은 “기레기 니들이 그렇지"다. 이는 문제를 당연시하는 태도다. 문제가 뭔지 알았으면 원인이 뭔지 찾고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고, “원래 그렇지"라는 말에 머무는 건 방관일 뿐이고, 쓰레기가 쌓이는 걸 지켜만 보겠다는 말이다. 시스템 부재가 문제일까? 부재에 무지했던 게 문제일까?  어떤 게 참사를 예방하는 기억일까? 세월호 참사로 구조 시스템이 없었고,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이 자체로 큰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부재를 몰랐다는 것이다. 시스템 부재를 알아차렸다면, 시스템을 만들고,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스템 부재를 모르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애초 시스템이 뭔지도 모르게 된다. 시스템이 있다고 믿으면, 참사가 벌어질 때까지 부재를 모르고, 참사가 발생해야 알아차린다. 비극이 있은 뒤에야 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시스템 부재를 눈치 못채고 있다. 그게 세월호 행사여도 말이다. 화재 발생시 대피 경로가 무엇인가요? 누가, 어디로, 어떻게 대피시키나요? 장애인, 비장애인, 남녀노소 중 누구를 최우선 순위로 대피 시키실 건가요? R&R 어떻게 분배되어 있나요? 세월호 행사에 가면 묻는 질문이다. 답변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행사 기획자와 참여자 모두 생각지 못한듯 당황한다. 난 이게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4월 16일마다 노란리본을 달고, 세월호를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게 현실이 아니라, 시스템이 없는데, 아무도 그 부재를 눈치 못채는 게 진짜 현실이라 생각한다. 세월호가 이렇다면 다른 행사는 불보듯 뻔하다. 개인적으론 안전이나 대피 계획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대피하지 못해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만 생각해도 충분히 계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거창필 필요도 없다. 119에 누가 신고할 것인지, 누가 비상구로 안내할 것인지, 장애인이나 노약자 혹은 부상자가 있다면 누가 전담할 것인지 등만 사전에 대비하고 R&R만 분배해도 되는 일이다. 그 어느 조직과 개인도 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후 10년이 지났는데도 이렇다면, 대체 우리 사회가 10년 동안 뭘 배우고, 변한건지 의문이든다. 만약, 안전부터 신경 쓴다면 어떤 모임이든 참여자 모집부터 달라질 것이다. 특이사항으로 장애나 부상 등 도움이 필요한 점을 반드시 남기게 했을 것이다. 누가 오는지 알아야, 그에 맞게 준비할 수 있다.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참석자가 파악되면, 행사 좌석 배치 부터 달라질 것이다.  기억의 주소는 감정과 상황이 아니라 부재를 몰랐다는 것, 부재를 몰라서 예방하지 못했다는 것 세월호 참사는 배만 안 뒤집히면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들을 살피고, 개선해서, 새로운 유형의 참사를 예방하자고 말한다. 문제 원리를 알면 어떤 문제도 풀 수 있지만, 유형만 알면 다른 유형을 풀 수 없다. 핵심 원리는 안전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대비 시스템 부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이 원리를 기억하고 모든 유형의 참사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모습은 ①시스템의 부재 ②시스템 부재를 못 봤다는 점 ③ 시스템 부재를 못 본 이유, 이 세 가지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시스템 부재를 못 본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① 문제가 문제인지 몰랐던 무지 ② 문제가 있는지 보려고 하지도 않은 무관심 ③ 만연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체념 ④ 만연한 문제에 대한 방관  ⑤ 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①~④번은 무능함이고, ⑤번은 비겁함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간 우리의 모습이다.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이 많나요?” [함께 기억] 프로젝트 중 성현이 내게 한 질문이다. 그렇다는 답변에 성현은 다시 물었다. “어른들은 뭘 했나요? 10년 동안.” 10년 동안 발견하지 못하고, 놓친 위험요소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 위험 요소들을 봤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렇게 놓친 기회가 몇 번일까. (사)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총괄팀장 장동원 씨는 이태원 참사 뒤에 “유가족들에게 미안했어요. 참사를 만들지 않겠다고 싸웠는데, 결국 또 희생자가 나왔잖아요.”라고 말했다. 미안해야 할 건, 기억하겠다고 한 모든 사람이지, 가장 앞에서 싸우는 한 사람이 아니다. 안전은 일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세월호를 기억하겠다고 한 말이 진심이었다면, 일부에게만 맡겨서 안 된다. "기억하겠다, 위로한다, 안전에 투표하겠다"에 멈추고,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건, 세월호 유족과 일부 법조인, 정치인, 기자가 해결할 거라며 맡겨 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정치인도 내가 서 있는 곳의 문제와 위험요소를 모른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발간 된 책, ⟪운명이다⟫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종료 후 고향인 김해에 내려가 화포 습지를 복원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엉망이 된 화포천을 보고 탄식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했다. "어디 화포천만 이렇겠는가. 온 나라가 다 이럴 것이다. 대통령을 하면서 강의 지천과 실개천, 습지들이 이토록 처참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3)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진 대통령도 가장 밑의 현실은 알지 못한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시의원이, 구의원이 아무리 국민과 내 지역을 생각한다고 말 해도,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의 문제는 알 수가 없다. 내 주변 문제를 알고, 알아차려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다. 참사는 일상에 있다. 기억하겠다고 말한 사람들은 일상의 참사 위험요소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 문제를 알아차리기 위해 가장 쉬운 실천은, 질문이다. 일상에 녹여야 할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과 질문 “현실 세계의 변화는 단순한 해답을 가져오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다. 좋은 질문을 통해서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각자의 정황을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좋은 질문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게 하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도 이끄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장치가 되어준다.”2) 앞서 세월호 행사에서 대피경로와 우선순위를 질문했을 때, 비로소 그 어떤 안전 시스템도 없다는 게 드러났다. 이처럼 질문은 보이지 않던 문제를 드러나게 한다. 드러난 문제는 해결하고 예방해야 하며, 그 순간마다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말해야하는 순간 5가지는 이렇다. ①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때 ②문제가 없는지 의심이 들 때 ③문제 인식을 못하고 있을 때 ④문제 개선 중에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할 때 ⑤ ①~④을 다 알고도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할 때. 세월호와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한번에 의미와 중요성을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은 많지 않다.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은 그 일을 해내는 소중한 표현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도 이 표현을 자주 써야 한다. 1년에 한번 말하는 “세월호를 기억하자”가 아니라, 일상에서 말하는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말이 304명의 죽음에서 반성하고,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태도다. 은유 작가는 “우리가 의심 없이 행했던 일을 의심하는 순간 해방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을 것입니다.”4)라고 말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의 우리들이 더욱 안전하기 위해서는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신호를 찾아서 그 신호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1)  세월호 유족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은 “지겹다"가 아니라, “어차피 참사는 또 발생해"라는 말이며, 가장 모욕적인 태도는 ‘문제를 알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의심 없이 행하는 것에 원인이 있다. 그것들에 의심하고 질문하면, 10년 뒤 우리는 더는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부디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10년 뒤 아직도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이 많냐는 질문과 10년 동안 뭘했냐는 질문에, 1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정말 안전해졌고 모두가 일상의 위험을 알아 본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 ⟪업스트림⟫ (댄히스/ 웅진지식하우스/ 2021) p.15, 41, 140 2) ⟪질문 빈곤 사회⟫ (강남순/ 행성B/ 2021) p.63, 65 3) ⟪운명이다⟫ (노무현, 노무현재단/ 돌베개/ 2022) p.311 4) ⟪해방의 밤⟫ (은유/ 창비/ 2023) p.250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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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디지털의 환경 비용, 그 뒤에 숨은 논리
빨리 가기에 대한 분노 지난 2018년 제주도 비자림로 확장 공사가 시작됐다. 2차선의 4차선 확장 공사였다. 제주도 관계자는 “하루 1만 4천 대 통행량으로 주민의 불편이 크다”며 공사 이유를 밝혔다. 책정 예산은 240억 원이었다. 시민단체는 반발하며 비자림 지키기 활동을 벌였다.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는 시민들 모임'은 “4차선 도로 확장을 해도 전체 구간이 3km밖에 되지 않고, 시간 단축 또한 27초밖에 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비자림로는 차로 5분이 걸렸다. 확장 공사로 벌목 된 나무는 900여 그루다. 비자림로 확장 공사가 알려진 2018년 8월 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제주도의 아름다운 비자림이 파괴되지 않게 막아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몇 시간 만에 1만 9,000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현재도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고 하려는 시민모임’ 인스타그램에는 비자림로 공사 게시물이 올라오며, 수십 개의 좋아요가 눌려 있다. 또한, 비자림로 도로 확장 공사를 비판하는 #비자림로를지켜주세요, #비자림로확장공사반대  게시물 모두 1,000개 이상 업로드 됐다. 빨리 가지 못 한다는 분노 코로나19 팬데믹은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전환시켰다. 인터넷 수요가 증가했고, 속도가 중요해졌다. 넷플릭스, 유튜브 동영상은 1,080p에 로딩이 없어야 했다. 도로든 인터넷이든 트래픽이 많으면 느려진다. 기업들이 초고속 인터넷, 더 빠른 Wi-Fi 서비스를 내놓은 이유다. 문제는 초고속이 초고속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1기가 바이트 속도의 인터넷이 실제로는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넷플릭스 속도 왜 이래" 혹은 “사진도 전송이 안 된다.” “굼벵이 인터넷 속 터져"라는 말이 나왔다. 비판이 코로나 팬데믹 특수라고 보긴 어렵다. 2017년 구글 리서치에 따르면, 모바일 기준 홈페이지 로딩 시간이 3초 이상일 경우 32%가 이탈하고, 5초 이상은 90%, 6초 이상은 106%, 10초 이상은 123%가 이탈한다. 2014년 우리나라 사람들은 홈페이지 로딩 6초가 길다고 느꼈다. 기대 시간은 3초였다. 현실이 이러니 기업들은 더 빠르고,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는 홈페이지와 기술을 개발했다. 그에 따라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웹사이트 한 페이지의 무게가 115배 증가했다"1) 프랑스 데이터센터 대표이자, 민간싱크탱크 ‘전환기의 데이터 센터(Datacenter en transition)’’의 공동 설립자 ‘필리프 뤼스(Philippe Luce)’는 “1990년대 말엔 웹사이트의 초기화면이 8초 안에 떠야 했다. 오늘날엔 0.8초 안에 초기화면이 완전히 뜨지 않으면 다른 플랫폼으로 가버린다.”1) 고 말한다. 같은 속도, 다른 비판, 다른 태도 온라인에서는 3초도 못 기다리는데, 오프라인에서는 5분이 느려도 괜찮다는 차이점이 왜 발생하는 걸까. 오프라인의 비판이 왜 온라인에는 적용되지 않을까. 오프라인에서의 악이 왜 온라인에서는 선일까. 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비판이 다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온라인이 발전하면서 누리는 편리함과 효율성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은 효율성을 추구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한다. AI, 사물 인터넷, OTT 등 디지털이 발전할수록, 과거보다 더 편하고, 많은 일을, 더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 명령어 몇 개만 입력하면 내가 원하는 글과 동영상을 만들 수 있고, 자동화로 업무 효율성이 증가한다. 발전 속도를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빠르고, 편리한 유토피아가 펼쳐질지 상상이 안 된다. 유토피아도 멀지 않아 보인다. AI와 디지털이 유토피아를 보여줄 때, 우리는 감춰진 디스토피아도 함께 봐야 한다. 동전은 양면을 갖고, 햇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디스토피아를 보면 AI와 디지털 발전이 다르게 보인다. 디스토피아를 보면서 오프라인에서 한 비판을 온라인에도 똑같이 해야 한다. NVIDIA는 왜 전 세계 시가총액 3위 기업이 됐나 NVIDIA는 콘솔 게임기와 PC, 노트북의 그래픽 처리 장치를 디자인 하는 미국의 반도체 회사다. 시가총액은 2조 3,751억 달러로 전 세계 3위다.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성장했다. NVIDIA의 주력 제품은 GPU(Graphics Processing Unit)다. 컴퓨터 그래픽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고, 결과 값을 출력하는 장치다. 고해상도 디자인과 게임 그래픽 구현에 쓰였다. CPU(Central Processing Unit)와 비교하면 속도 차이가 극명하다. NVIDIA는 그 차이를 영상으로 공개했다. NVIDIA가 단순 GPU 때문에 성장한 것은 아니다. GPU에 CUDA(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 기술이 결합된 결과다. 그 결과 GPU에서 수행하는 알고리즘을 C 프로그래밍 언어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CUDA 도입으로 NVIDIA는 AI가 원하는 대량 연산 처리를 할 수 있게 됐다. AI 소프트웨어에 딱 맞는 하드웨어가 된 것이다. AI 핵심이 딥러닝이 되면서 GPU는 필수가 됐다. 현재 NVIDIA의 전 세계 GPU 점유율은 98%다. AI 산업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다. NVIDIA가 급성장한 이유다. ChatGPT 개발사 오픈 AI의 SORA 서비스로 누구나 명령어 몇 개로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 기업들도 AI로 만든 영상을 제품 바이럴에 사용하고 있다. 한 기업은 자사 바디워시 제품 바이럴 영상을 AI로 만들어 공개했다. 이제는 불편한 골짜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NVIDIA 창업자 젠슨황  “전 세계 1천 조 규모의 데이터 센터가 있다. 현재 생성형 AI로 전환하는 과정” NVIDIA가 급성장하자, 창업자 젠슨황의 발언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전 세계 1천조 규모의 데이터 센터가 있으며 생성형 AI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9월에 “몇 년 안에 수조 대의 컴퓨터가 AI를 실행 하면서 새로운 사물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AI든 사물 인터넷이든 핵심은 데이터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한다. 사물인터넷은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움직인다. 데이터는 SNS, OTT, 유튜브, 블로그, 각종 앱을 사용할 때마다 생성되고 쌓인다. “하루에 5엑사바이트”가 생성된다. 엑사바이트는 10¹⁸에 해당한다. 이는 “정보화 산업이 시작된 시기부터 2003년까지 생산된 모든 정보의 양”이다.1) 1분 동안 벌어지는 디지털 활동을 보면 이 말이 이해가 간다. 2023년에 1분 동안 3억 4,700만 회의 유튜브 영상 조회, 45만 2천 시간의 넷플릭스 영상 스트림, 6억 2,500만 개의 틱톡 동영상 조회, 2,100만 명의 페이스북 유저 활성화, 65,972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공유됐다. 하루가 아니라 1분이다. 단순 계산으로 유튜브 동영상은 하루에 약 5천억 회 조회된다. 전 세계 스마트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한 사람이 초당 만들어 내는 데이터는 1.7mb다. “전화기며 태블릿 PC, 컴퓨터 등에는 분명 감춰진 비용이 존재한다. 이는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거나 우리의 감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어 온 빙산의 아랫부분이다. (중략) 디지털 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데이터들끼리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놀랄만한 인프라를 구축했으니, 그것은 바로 데이터 센터다.”1) “우리가 어떻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든, 스마트폰은 데이터센터와 연결되어 있다.”1) 또한, “오늘날 전 세계의 데이터센터는 면적이 500제곱미터에 미치지 못하는 규모가 거의 300만 개가량, 그보다는 큰 중간 규모가 8만 5,000개, 그리고 에퀴닉스 AM4에 버금가는 규모가 수만 개 정도 분포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1) 바로 앞 친구 SNS 게시물에 누른 좋아요는 총 7번의 과정을 거쳐 전달된다. 데이터센터를 반드시 거치며, 데이터는 해저 케이블로 전달된다. SNS뿐만 아니라 앞서 1분 동안 이루어진 활동 모두 마찬가지다. 방해금지 모드가 없는 데이터센터 데이터센터의 미덕은 꺼지지 않는 것이다. 데이터센터가 꺼지면 연관 산업은 셧다운 된다. 지난 2022년 10월 SK C&C의 데이터센터 화재가 발생하면서 데이터 처리가 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카카오톡, 카카오 택시, 카카오 페이 등 카카오 관련 서비스가 모두 먹통이 됐고, 신한카드도 결제되지 않았다. 데이터센터 화재로 데이터 처리가 되지 않으니, 해당 데이터센터를 이용하던 모든 서비스가 중단 된 것이다. SNS, OTT 시청, 온라인 결제, 이메일 전송, 무선 인터넷 등은 24시간 내내 작동해야 한다. 때문에 데이터센터는 멈추면 안 된다. ‘단 1초도 멈추지 않는' 게 데이터센터의 안정성이다. 데이터센터에게 방해금지 모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24시간 켜져있는 디지털은 24시간 내내 기후변화를 가속화 한다 꺼지지 않는 데이터센터와 24시간 접속 가능한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전기가 소모된다. “디지털 산업계가 하나의 나라라면, 이 나라는 전기 소비 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뒤를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전기의 35퍼센트가량은 여전히 석탄을 통해서 생산된다. 사정이 이러니, 지구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약 4퍼센트는 디지털 산업에서 발생하는 형편이다.”1) 자동차가 차고에 있을 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반면, 디지털은 24시간 켜진 상태로 24시간 내내 열을 방출한다. 이 열을 24시간 내내 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SK C&C 사태가 재발한다. 열기를 식히는 데는 HFCs 등 불소화가스가 사용된다. 이는 온난화 가스들이다. 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배가 된다.  현재 해당 가스 배출량 계산 지침도 없는 상태이며, 기업의 배출량 파악도 명확치 않다. 아마존, 메타, 넷플릭스, 유튜브 등 주요 디지털 기업은 자사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혹은 ESG 보고서에 HFCs 가스 배출량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편리함과 효율성, 속도에 감춰진 환경 비용 계산을 못 하는 것이다. 디지털 산업은 제품 “가격 책정 기능은 뛰어난지 몰라도 비용을 파악하는 능력은 없다"2)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은 24시간 내내 전기를 사용하고, 24시간 내내 열을 내뿜으며, 그 열을 식히는 HFCs 등 불소화가스를 24시간 내내 사용해야 한다. 이 모든 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24시간 내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달리는 자동차인 셈이다. 기업의 잘못만도 아니다. 인터넷 사용자  모두에게도 인터넷을 끊임없이 긴장 상태로 몰아간 책임이 있다. 한 엔지니어가 말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웹이 기능하는 방식을 우습게 알죠. 이들은 인터넷이 늘 빨리, 더 빨리 일하기를 기대하는 버릇없는 아이들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모두가 이러한 빨리빨리 논리의 지옥에 떨어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1) 디지털 산업 뒤에 감춰진 논리를 봐야 한다 생성형 AI가 산업에 더욱 쓰이고, 편리함과 효율성, 속도에 취해 더 빨리, 더 많이 논리를 살찌우면 데이터는 점점 더 커진다. 이미 “텍스트 하나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출력은 2~3년마다 두 배로 늘어났”으며 “점점 더 복잡해지는 명령행을 점점 더 많이 소화하느라 컴퓨터들은 쉼 없이 고군분투”1) 하고 있다. 2035년까지 생성될 데이터의 기울기는 매해 가파르게 올라간다. 2035년이 되면, 2,142 제타 바이트의 데이터가 만들어 질 전망이다. 1제타 바이트는 10²¹이다. 젠슨황의 말처럼 모든 데이터센터가 생성형 AI로 전환되면, 더 많은 데이터가 처리되고, 처리된 양만큼 더 많은 데이터가 생성될 것이다. 이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과 더 많은 데이터처리로 이어질 것이다. 더 빠르고, 더 많다는 기준은 항상 이전의 속도와 양이다. 1990년대 말 8초를 견딘 사람들은, 이제 3초도 못 견딘다. 더 빨리, 더 많이를 추구하는 우리는 이미 “빨리빨리 논리의 지옥"에 떨어져 있으며, 이 논리에는 성장 논리가 숨어있다. ‘더 빨리, 더 많이’ 뒤에 ‘생산과 소비’를 넣어도 이상하지 않다. ‘더 빨리 생산, 더 많이 생산' 과 ‘더 빨리 소비, 더 많이 소비'는 성장의 논리다. 작년보다 더 많이 생산되고 소비될 때 성장했다고 말한다. 또한 그 성장을 신화처럼 여기고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설령 성장하지 못해도 ‘성장' 단어를 절대 놓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가 후퇴했을 때, 언론과 정부는 후퇴를 ‘마이너스 성장' 혹은 ‘제로 성장' 이라고 불렀다. 성장을 얼마나 추구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프란츠 알트는 ‘마이너스 성장과 제로 성장'이라는 단어가 의아하다며 “성장 없이는 아무 일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3)고 비판한 바 있다. AI 등 디지털의 발전은 우리 사회를 전에 없던 성장의 길로 이끌 것처럼 보인다. 몇 시간이 걸러셔 하던 영상 편집을 명령어 몇 개로 단숨에 끝내버리니, 당연하다. 구글에서 긁고 긁어서 찾은 자료를 ChatGPT가 단숨에 찾아주니, 당연하다. 비단 영상과 자료 리서치만이 아니라, AI가 펀드도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우리를 달콤한 편리함과 효율성에 취하게해, AI와 디지털을 더욱 쓰게끔 만든다. 그리고 디지털이 더욱 확대되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장하면 더 좋은 걸 쓸 수 있어"라고 말한다. 달콤한 속삭임이다. 달콤한 건 언제나 독이다. 그 속삭임 뒤에 있는 환경 비용을 보고,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 자식들과 손자들은 우리가 연금을 80마르크나 100마르크 더 받거나 덜 받는 것을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맑은 물, 건강한 땅, 그리고 깨끗한 공기를 물려주는 것을 가지고 우리를 평가할 것이다.”3) 독일 화폐 마르크는 2002년에 폐지됐다. 프란츠 알트가 말한 자식과 손자는 지금 세대다.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지금 세대는 신규 아이폰, 새로운 넷플릭스와 유튜브 콘텐츠, 릴스, ChatGPT가 만든 효율성에 열광한다.  그레타 툰베리 등 기후세대가 등장했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인 “'기후세대'는 2025년에 이르러 디지털 업계의 전력 소비량 (전 세계 전기 생산량의 20퍼센트)과 온실가스 배출량 (전 세계 배출량의 7.5퍼센트)을 두 배 증가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될 것이다.”1) 성장만의 추구가 멈추지 않는 이상, 모든 환경 캠페인은 현상만 제거할 뿐 원인 제거를 하지 못한다. 디지털 클린 업 데이에 참여해 메일함 비우기에 만족하는 건, “타이타닉호에 고인 물을 티스푼으로 떠내는 것만큼 소용없는 일이다.”2) 물론 필요하다. 무의미하고 의무적인 댓글과 좋아요를 남기는 것 보단, 지우는 편이 더 낫고, 의무적인 댓글과 좋아요는 없는 게 낫다. “제일 중요한 건 얼마만큼의 기가바이트를 절약했느냐가 아니라 행사를 통해서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1)이다. 메일함을 비운 뒤, 신규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공유하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이는 실상 아무 변화도 없는 것이다. 사고가 바뀌고, 성장만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곧 우리를 지배하는 규칙이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를 바꾼다는 것이다.”4) 이를 위해선 “사실이 신념에 영향을 주게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곤란한 질문을 많이 던져야 한다. 한두 개의 질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질문이 충분치 않으면 오히려 거짓된 안도감에 빠질 수 있다.”5)  몇 가지 질문으로 도달한 친환경 소비, 친환경 생산, 녹색 성장은 오히려 거짓된 안도감일 뿐이다. 이는 친환경과 녹색이라는 이름 하에 더 많은 소비와 생산을 만들 뿐이다. 그로인해 환경 비용이 더 커진다는 게 사실이다. 오프라인과 동일한 비판, 온라인에 해야 할 '곤란한 질문' AI로 더욱 주목받기 시작한 디지털 산업이 커질수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비용도 점차 커질 것이다. 그 규모는 비자림로 도로 확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다. 그린피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십중팔구 인간이라는 종에 의해 건설 된 가장 광대한 것"이다.1)  인류의 진화를 말한 유발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 인류를 호모 데우스라고 말하면서, 현대 세계가 성장을 절대선이자 절대가치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성장에 반하는 걸 이단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6) 그는 이 성장 신화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 신화가 환경 문제를 볼러오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성장이 가져올 유토피아만 바라봐선 안 된다. 함께 따라오는 어쩌면 그 보다 더 거대한 디스토피아를 함께 봐야 한다. 그 시작은 감춰진 비용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곤란한 질문이다. 유튜브 영상 조회와 넷플릭스 스트리밍 시간, SNS에 누른 좋아요에는 감춰진 비용이 존재한다. 전 세계의 비트코인 채굴 전기 소비량은 호주 전체와 맞먹는다. 또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튜브 조회수 17억 회 당시, 전기 소비량이 297기가와트시"1)였다고 추정된다. 이는 프랑스 도시인 "트루아의 연간 전기 소비량과 같은 양"1)이다. 현재 강남스타일의 유튜브 조회수는 50억 회가 넘었다. 이 보다 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은 2021년 기준으로도 5개가 존재한다.  여기에 곤란한 질문을 해야한다. 유튜브 영상 조회수를 보고, "이 영상으로 얼마를 벌었냐"가 아니라, "이 영상의 조회수로 만들어진 환경 비용은 얼마인지", "이 영상을 계속 보여주기 위해 쓰인 전기는 얼마인지" 등 상대방이 곤란해 할 질문을 해야한다. 곤란한 질문을 할 때 디지털 산업과 성장 논리가 감춰 놓은 비용이 드러나고,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질문 할 수 없다면, 최소 높은 조회수에는 높은 환경 비용이 감춰져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디지털에 남기는 모든 흔적은 환경 비용을 가지고 있다. 이 글도, 이 글에 눌린 좋아요도, 공유도, 이 글이 올라가는 플랫폼 자체도 환경 비용을 만들고 있는 건 틀림 없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비판해야 한다. AI가 더 빠른 속도와 편리함과 효율성을 기반으로 확산될 수록, 환경 비용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부디 내가 사용하는 디지털 산업이 어느 정도의 환경 비용을 유발하는지 생각하고, 산업과 그 기업에 환경 비용이 얼마인지 물었으면 좋겠다. 또한, 현재 산업을 이끄는 지배적 논리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대한 비판을 가했으면 좋겠다.  은유 작가는 “우리가 의심없이 행했던 일을 의심하는 순간 해방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을 것입니다.”7)라고 말했다. 우리가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성장과 시스템을 의심하는 순간, 변화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을 지도 모른다. *참고서적* 1)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기욤 피트롱/ 갈라파고스/ 2023) p.23, 43, 75, 105, 109, 112, 113, 139, 142, 161, 188 2) ⟪비즈니스 생태학⟫ (폴 호켄/ 에코리브르/ 2004) p.23, 122 3) ⟪생태적 경제기적⟫ (프란츠 알트/ 양문/ 2005) p.32, 33 4) ⟪업스트림⟫ (댄히스/ 웅진지식하우스/ 2021) p.140 5)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본 쉬나드/ 라이팅하우스/ 2020) p.320 6)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21)  p.285~304 7) ⟪해방의 밤⟫ (은유/ 창비/ 2024) p.250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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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1편 '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와 이어 지는 콘텐츠 입니다. 위인설관(爲人設官) : 사람을 위해 벼슬 자리를 일부러 만듦. 3월 15일 주주총회의 안건,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 유한양행은 지난 2월 14일,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냈다. 한 개 안건이 논란이 됐다. 정관 변경 건이었다. 현재 유한양행 정관 33조 2항을 변경한다는 것이다. 기존 정관 제33조 2항에는 “이사회 결의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이를 “이사회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를 선임할 수 있다.”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이었다. 이는 곧 이사회에서 결정만 하면, 회장, 부회장을 선임할 수 있다는 말이다. 28년 전에 없어진 회장직을 다시 살리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고, 이것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직전 회장은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이었고, 당시엔 정관에 회장・부회장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28년이 지나서 다시 기한조차 명시되지 않은 회장?부회장직 신설하는 저의에 대한 의문 속에서, 이는 수년 간 착실하게 준비된 된 것이라는 목소리기 나왔다. 그 시작은 2022년, 유일링 고(故)유일한 박사 손녀의 유한재단 이사 퇴출이었다. 쫓겨난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유은영), 견제와 균형 붕괴의 초석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은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자,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1969년 친아들을 유한양행 경영으로부터 손 떼게 했으며,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자식들에게 유한양행 주식을 1주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주식을 통한 경영권 소유를 방지했다. 또한, 모든 주식을 교육기금에 기부하며 자식들은 이 기금 관리에만 힘쓰게 했다. 이 기금은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며, 그의 자식들은 이곳 경영에만 참여할 수 있다.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 유한양행 대주주라는 점에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은 유한양행 결정에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다.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선 유한재단 이사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결정은 그들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1월 유일링 이사는 유한재단 이사로 재선임 되지 않았다. 임기 만료가 이유였다. 당시 유일링 이사를 포함해 4명의 임기가 종료 시점이었지만, 유일링 이사만 재선임되지 않았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스스로를 기업가가 아닌 교육자라고 말했던 만큼, 유한재단은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차원에서 그의 유일한 손녀인 유일링 이사가 이사직에 재선임되지 않은 건 당시 큰 논란이었다. 또한,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그의 후손이 유한재단에 남아야 한다는 시각이 강했다. 당시 유한재단 이사진들은 “유일링 이사가 미국에 있어서 재단 업무를 보기 어렵다" 고 말했다. 해임된 유한재단의 이시진은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현재 유한재단 이사진 중 유한양행 전・현직 관계자는 5명 이상이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이정희(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송두영(전 유한양행 재무팀 이사), 김성섭(전 유한크로록스 대표이사・사장), 정수길(전 쉬랑프라우 대표이사・사장). 유한크로록스는 유한양행의 가족회사이며, 쉬랑프라우는 유한양행의 합작 회사다. 유한재단 이사진이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와 가족회사, 합작회사 인원들로 채워졌다는 면에서 고(故)유일한 박사가 말했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무너진 것과 진배없다. 유한양행 경영진과 이사회를 견제하기 위해선, 대주주가 견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대주주인 유한재단에 유한양행과의 특수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5조 5항에서는 공익 법인의 현역 이사진 중 특수관계인을 5분의 1 이상 둘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 방지를 위해서다. 특수관계인인 유일링 이사가 2022년 축출되고,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유한재단의 유한양행 견제 능력에 의문이 드는 이유다. 한편, 유일링 이사는 유한학원 이사진에서도 해임될 뻔했다. 2023년의 일이다. 당시, 유한학원 이사진 중 유한공고 이사진들이 막아줘서 가까스로 이사직을 유지한 바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 지우기 논란과 이사진의 기업 사유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유한양행 임직원  “유일한 박사님은 경영과 소유를 분리했고, 사회환원을 말했다.”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로, 기업 사유화 안 돼" 주주 소집 공지가 올라온 2월 14일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유한양행 직원들의 게시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 경영진들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고 한다는 비판이었다. 직원들은 유한양행 경영진의 비리와 경영 판단 오류, 이정희 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의 채용 비리와 부하 직원 전 부인과 재혼하는 등 도덕성 문제들을 알리고, 부디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반대 투표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한양행 임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2년 8개월이다. 남성은 13년 9개월, 여성은 9년 7개월이다. 이는 국내 제약 바이오사 평균 근속연수가 5.25년인 것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또한, 국내 200대 기업 평균 근속연수인 9.45년보다도 높은 수치다. 근속연수 측면에서 직원들의 애사심이 높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트럭시위는 전체 임직원 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300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이루어진 시위였다. 540만 원가량을 모아서 진행한 시위다. 높은 근속연수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시위까지 벌인다는 면에서, 유한양행 직원들이 회장・부회장직 신설에 큰 우려를 하고 있고, 큰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한양행 주주총회, 95% 찬성으로 회장・부회장직 신설 통과 3월 15일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직접 한국에 방문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오늘 하고 싶은 말은 할아버지의 뜻과 정신이야말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모든 건 이를 따라 얼마나 정직하고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도움이 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의 반대 의사 표명에도 의결권 행사자 68% 중 95%의 찬성으로 모든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회장, 부회장직이 신설되고, 이사회는 회장과 부회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회장, 부회장에 누가 임명되느냐가 벌써 주목받고 있다. 이정희와 조욱제 이사 모두 자신들은 “안 한다. 명예를 건다.”고 말했다. 회장을 안 할 거면, 이사회 의장은 왜 계속 하나.  “이미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장은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으로 총 6년 임기를 마치고, 돌연 기타비상무이사로 등재해 3년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 전문경영인 6년 이후 회사를 떠나는 것이 관행인 가운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또다시 3년 연임을 안건으로 올려 통과시켰다. 합계 12년을 이사회 의장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유한양행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이미 일감 몰아주기와 채용비리가 있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이 자기 아들을 유한양행 관계사에 취업 압력을 넣었고, 또한, 유한양행 주력 제품 판매 대리점 대표의 아들을 유한양행 2022년 공채에 뽑으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었다. 해당 내용은 국민신문고에 접수되어 드러났지만, 조욱제 대표는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반면, 압력을 받았다는 A씨는 “조 대표의 압력이 없었다면, 학점 2점대 사람을 뽑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유한양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유력 병원장이나 정부 관계자 자녀, 기관장 자녀 등이 채용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며 “대주주인 유한재단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주주권 행사를 사실상 하지 않는 바람에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습에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유한을 사랑하는 시민사회 인사 대표'들은 “유한양행은 국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기업 문화의 상징”이라며 “(유한양행 경영진은) 유일한 박사의 창립 이념과 기업가 정신을 잊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신뢰한 고(故)유일한 박사 고(故)유일한 박사는 “한 사람을 믿고 영입하면 그 사람과 거의 일생 동안 함께 일할 생각을 가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창업 시기의 직원들이 20년, 30년 오랫동안 유한양행을 지키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은 1978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15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는 1987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21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정희 의장은 45년 동안 유한양행에 재직했고, 조욱제 대표는 37년간 재직했다. 모두 신입부터 시작해 전문경영인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구축했던, 체제의 증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들고 추구했던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의혹들과 경영 행태 어디에 유일한 정신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생명은 신용이다.”** 라고 말했다. 현 이정희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 대표는 직원들에게 신용을 잃었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립성이다. 이사회 독립성은 경영진을 객관적으로 감시 할 수 있는가다. 독립성 없는 지배구조는 한 두 사람이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만든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든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경영과 소유의 분리했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한두 사람의 결정으로 기업이 움직이고,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국내 최초로 종업원주주제를 채택한 것도, 국민에게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공개를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이냐는 물음에, 고(故)유일한 박사의 답변은 “국민과 종업원”이었다. 이 체제를 위해 균형과 견제를 제도화한 것이, 그의 유산이다. 이 유산을 유지를 위해 그에 걸맞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고, 그 때문에 자식에게도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 것이다. Ⓒ 한량,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유한양행 본사 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선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라,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현재 유한양행 이사진의 행동은 위인설관(爲人設官)이다. 당장 필요도 없는 회장과 부회장직을 추후 필요하니까 만든다는 논리는 오히려 의심만 키울 뿐이다. 오히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유한양행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로고로 버드나무를 택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모진 행태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끈질기고, 무성하게 대성하기 바란다는 뜻이 담겨있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이 정말 무성하게 대성했으면 좋겠다. Ⓒ 한량, 유한대학교 내에 있던 버드나무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289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김윤섭, 최상후/ 유한양행) p.23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 위관택인(爲官擇人) : 관직을 위하여 인재를 택함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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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
국내 ‘유일한 정신’ 지난 3월 15일, 유한양행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렸다. 여느 때보다 이목이 쏠렸다. 직원들은 주주총회 안건에 반발해 트럭시위를 벌였고, 유한양행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미국에서 직접와서 주주총회 안건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주주총회는 주식회사가 1년에 한 번 주주들에게 회사 주요 사항들을 의결하고,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자리다. 배당금, 이사회 이사 선임,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주요 사항들을 결정한다. 금번 주주총회에서는 유한양행 정관변경이 핵심이었다. 이 정관 변경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었던, 경영과 소유의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초석이라는 의심이 나온다. 유한양행 직원들의 주주총회 반대 트럭시위에는 “유일한 박사님께서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 일가족 그 누구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으셨다.”고 쓰여있었다. 유한양행 이사진이 그 뜻을 파괴하고, 필요도 없는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직책을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한양행, 창업자의 뜻을 계승하기에 존경받는 기업 유한양행은 고(故)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제약회사다. 22022년 기준 매출액 약 1조 8천 억원, 영업이익 약 360억 원으로 국내 제약회사 1위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제약회사 부문에 20년 연속 1위로 선정됐다. 유한양행이 존경받는 이유는 국내 1위 제약회사여서가 아니다.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계승하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경영 철학은 이익이 아닌, 사회에 있었다. 때문에 그를 사회사업가라고 부른다. 고(故)유일한 박사와 같은 뜻은 현재까지도 국내에 전혀 없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생전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라며 “이윤의 추구는 기업 성장을 위한 필수 선행조건이지만 기업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신념과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교육기금에 기부한 것으로 실천했다. 그는 생전 재산 중 양복 세 벌과 구두 두 켤레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1963년 9월에는 연세대학교에 1만 2천 주를 기부했고, 5천 주는 보건장학회에 기부했다.**  또한, “유한양행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발전을 위한 기금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대로 14만 941주의 주식은 교육기금에 기부됐으며, 현재는 ‘유한재단’과 ‘학교법인 유한학원’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교육에 힘쓴 이유는,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실제 그는 생전 자신을 경영인보다 교육가라고 말했다. “그가 외국으로 나가서 입국할 때 출입국 신청서 직업란에는 언제나 ‘Educator(교육자)’라는 영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세 학교는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을 통해 교육, 장학,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유한재단은 목적 사업비 90%가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에서 나온다. 유한재단은 2022년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으로 총 43억 8천 4백 5십 9만 7천 원을 받았고, 배당금으로 장학사업과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 재해구호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유한대학교 전경 Ⓒ 한량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은 개인 것이 아니라, 종업원과 국민의 것" 장학사업에만 몰두했다면, 고(故)유일한 박사가 여전히 존경받고, 직원들이 나서서 트럭시위까지 벌이 진 않을 것이다. 그는 유한양행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과 종업원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한양행의 첫  주식상장 시에 이를 실천했다. 유한양행은 주식상장으로 “창업 이래 10년간 이어져 온 기업의 개인 경영이 막을 내리고 새롭게 법인체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한국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획기적인 건 주식상장의 가격과 배분에 있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 주주제'를 실시했다. 종업원 주주제란, 종업원이 회사 주식을 특별한 목적이나 방법으로 소유하는 제도를 말한다. 종업원의 애사심을 증진이 주목적이었고, 최근에는 근로자의 재산형성으로 촉진제의 하나로 인식된다. 실제 국내 대기업은 종업원에게 회사 주식을 상여금으로 주기도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종업원 주주제’를 통해, 회사 주인이 개인이 아님을 말했다. 이를 위해 “종업원들에게도 액면가 10퍼센트 정도의 가격으로 주식을 골고루 분배해주었다.”**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인식된다. 그 차원에서 보더라도, 회사 주식을 종업원들에게 값싸게 분배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이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 주주들과 함께 경영한다는 의미다. 한편,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민 역시 싼 값에 유한양행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주식상장 당시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가격을 책정했다. 연만희 전 유한양행 고문은 고(故)유일한 박사와 주식 가격 책정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연만희 고문은 유일한 박사가 당시 주식 가격을 1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는 당시 시장 가격인 600~7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라며 만류했다. 그러자 유일한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큰소리로) 내가 돈 벌려고 주식을 상장하는 줄 알아요? 상장하는 이유는 유한이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것이기도 하기에 공개하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시오.”*** 유한양행 주식 상장은 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에도 합리적으로 경영되고, 민주적으로 경영된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사회는 어디를 보아도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에 유일한 가사는 이러한 사회 풍조에 도전하기라도 하듯 유한양행이 합리적으로 경영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식 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정치권의 불법자금을 지원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고, 그에 따라 강력한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세무조사에서 장부가 너무 깨끗하고, 세금을 정직하게 낸 것만 증명되어 모범 납세자로 도리어 상을 받은 건 더욱 유명하다. 현재 유한양행의 주요 대주주로는 유한재단, 국민연금, 유한양행, 유한학원이 있다. 유한재단 15.7%, 국민연금 10.1%, 유한양행 8.5%, 유한학원 7.7%이다. 회사가 개인 소유와 사익 추구의 도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체계화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일가족이 유한양행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고, 이를 위해 유한양행 주식 단 1주도 자식들에게 남기지 않았다. 1969년에는 자신의 큰아들마저도 유한양행에서 내보냈다. 현재도 유한양행 이사진 중 그의 후손은 없다. 경영권도 전문경영인에게 양도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국내에서 드문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강조, 전문경영인체제 도입 유일한 박사는 제 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조권순 당시 전무에게 넘겼다. 회사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념을 완성한 것이다. 출처 : ⟪나라 사랑의 참 기업인⟫ (유한양행/ 1995) p.335 고(故)유일한 박사는 제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당시 전무였던 조권순에게 양도했다. 이때부터 회사 내부에서 승진을 거듭해 사장직에 오르는 건 유한양행의 관행이 됐다. 또한, 그 임기조차 3년 중임제로 최대 6년까지만 할 수 있다. 그렇게 임기를 마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는 게 관행이었다. 그것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가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을 사유화하는 유한양행 이사진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은 기업이 개인의 사익 추구 도구가 아니며, 기업의 이익이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시스템 마련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업적이다. 이 업적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정반대되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었다는 점이 그가 존경받는 이유다. 경영과 소유의 분리는 우리나라 지배구조에서 더욱 보기 드물다. 오히려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더욱 강하다. 정치권 역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비합리적” 이라며 소유와 경영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런데, 독재정권 당시 모든 걸 추진했던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3월 15일에 진행된 유한양행 주주총회를 자세히 살펴보며, 유일한 정신이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2편 '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박사⟫ (김윤섭, 최상후/ (주)유한양행) p.23, 25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308, 309, 312, 314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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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아직도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이 많나요?”
10년 전보다 덜 무능하고, 덜 비겁한 사회인가요?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그 사이 세월호는 흐릿해졌다. 교과서로 배운 사람도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억이 흐려지고, 모른다고 슬퍼할 건 아니다. 나무랄 일도 아니다. 기억하고 나무라는 사람도 세상의 모든 참사를 기억하고 아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나 역시도 내가 어릴 적에 발생한 참사는 잘 모른다. 성수 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모두 교과서로 배웠지만, 그걸로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교과서에 담겼다고 사회가 그걸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두 번의 붕괴는 건설사의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다. 그와 비슷한 사고는 2022년 광주에서 발생했다. HDC 산업 개발이 만든 아파트가 건설 도중 부서진 것이다. 건설사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다. 만약, 성수 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을 제대로 기억하고, 예방하고, 내재화했다면 광주의 사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모두 교과서에 기록해야 하는 참사다. 그 참사를 계속해서 후대에 알려줘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어디서 알려줘야 할까, 뭐라고 알려줘야 할까. 세월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 세대의 무능함을 답습하지 않게 하려면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 성현(가명)은 세월호 참사 당시 8살이었다. 올해 18살이 됐다. 세월호 참사 때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같은 나이다. 세월호 참사를 모르는 성현을 만나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성현은 인터뷰 도중 이렇게 물었다. “아직도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이 많나요? 제가 살아갈 사회가 그런 사회인가요?” — Q. 인터뷰에 참여한 이유가 궁금하다 해줄 수 있느냐고 하셔서 참여했다. (웃음). 억지로 하는 건 아니다. 대화하고 싶었다. 부모님 말고, 학교 선생님 말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고 싶었다. 그게 다다. Q. 인터뷰 주제가 편안한 주제는 아니다. 안다. 세월호 아닌가. 편안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300명이 죽은 참사가 편안해서도 안 되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 사회에 있던 가장 큰 참사 중 하나가 아닌가. Q. 세월호를 묻기 전에, 어떤 참사들을 알고 있나 이태원 참사가 내게 가장 가깝고, 알고 있는 참사다. 가장 최근이기도 하고, 유튜브와 SNS에 참사 현장이 많이 공유됐었다. 직접 이태원에서 본 건 아니지만, 영상 속에서나마 그 비극이 느껴졌다. 한동안 그 잔상이 떠다니기도 했다. 참사를 직접 겪으면 얼마나 괴로울지 가늠이 안 된다. Q. 사실 세월호 참사 자체를 안다고 할 만한 나이는 아닌 것 같다. 안다기보단 배웠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어릴 적에 참사를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한다. 2014년에 8살, 지금은 18살이다. 8살 때 뭘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유튜브나 SNS나 발달한 게 많으니까, 알고리즘에 걸리면 계속 나와서 알긴 하는데. 그렇다고 깊이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Q. 당시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 내에 안전교육이 강화된 것으로 안다. 실제로도 그랬는지. 강화된 건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한테는 그게 원래 것이다. 세월호 참사 전 사람들이라야 변화를 알겠지만, 우리는 그게 원본이었다. 그래서 말하기가 어렵다. 초등학교 때는 기억이 안 나지만, 중고등학교를 떠올려 보면 안전교육을 한 것 같다. 비디오 시청이나 야외 교육 등을. 그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다. 내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전학을 많이 다녀서 기억이 왜곡된 걸 수도 있다. Q. 학교 내 안전 의식은 많이 늘어났을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 그런 의식이 증가했었다. 세월호 참사로 떠난 학생들이 과연 안전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건가 묻고 싶다. 내가 알기엔 세월호 학생들은 배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정말 가만히 있었던 걸로 안다. 말을 너무 잘 들었다고 들었다. 학생들을 죽을 상황에 가둬둔 건 어른들 아닌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었던 학생들의 문을 두드린 건, 어른들이 아니라 바닷물이었다. 정확히 모르지만, 그랬을 것 같다. 진짜 사람이 문을 열었을 땐, 이미 몇 년이 지난 뒤였을 것이고. 이게 과연 학생들이 안전교육이 안 되어 있어서 발생한 건가? 오히려 어른들이 안전교육을 안 받아서 생긴 사고 아닌가 묻고  싶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은 건 어른들 아닌가. Q. 세월호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 그때마다 내 생각을 많이 물어보셨다. 이태원 참사 이후 더욱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전까지는 부모님도 말씀을 안 하셨다. 이태원 참사 현장을 보고 함께 돌아온 후, 부모님께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알고 보니 두 분다 세월호 관련 봉사활동도 하셨다고 그랬다. 그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Q. 부모님은 세월호에 대해 뭐라고 하셨는지 뉴스에서 하는 이야기를 하진 않으셨다. 예를 들어 어디서 발생했다, 언제 발생했다, 몇 명이 사망했다 등 이미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때 본인들이 느낀 게 무엇인지를 많이 말씀하셨다. “엄마는 이렇게 생각했고, 이런 걸 느꼈어. 아빠는 이런 게 비참했고, 이런 점에 분노했었어. 그래서 이런 걸 했어.” 라고. 그 끝에 항상 내 생각을 물어보셨다. “부모의 감정과 생각을 알 필요도 없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데 네 생각이 뭔지 고민할 줄은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Q. 부모님께서 생각 자체를 강조하시는 것 같다 부모님께서 강조하셨던 게 있었다. 세월호 학생들이 어른들 말을 너무 잘 들었다는 것이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는 과연 내 자식에게 말 잘 들으라고 라고 할 수 있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어른이고 부모인가를 대뇌였다고 하셨다. 자식들에게 부모의 말 들어야지 라고 말했을 때, 내 말이 정말 맞는 말인지, 필요한 말인지, 옳은 말인지 생각하고 말했었나 돌아봤다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으라는 그 말을 학생들이 얼마나 신뢰했을지 생각해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어른이 “부모 말 잘 들어야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라고 하는데, 그 말이 학생들을 배 안에 가둬둔 건 아닌가 싶었다 하셨다. 또 그 안에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도리어 나눠주며,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데 헌신한 선생님들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무능한 어른의 비겁함 때문에 구할 수 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떠났다고 하셨다. 세상엔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이 너무 많은데,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이 무능인지 비겁함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설령 부모의 생각이라고 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네 생각이 뭔지 고민하고, 부모든 선생이든 그 누구든 간에 “제 생각은 다르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게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 때문에, 또 다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지 않는 일이라고 하셨다. Q. 부모님 말씀에 동의하는지 세상 모든 어른을 만나본 게 아니다. 기껏해야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부모님, 친척들이 전부다. 그래서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이 많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다만, 세월호 당시 어른들이 무능하고 비겁했다는 건 알겠다. 나도 곧 어른이다. 몇 년 지나면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갈 거다. 그때 나는 당시의 어른들보다 덜 무능하고, 덜 비겁했으면 좋겠다. Q. 세월호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확실한 건 학생들이 있었고, 외면받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학생들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10년이 지났다. 10년 동안 사회가 그대로라면, 그건 정말 어른들이 무능한 거로 생각한다. 묻고 싶다. 아직도 무능하고 비겁한 어른들이 많나? 내가 살 사회가 그런 사회인가? Q.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다가온다. 어른들은 기억하자고 한다. 학생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혹은 어떻게 다가오는지. 처음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기억하자는 말이 뭘 기억하자는 건가 싶다. 그냥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자는 건지, 아니면 다른 게 있는 건지. 세월호 사고가 있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않나, 싶었다. 우리 집이 제사를 지낸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다. 제삿날에 제사상에 절은 하지만,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른다.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다. 그런 제사가 내게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부모님한테만 의미가 있는 거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런 말을 하니까 부모님도 “네 말이 맞다.”라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어른들의 구호나 외침이 와 닿지 않을 때가 많다. 기억하자, 기억하자, 근데 뭘? 이라고 느낀다. 물론 이건 내가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른들의 기억을 알기엔, 내가 그 참사의 슬픔과 분위기를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 제사 이야기를 다시 말하면, 부모님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추억이 너무나도 애틋하고, 돌아가셨을 때 분명 슬펐겠지만, 아무 기억이 없는 내게는 사실 와 닿지 않는다. 그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서 부모님이 계신다 정도지. 그 외에는 사실 없다. 당사자들에게는 분명 슬픈 일이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누구의 문제다라기 보다는, 그냥 시간이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되는 현상 같다. Q. 진로는 정했는지 고민이다. 하고 싶은 게 많다.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정할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공부가 너무 싫다. (웃음) 공부 안 해도 원하는 걸 할 수는 없는 건가 싶다. 왜 모든 걸 공부로만 정하는지 모르겠다. — 인터뷰가 끝나고 성현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다. 성현은 족발이라고 말했다. 족발이랑 매운 족발, 막국수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알겠다고 하니, 성현은 동생 불러도 되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말했고, 30분 정도가 지나자 성현의 동생이 왔다. 셋이 함께 근처 족발집에 가서 족발을 먹었다. 후식으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세월호를 모르는 사람에 대한 구호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도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를 모른다. 참사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유족들의 슬픔을 느껴보지 못했다. 지금 내게 성수 대교를 기억하자, 삼풍백화점을 기억하자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뭘 기억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보다는 성현의 부모님이 그랬듯, 스스로 생각하라고 말해야 하는 것 같다. 참사를 겪은 사람들의 기억을 분명히 알려주되, 거기서 끝이 아니라, 무엇을 남길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다. 기억하자는 말을 잠시 떠올려봤다. 그 말을 듣고 무엇을 기억하려고 했는지 말이다. 참사 유족들의 감정인지, 참사 자체인지, 참사 원인인지, 참사 때 느낀 감정과 생각을 토대로 한 다짐인지, 그 생각들로 내린 결론인지.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았다. 성현의 생각에 세월호 참사는 “무능한 어른들의 비겁함.”이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조금 더 나아졌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입을 막는 자(者)들이 있는 게 떠올랐다. 성현의 말이 계속 곱씹어진다. “세상에 아직도 비겁하고 무능한 어른들이 많은가요? 제가 살 사회가 그런 사회인가요?”.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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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내 생일 4월 16일, 나는 슬퍼하지 않는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로 바뀐 결말 벌써 10년 전이다. 당시 대학생들은 직장인이 됐다. 벌서 선임, 대리, 과장을 단 사람도 있다. ‘무명(가명)’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학생은 불합리한 사회를 바꿔보겠다며 기자가 됐다. 자신의 무기라고 생각한 글로 뾰족한 세상, 둥글게 깍아 보겠다 다짐했다. 그 다짐을 계속 다듬으며 어느새 선배 소리를 듣는 기자가 됐다. 소설을 좋아했던 무명은 자신이 읽은 소설을 각색해 자신만의 작품으로 만들곤 했다. 같은 배경의 주인공이 다른 사건을 마주치며 다른 결말을 맞게 했다. 이유를 묻자 “작가의 결말이 너무 후져보였다.”라며 “작품 주인공에겐 내가 생각한 사건과 결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무명의 노트는 단편소설로 채워졌다. 자연스레 소설가를 꿈꿨고, 국문학을 전공했다. 한글로 쓰인 작품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명의 말로 “멍청한 생각이었다.” 이번 인터뷰는 소설가를 꿈꿨던 대학생이, 세월호 참사 후 기자가 된 이야기다. 인생도 소설이라면, 무명에게 세월호는 예정된 결말을 바꾸는 사건이었다. “책 안 팔려서 전전긍긍하고, 이야기가 안 풀려 머리 뜯다가 탈모로 울 줄 알았다.”던 무명은 전혀 다른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내 주변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질문하는 즐거움은 기자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삶의 경로를 바꾼, 무명과의 인터뷰다. Q. 본명을 말할 수 있을지 못 한다. (웃음). 나 기자다. 외부에 이름 내놓고 글 쓰는 사람이다. 물론 사람들은 이름보다 매체를 보겠지만. 내 이름 넣었다가, 혹시라도 선/후배가 보면 어쩌냐. 나인 거 알면 “이거 선배 아니예요? 이거 너 아니냐?”라고 물어볼텐데. 창피하다. 안 된다. 참아달라. (웃음) Q. 알겠다. 그럼 사진은 가능할지? 이름을 가리는데, 얼굴을 까라고? (웃음) 유재석이 유두래곤으로 나온다고, 유두래곤인 게 아니다. 비가 비룡으로 나온다고 비가 아닌 게 아니다. 이효리가 린다G로 나온다고 이효리가 아닌 게 아니다. 이름 바꿔도 가수 후배들은 뛰어와서 90도로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인사할 것이다. (웃음). 얼굴 나오면 난 진짜 끝장이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초등학교 동창도 알아볼 거다. “어? 걔다.” 이러면서. Q. 인터뷰를 너무 과대평가 하는 거 아닌지? 그건 모르는 거다. 어느 매체에 올라가든 글은 확산된다. 인터넷 커뮤니티 글도 공유되지 않냐. 설령 그 커뮤니티 안에서 돌고 돈다고 해도, 공개된 글은 공유된다. 그 수가 많냐 적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게 발목을 안 잡으려면 좋은 글을 써야 하는 거고, 정신차리고 써야한다.  요즘 정치 뉴스를 봐라, 정치인들 공천하는데 10년 전에 SNS에 쓴 글 때문에 잘리지 않나. 과거 발언으로 잘리기도 하고. 이 인터뷰도 무시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름이랑 얼굴 안 내보내는 거다. (웃음). 그냥 무명이라고 하자. 이름없고, 얼굴없는 기자. Ⓒ한량 Q. 기자로서 요즘 가장 중대한 사안은 뭔가. 기자면 세상사에 궁금증이 기본 아닌가. 궁금해야 질문도 할 수 있는 거고. 그게 기본이면 난 기본이 안 됐다. (웃음). 일적으로는 출입처 사안이 가장 중요하다. 재미없는 사안들이다.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건, 요즘 기업들 주주총회 시즌이다. 관심있는 기업이 몇 군데 있어서 주총 결과를 보고 있다. 정부에서 벨류업 프로그램 내놓는다고 하는데, 실효성이 있을지도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누가 후보가 되는지와 어떤 정책을 내놓는지 등이다. 그런데 서로 비방하는 모습밖에 없어서 보기가 싫다. 기사 쓰는 사람은 신났을 거다. 제목 달기 좋은 말을 정치인들이 쏟아 내니까. 의대 증원도 중요한 이슈고. 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다가오는 내 생일이다. Q. 생일은 공개할 수 있는 정보인가? 그렇다. (웃음). 사실 제일 중요한 내용아닌가? 오늘 인터뷰에서? (웃음). 4월 16일, 내 생일이다. 그리고 세월호 10주기다. 벌써 10년이다. 시간이 빠르다. Q. 10년 전 생일에 뭘 했는지 기억하는지. 기억한다. 생일이라 신났었다. 학교도 안갔다. (웃음). 생일을 학교에서 보내기 싫었다.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그걸 기다리며 집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봤다. 채널을 무심코 넘기는데, 채널마다 배가 누워있었다. 원래 뉴스를 잘 안봤는데, 유독 그날은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예능이 재미없어서 그랬을 거다. 넷플릭스도 없고, 유튜브도 활성화되지 않던 때였다. 그래서 본 뉴스 자막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세월호, 진도 팽목항 앞 바다에서 침몰 중' 무슨 말인가 싶어 뉴스를 계속 봤다.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 앞선 전원 구조는 오보다. 배 안에 사람들이 있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대다수다.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제주도로 가다가 사고가 났다. 내 기억에 그날 모든 뉴스는 세월호로 도배됐다.  일면식도 없고, 가본 적도 없는 안산, 처음 들어본 단원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결국 친구들에게 연락해 약속을 취소했다.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Q.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모든 프로그램이 세월호 참사 고통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었다. 예능에서는 검은 옷에 노란 리본을 달며 무사 귀환을 바란다고 하기도 했고, 일부 예능은 정규 편성을 취소했었다. 생일의 연장선으로 답하면 “내가 즐거워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생일 약속도 취소 했었다. 친구들한테 들어보니 학교 교수님들도 수업 시간에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혹시나 ‘모르는 학생들이 있을까봐 알려준다’ 라면서. 또 질문처럼 예능 방송도 결방했었다. 당시 대학교 축제도 모두 취소하는 분위기였고, 기업들도 행사를 취소하거나, 규모를 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에도 참사가 많았지만, 세월호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건 당시 이런 사회 분위기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Q.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활동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참사 이후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 목소리에 내 힘을 보태고 싶었다.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 운동에 서명해 달라고 해서 해주고, 노란 리본 제작이랑 나눔 봉사 활동을 하고, 기부하기도 했다. 대학교에서도 노란 리본을 만들어서 나눠주기도 하고, 직접 서명을 받기도 했다. 힘 없는 대학생이지만, 없는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당시 세월호 진실규명 활동에 후원 요청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자발적이었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기부할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이었다. 진실규명 활동 후원 요청 글을 쓰고 학교 선/후배에게 돌렸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성과가 있었나? 큰 성과는 없었다. 여기서 성과란 실제 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줄어들고, 유족의 외침과 바람이 이루어졌는가다. 이루어졌다면 내 활동도 성과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슬픔이 줄지도, 유족의 외침과 바람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물론 그런 활동이라도 있었기에, 이정도까지 온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효과 자체는 미미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 자신에게는 변화가 있었다. 소설가를 접고, 기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Q. 기자가 돼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소설을 계속 쓰는데 상복이 없었다. 지원하는 문학상마다 떨어졌다. (웃음) 그때부터 “아, 내 글이 소설용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책 안 팔려서 전전긍긍하고, 이야기가 안 풀려 머리 뜯다가 탈모로 울 줄 알았는데, 그럴 수 조차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웃음) 그런 생각을 할 즈음, 세월호 활동이 겹쳤다. 앞서 말한 후원 요청 글을 쓴 것이다. 소설을 쓰면 매번 보여드리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때도 글을 보여드렸다. 피드백 좀 달라고. 그걸 보고 교수님이 “기자를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이유를 물으니, “넌 인간 감정 묘사로 설득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사실에 기반해 행간에 힘을 주고, 짧게 치고 가는 스타일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악필은 누구나 읽기 싫어 한다. 쓰는 사람도 읽기 싫어 한다. 명필이 읽기도 좋다. 명필을 쓸 줄 아는데, 왜 악필을 고집하냐. 손에 안 맞는 글 쓰지 말고, 손에 맞는 글을 써라.”라고 하셨다. Q. 갑자기 혼난 것 같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건가? 애정이야 있었겠지만, 난 당시 기분 나빴다. “내 글이 그정도로 쓰레기라고?”. 그 말 듣고 화장실 가서 울었다. (웃음). 난 정말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네가 쓰면 어차피 아무도 안 읽을 거니까 쓰지 말라는 거 아니냐. (웃음). 진짜 분해서 울었다. 입상이라도 했으면, 반박이라도 하지.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정말 분했다. 기자를 하라는 말과 함께, 세월호 글에도 피드백 주셨다. 글을 수정해서 선후배들에게 나눠줬다. 버려도 되는데, 읽어만 달라면서 줬다. 성과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 글을 보고 기부했다는 선후배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내 글이 성과를 낸 순간이었다. 내 글 때문인지, 내가 아는 사람이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바라던 일을 내 글로 할 수 있던 게 기뻤다. 그때부터 더 열심히 써서 나눠줬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기자에 대한 생각이 피어난 것 같다. 내 글로 정말, 세상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슬픔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내 글로 누군가가 슬퍼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불합리한 사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기자가 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정에 없던 사건과 변화였다.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내가 후원 요청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교수에게 찾아가서 피드백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교수가 기자를 하라고도 안 했을 거고. 무엇보다 내 글로 무언가 변화가 만들어지는 경험을 못 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내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고, 내가 예정했던 삶을 바꿨다. Q. 기자가 돼서 그때 뜻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지 쉽지 않다. (웃음). 원래 세상에 쉬운 건 없다. 쓰고 싶은 것만 쓰려면 블로거를 해야 한다. 기자는 지면에 쓴다. 지면은 언론사 공간이지, 내 공간이 아니다. 내가 쓰고 싶은 걸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도 수습 기자 때의 다짐은 늘 기억하고 있다. Q. 다짐이 뭐였는지? “모진 세상 연필깍이 삼아서, 뾰족한 글을 쓰겠다.”였다. 그렇게 글로 모진 부분을 하나씩 깍으며 둥글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연필은 늘 부러진다. 아마 계속 부러질거다. 그래도 부러지면 깎으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잘 못지 킬 때가 너무나도 많지만,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일이 다가오면, 그때 다짐을 더욱 기억하자고 생각한다. Q. 생일이어서 물어보지만, 세월호 이후 생일을 맞이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나? 몇 년간은 생일로 생각하지 않았다. 생일보다는 세월호가 더 컸다. 생일보다는 누군가의 기일이었다. 그런데, 사실 누군가의 생일은 항상 누군가의 기일이다. 2014년 4월 16일에 세상을 떠난 건, 세월호에 있던 사람만이 아니다. 거리에서, 병원에서, 가정에서 사고로, 병으로, 혹은 스스로 눈을 감는다. 우리가 모를 뿐이지, 지금도 누군가는 병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억울한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언론에 나오지 않는 사고가 많다. 그 안에 다친 사람과 장애를 입는 사람도 많다. 그 모든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식이 태어나는 날 부모는 세상을 가진 것 같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런 소중한 날이 죄책감으로 물들어선 안 된다. 유족도 그걸 바라진 않을 거다. 기뻐할 건 기뻐하고, 기억할 건 기억하면 된다. Q. 사람들이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한다. 어떻게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사고 자체만 기억해선 안 된다. 우리에게 참사가 있었다, 그 참사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304명이다, 구조 과정에서도 순직한 분들이 있다, 참사가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했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가 좌초됐다, 이건 기억이 아니다. 사건 기록이지.  이걸 기억이라고 하는 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머리에 있다고해서 기억이 되는 건 아니다. 참사로 기억해야 하는 건, 그때 느낀 감정이 무엇이었고, 왜 그런 감정이 들었고, 또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 10주기에는 10년 전 내가 세월호 참사에서 느낀 게 무엇이고, 어떤 다짐을 했었는지 돌아보고 그 감정과 다짐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세월호를 통해 기억해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Q. 마지막 질문으로 이번 생일은 뭘 할 건지 아직 계획은 없다. 파티를 하진 않을 거다. (웃음) 그래도 즐기면서 보낼 거다. 내 생일 4월 16일이 누군가에겐 슬픈 날이지만, 내게는 소중한 날이다. 내가 태어난 날이자, 지금의 내 모습이 있게 해 준 날이다. 아까 답변한 대로 기뻐할 건 기뻐해야 한다. 내 생일 4월 16일을 나는 슬퍼하지 않는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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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세월호가 어떻게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노란리본을 줍는게 고작이구나" 4월 16일이 또다시 찾아온다. 계절은 언제나 돌아오니 좋지만, 세월호는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매년 돌아오는 이 날과 그 날의 기억은 별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4월 16일은 몇 가지 감정과 장면을 떠올리게한다. 처음 감정은 분노였다. “뭐 저런 선장이 있나, 뭐 저런 언론이 있나, 뭐 이런 정부가 있나”. 그런 감정은 점점 수그러들었고, 이윽고는 무기력함으로 이어졌다. 끊임없이 방송되는 뉴스는 갇힌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끝내 입밖으로 내뱉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그 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모든 관계 없는 장면에서 세월호가 보였다. 과거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배우 봉태규가 추위에 떠는 장면이 나왔다. 물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그 물이 너무 차가워 벌벌 떠는 장면이었다. 본 방송이었는지, 재방송이었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재방송이었을 것이다. 연관도 없는 그 장면을 보고 “아 애들도 저렇게 추웠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추웠겠지, 떨었겠지, 무서워겠지. 물이 다리로 허리로 얼굴로 계속 차올랐을텐데, 물을 좋아하던 애도 있었을텐데 그 물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죽음이 다가오는 게 그렇게 눈으로 보였겠지, 밖으로 나간다면 누구한테 가장 먼저 가고 싶었을까, 뭐가 가장 먹고 싶었을까, 밖으로 나갔을 때 뭐가 혹은 누가 있기를 바랐을까, 얼마나 나가고 싶었을까.” 그런 생각들은 “나라면 저기서 뭘 할 수 있었을까?” 로 이어졌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로 끝났다. 실제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이 참 초라했다. 그 당시 읽은 어느 글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노란리본 나눔 부스에서 리본 나눔 봉사활동을 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서명 부탁한다는 요청에 내 이름과 싸인을 남겼다. 노란리본 나눔 봉사를 할 때다. 한 분이 내 리본을 받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그 분 손에는 내가 준 노란리본과 1회용 플라스틱 컵이 들려있었다. 그 분은 쓰레기통에 1회용 플라스틱 컵을 버렸다. 그리고 내가 준 노란리본도 함께 버렸다. 원해서 버렸는지, 모르고 버렸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모르고 버렸다고 생각한다. 버릴려고 했으면, 애초에 받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당시 노란리본은 지하철 역 앞에서 나눠주는 전단지 마냥 받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실수로 버린 걸 안 뒤로 다시 돌아와 “실수로 버렸어요. 다시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쓰레기통을 뒤져 노란리본을 찾고 내 주머니에 넣었다. 일부러 버렸든, 모르고 버렸든 노란리본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싫었다. 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노란리본은 끊어져 있었다. 끊어진 걸 버릴까 하다가, 접착제를 가져와 붙였다. 그 리본은 내 방 서랍에 꽤 오랜 기간 보관되어 있다. 누군가는 봉사활동을 하고, 싸인 한 걸 보고 그것마저도 잘한 것이다 말할지도 모른다. 당시 누군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겨우 이런 거구나 싶었다. 노란리본을 주고, 버려진 걸 줍고, 끊어진 걸 억지로 붙여서 보관하는 게 전부구나 싶었다. 이 생각에 나 자신이 참 초라했다.  이처럼 내게 세월호 참사는 분노로 시작해 무기력함과 초라함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내 기억도 조금 변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까요 기억(記憶)의 한자는 ‘記:기록할 기'에 ‘憶:생각할 억' 이다. 즉, 기억이란 기록하고 생각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월호를 [함께 기억]하며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이 질문의 힌트를 세월호 유족의 말에서 얻었다. “2016년 4월 세월호 생존학생과 참사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형제자매가 증언을 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때 참사로 오빠를 잃은 한 여학생이 소극장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저희 오빠가 죽은 거잖아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용기를 내주세요."”* 세월호 참사로 오빠를 잃은 여학생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 10주기에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록하면서 기억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잉크가 낫다. 세월이 지나면 기억은 흐려지지만, 남아 있는 기록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계속 상기시켜 줄 것이다. 물론 기록이 행동을 담보하지 않는다. 항상 옳은 행동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옳음이 누군가에겐 그름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건 다르다. 무엇이 옳은지 안다면, 그것이 최소 내 행동의 잣대가 될 것이다. 그 잣대에 맞는 행동이 쌓인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에게 있어 옳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유족의 바람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게될 것이다. 옳은 일의 표현 방식에는 맞고, 틀리고가 없다. 나는 쓰기를 선택했다. 쓰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어쩌면 내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니까 더욱 그런 것 같다. 내 생각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사회가 됐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보자고 말하고 싶다. 써보자. 잘 쓸 필요 없다. 짧아도 된다. 글의 길고 짧음이 생각의 길고 짧음을 말할 수 없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가, 생각의 좋음과 나쁨을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함께 기억하며, 자신들을 돌아보면 좋겠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보면 좋겠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록하고, 행동으로 옮겨보자고 다짐하는 계기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난다/ 2022) p.13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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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 해제? 천국을 믿는 사람에게 노아의 방주를 맡겨선 안 된다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를 발표했다. 53년 만에 최대폭 해제다. 정부는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그린벨트를 대거 해제한 뒤, 기업이 많이 입주할 수 있도록 토지 규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마련 중" 이라고 말했다. 전국을 대상으로 해제를 밝힌 건 1971년 그린벨트 도입 이후 처음이다. 해제 면적은 여의도 면적(2.9㎢)의 837배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린벨트 해제 발표 후 입장은 엇갈린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역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 이라며 긍정의 뜻을 내비쳤고, 일부 지역 국민의힘 예비 후보는 “76만 평 그린벨트틀 해제해 주거·문화·상업시설과 기업 연구개발(R&D)시설 등을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지방뿐만 아니라 “수도권도 규제완화가 필요" 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판도 있다. 한겨레는 “대놓고 선거운동" 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그린벨트를 선거운동에 활용한다고 비판했고, 경향신문 역시 “1등급 그린벨트 풀어 ‘표심 잡기'” 한다며, “총선 급하다고 막 던질 정책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그린벨트 해제는 신중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를 원천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은 내비치지 않았다. 합리적인 개발 로드맵이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해제하는 건 자칫 투기만 일으킨다는 지적이 더 강했다. 어느정도 그리벨트 해제에 대한 공감대가 있는 걸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과거에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한 바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기도지사 시절, “그린벨트 해지를 통해 택지 공급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처음에는 “그린벨트 해제가 전국에 부동산 광풍을 불러올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뜻을 돌린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재임시절 그린벨트 해제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물론, 논의 끝에 미래세대를 위해 그린벨트를 남겨야 한다며 입장을 백지화 했었다. 성장이냐 환경이냐의 이슈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은 지역의 발전과 개발을 위해 그린벨트 지역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주택공급 등 합리적 개발 로드맵이 있다면 그린벨트 해제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애초 지역 주민들도 이를 원하고 있다.  국민의 눈치를 봐야하고, 지역민에게 발전을 말해야 하는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해제하라는 지역민의 요구에 무작정 “지켜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표를 얻을 수 있다면, 겨울철 귤 까먹 듯 까먹고 싶은 이슈다. 그렇게 그린벨트는 과거보다 줄었다. 성장은 만능 열쇠처럼 느껴진다. 성장은 질병을 치료했고, 정복했으며, 빈곤을 줄였다. 그럴수록 성장은 모든 문제의 해법처럼 여겨졌고, 침범해서는 안 될 성역이 됐다. 하지만 문제도 만들었다. 성장은 항상 자원을 요구했고, 성장할 수록 더 많은 자원을 요구했다. 앞선 성장을 지키기 위해선, 더 많은 성장이 필요했다. 이로인해 자원 고갈과 기후위기 등 환경과 사회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고,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전 세계가 지속가능발전을 목표로 내걸고, 전 세계가 협업해 탄소중립과 지속가능성장을 외치는 이유다. 이는 곧 성장을 위해 환경을 무분별하게 파괴해선 안 되고, 현대 사람들의 성장을 위해 미래 세대의 자원을 끌어와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개발과 성장 역시 환경을 지키고, 환경을 지키기 위한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차원에서 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자원이다. 어쩌면 미래세대 조차 쓰지 못하게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미래세대의 삶은 현재의 삶에 가려져 있고, 정치와 경제 의제로 시급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레타 툰베리의 바람처럼 정치와 경제인들은 환경 보호를 위해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여전히 성장은 건제하게, 성역을 지키며 다른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우라나라 그린벨트도 그랬다. 정치인과 경제인들은 그린벨트를 풀어 탄소중립 단지로 개발하면, 탄소중립도 이룰 수 있고, 성장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성장하기 위해선 그린벨트가 필요하고, 그린벨트를 풀면 환경도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린벨트 이슈는 성장을 위한 환경파괴와 환경파괴로 만든 성장으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로부터 환경을 보호하는 이슈다. 환경은 보호해야 한다. 특히, 성장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성장만능주의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이를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나라 그린벨트 발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장을 위해 때론 성장 억제를 위해 그린벨트가 어떻게 해제됐는지, 그 결과 성장으로 문제가 해결됐는지, 왜 사람들이 지역 개발을 원하는지, 왜 기후정치가 필요한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시작은 1971년 7월, 박정희 정부로 시작한다. 1971년 그린벨트(Green belt) 지정 ‘과도한 도시화와 성장 관리'의 성역 우리나라 첫 그린벨트는 1971년 7월에 지정됐다. 당시 정부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수 많은 인구가 농촌에서 도시로 몰리는 걸 목격했다. 1960년 245만 명이던 서울인구가, 1970년 553만 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인구가 계속 도시로 몰리면, 과거 선진국이 산업화 시대에 경험했던 환경 위기를 겪을 것을 우려해, 그린벨트를 지정했다. “인구를 담는 그릇의 시가지라도 커지지 않게 그린벨트로 졸라맨 것이다.”1) 그린벨트는 이후 계속 지정됐고, 정부는 철저히 관리했다. “개발제한구역 구상과 운영 관리까지 대통령이 개입했고, 모든 상황은 대통령 승인을 받고 이루어져야 했다. 이렇게 정해진 내용은 그 결함과 이해당사자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견과 불만 표출이 금기시 됐다.”2) 그린벨트 관리 부실 공무원 2,500 명을 징계하기도 했다. 독재정권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처럼 그린벨트는 “대도시성장관리와 자연환경 보전을 위하여 말 그대로 개발, 즉 ‘환경훼손 및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사업 활동 및 사람들의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됐다.”3) 과도한 도시화와 성장으로부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물론, 환경 보호 이슈만 있던 건 아니었다. 일자리와 주택, 도시서비스 인프라 부족,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과도하게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함이 더 컸다. 인구집중을 위한 도시관리 방안의 측면에서 환경 보전 보다는, 대도시 성장 관리가 우선이었다. 1990년 문민정부, 그린벨트를 탄력있는 관리지역으로 만들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린벨트는 침범해서는 안 되는 성역으로 규정됐다. 물론 민주적이지 않고, 독재와 묵살로 이룩한 성역이었다. 성역은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로 그 위상을 잃는다, 1990년대 문민정부(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 그린벨트에 쌓여온 불만이 터져나왔다. 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지역 개발 저하였다. 대도시 주변 지역에 밀집해 개발 압력은 강한데 비해, 그린벨트로 묶여 있으니 개발은 안 되고, 땅값은 싸고, 재산 축적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린벨트 소유자 70%가 개인이라는 점에서, 이는 재산권 침해였고, 개발제한이라는 점에서 도시간 격차를 만들어내는 요소였다. 재산 증식도 안 되고, 개발 또한 되지 않는 곳에 머물 사람은 없었다. 지역 탈출이 증가했고, 이는 지역 발전 저하를 더욱 악화시켰다.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자 급기야 그린벨트 제도개선이 핵심 대선공약으로 제시됐다. 제 2기 문민정부는 곧장 공약실천에 나서 중소도시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그 결과 그린벨트가 “누려왔던 성역으로서의 위상은 한 차례의 대대적인 조정을 거친 뒤, 사실상 사라졌다”. ”지켜야 할 성역이 아닌, 중요한 공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손을 댈 수 있는 탄력성 있는 관리지역이 된 것이다"2) 환경의 성역을 개발과 성장이 꿰찬 것이다. 국민의 정부, 그린벨트 7곳 전면 해제 IMF 외환위기 극복 일환 문민정부에서 성역의 위상이 사라진 그린벨트는 탄력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땅이됐고, 김대중 정부는 “가장 탄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정치 국민회의 총재 시절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해 “우리나라는 남한만 해도 60%가 산이라 더 이상 그린벨트가 필요한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라며 “이 평가에 따라 필요 없는 지역은 해제하고, 필요한 지역은 그린벨트로 묶고 국가가 사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후 1999년 7월 22일, 그린벨트 7곳이 전면 해제됐다. 물론 그 배경에는 IMF외환위기로 인한 경제 위기가 있었다. IMF 외환위기로 전례없던 성장이 꺾였던 김대중 정부는 위기를 돌파해야 했다. 어떻게든 위기를 탈출하려고 했던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와 서민주거안정을 목적으로 그린벨트를 전면해제하기에 이른다. 그린벨트 지역은 토지 가격이 저렴했기에, 공공임대주택을 싸게 건설할 수 있었고, 해외 투자 유치를 이룰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지역 주민들의 민원도 끊이지 않고 있었다. 지역민의 불만 표출과 IMF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그린벨트 지역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고 4,5등급지를 중심으로 '조정가능지역'으로 설정하고, 전면해제와 부분해제로 구분해 해제했다. 경제 발전 요구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그린벨트가 해제됐다. 노무현 정부, 성장을 막기 위해 그린벨트 해제 김대중 정부의 그린벨트 해제는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노무현 정부는 과도한 집 값 상승을 막기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했다는 점이다. 과도하게 상승하는 수도권 집 값을 잡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기조를 취한다.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선 토지 값이 싸야했고, 그 이유로 최후의 보루인 그린벨트가 선택 받았다. 하지만 그렇게해도 집 값은 꺽이지 않고 되려 상승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당시 서울의 집 값은 94% 상승했다. 사실상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공급 증가 정책이 실패했다는 의미다. 이는 주택이 주거보단 재산 증식의 목적과 투기 목적이었다는 걸 방증한다. 결과야 어쨌든, 성장을 잡기 위해 그린벨트가 희생된 건 변함없다.  노무현 정부는 이후 과도한 수도권 집중 해소, 지역균형발전, 지방분권을 위해 수도권 이전과 공기업의 지방 이전을 기조로 내세웠지만, 실패했다. 윤석열 정부, 또다시 그린벨트 전면 해재? 노무현 정부 이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는 크게 그린벨트 해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진행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앞선 정부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았다. 오히려 보호하자는 기조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개발 기조로 바꾸려 하고 있다. 개발을 위해 환경이 불필요하다는 논리다. 윤석열 정부의 그린벨트 발표 후 여권 관계자는 “지방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는데도 50여년 전 기준으로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는 결국 지역 발전에 해가 된다” 고 말했다. 이 말은 틀렸다. 그린벨트를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건, 박정희 정부 때 뿐이었고, 이후에는 크든 작든 계속 훼손했고 개발했다.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는 없어진지 오래고, 언제든 까먹을 수 있다는 논리가 지배되고 있다. 까먹었던 기조역시, 전례없던 IMF 외환위기 극복과 지방균등발전과 지방 분권을 위해서였다. 해당 정부들은 환경영향평가 1・2등급을 받은 곳은 보호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 평가마저 간소화시키고,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 환경이 개발에 방해가 되고, 지역 격차를 부추긴다는 논리다. 이처럼  “현세대의 경제적 효율성에 편중되거나 당해 국가 또는 사회의 계층 간, 지역 간 격차가 커지면 자연환경은 비효율로 치부”3) 된다. 물론 그린벨트로 인해 지역 개발이 더뎠고, 지역 격차가 발생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가 사실이었다면 과거 지역이 개발됐을 때, 지역 격차가 줄어들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 집중은 더욱 강해졌고, 견고해졌다. 이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개발이, 지역격차 해소 해법이 아니라는 걸 방증한다. 이미 그것이 해법이 아님에도, 계속 추구하는 건 그린벨트의 존재가 개발과 성장에 방해되고 비효율적이니,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논리 추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효율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개발하고, 생산해야 한다는 논리로, 지구는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 한계와 더불어 양극화, 불평등, 기후위기가 발생했고 이를 더이상 두고보면 안 된다는 기저에서 지속가능발전을 말하고, 그 실행 방법으로 재생에너지 사용과 탄소중립, RE100 등등 이슈가 나오고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직면하고, 이행하기로 약속한 이슈들이다. 탄소중립을 말하면서, 탄소 흡수원을 줄이자는 건 어불성설이다.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극복은 환경을 파괴하면서 이룰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가진 자연 환경을 보호하며,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린벨트를 까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보호해야 하는 논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자연의 무언가를 남용한다면 그것은 결코 가게 진열장을 도로 채우는 소비재들이 그래 보이듯이 저절로 다시 보충되지 않는다. 자연은 결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4) 기후 정치가 필요한 이유, 천국을 믿는 사람에게 노아의 방주를 맡겨선 안 된다 “그린벨트를 풀어 ‘탄소중립・미래 차 부품 단지 육성"의 기사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기조 전제는 개발이 되고 성장하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속아선 안 된다. 기술 개발과 성장은 만능이 아니다. 성장과 개발 만능주의 자들은 “오존층이 줄어 피부 암의 위험이 높아진다면 더 나은 자외선 차단제와 더 나은 암 치료제를 발명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자외선 차단제 공장과 암 센터의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5)고 말한다. 우리의 논의는 더 성능 좋은 자외선 차단제가 아니라, 오존의 구멍을 어떻게 틀어막을 것인지가 되어야 한다.  과도하고 무분별한 성장만능주의가 지금의 문제를 만들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 줄거라고 말했지만, 기술은 더 혹독한 환경에서 더 편안한 삶을 제공해 줬을 뿐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를 통해 성장만능주의를 극복해야 하며, 그 이유로 ‘환경' 이슈를 들었다. 반면, 그 이슈를 이끌어 갈 정치, 경제계 인사들은 미래의 과학자들이 지구를 구원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며, 도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박을 하는 이유는 “그 도박에 거는 미래가 본인들 개인의 미래가 아니라고 생각”5)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거대한 홍수가 왔을 때, 수십억 명이 익사한다고 해도 과학자들이 최상위권인 자신들을 위한 노아의 방주를 만들 것이라 믿고 있다며 경고한다. 더 무서운 경고는 "과도하게 많은 유권자들이 이를 믿는다"5)는 것이다. 그린벨트 구역의 소유주 70%가 개인이고, 일반 국민 10명 중 6명은 필요시 해제해 활용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 그린벨트 지정으로 인해 지역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린벨트 해제로 성장을 만들어주겠다는 정치인들의 공약이 자칫 성장이 천국을 만들어 줄 거라고 들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는 틀린말이고, 틀린 생각이다. 그린벨트를 풀어 성장을 도모하고, 탄소중립을 이루고, 잘 살아가자는 말은, 홍수의 발생을 막지말고, 홍수에서도 살 수 있는 노아의 방주를 만들자는 말과 같다. “천국을 믿는 사람들에게 핵무기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최첨단 방주를 믿는 사람들에게 지구 생태계를 맡겨서는 안 된다.”5) 그린벨트를 풀어서 지역 개발이 이루어지고, 탄소중립이 이루어졌다면 이미 과거에 달성됐어야 한다. 지금은 홍수가 나지 않도록, 땅을 정비하고, 나무를 심고, 생태계를 보호해야 할 때이지, 그 나무를 잘라서 대홍수를 가로지를 노아의 방주를 만들때가 아니다. 그린벨트 이슈를 보고, 착잡했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지 않을 미래를 위해, 현재의 이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성장과 환경 이슈 중에서 십중 팔구는 경제성장을 선호한다."5) 이번 4월 국회의원 선거는 부디 경제성장이 아니라, 기후를 고민하는 기후정치가 됐으면 좋겠다. 기후정치를 한다는 건, 결국 성장만능주의가 절대로 천국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성장만능주의로부터 환경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성장만능주의에게 환경을 더는 내줘선 안 된다. 4월에 열릴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성장을 위해 환경을 이용하는 게 누구인지, 성장만으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서 걸러내고, 자신들이 살아가지 않을 세대를 위해 정말로 필요한 환경 정책을 내는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 미래를 위한 정치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성장만능주의가 만들 천국을 믿는 사람에게, 노아의 방주를 맡겨선 안 된다. 1) ⟪개발제한구역과 광역도시계획 : ‘2020년 수도권 광역도시계획'을 중심으로⟫ (박재길/ 월간 국토 21년 7월 호/ 국토연구원/ 2021) 2) ⟪개발제한구역의 발자취, 그 사회구조적 맥락⟫ (최병선/ 월간 국토 21년 7월 호/ 국토연구원/ 2021) 3) ⟪자연환경 보전과 개발제한구역⟫ (이창수/ 월간 국토 21년 7월호/ 국토연구원/ 2021) 4)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요한 록스트림, 마티아스 클룸/ 에코리브르/ 2017) p.53 5)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21) p.38, 296,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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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저격수' 박용진이, 고작 하위 10%?
하위 10%로 평가 받은 박용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 내부 평가에서 하위 10%로 평가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하위 10% 의원의 경우 경선 득표에서 30%를 감산한다는 방침이다. 사실상 박용진 의원의 정치인생이 끝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용진 의원은 패널티를 받아들이고도 탈당하지 않고,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는 “제 정치 평가는 채점표를 가진 몇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당원과 국민들이 평가하는 것.” 이라며 당원들의 평가를 받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채점표를 공개했고, 박용진 의원은 당직을 맡지않고, 포상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점수에서 0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박용진 의원은 수상경력이 있다며, 채점 기준을 공개하라고 비판했다. 당내 평가는 당원들이 하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도 “당원 분들이 평가해 주시길" 요청하고 있다. 박용진 의원의 평가에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는 건, 평가가 공정했는지 여부와 단순히 이재명 대표와 척을 지었다는 이유로 박하게 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때문에 박용진의 정치 이력이 하위 10%라는 걸 누가 납득하겠냐는 비판과 “이재명 사당화” 라는 비판이 계속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의 의원 평가가 공정했는지, 불공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내의 복잡한 관계를 일일이 풀어가며 평가를 할 수는 없다. 공개된 평가 항목에 대해 박용진 의원이 모자랐다면, 그에 맞는 평가를 받은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바라보고 싶다.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정치 의제도 함께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의 퇴장은 그 의제가 더이상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 때, 혹은 해결되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해당 의원이 그 의제를 갖고, 법안을 발의할 만한 능력이 없다면 퇴장해야 한다. 그런 의제도 없고, 법안 발의도 하지 않는 의원들은 애초 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현재 박용진 의원의 퇴장은 시기 적절한 것일까? 박용진 의원의 의제가 과연 우리나라에 필요 없는 의제가 됐을까? 그의 의제가 우리사회에서 하위 10%에 해당할 의제일까? 재벌 저격수, 박용진 박용진 의원은 현역 국회의원 중 마지막 남은 '재벌 저격수'라고 불린다.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이는 이재용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렸다. 해당 법안이 이재용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이유는, 법안이 통과되게 되면 삼성전자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삼성일가는 삼성전자 지배력과 영향력이 약해진다. 이재용 회장 -> 삼성물산 -> 삼성생명-> 삼성전자로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때문이다.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주식 평가 기준을 취득 원가가 아닌, 시가(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로 변경하자는 내용이다. 기존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특정 회사의 주식을 3%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주식 가치 산정을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평가하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 취득원가를 시가로 바꾸자는 것이다. 해당 법안으로 영향을 받는 게,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뿐이라 해당 법안이 ‘삼성생명법'으로 불렸다. 삼성생명, 삼성화재의 삼성저자 주식 비율 및 주식 가치 (자체 제작) 삼성생명은 1980년 대에 삼성전자 지분을 약 5,400억 원에 매수하고, 삼성화재는 1979년에 약 770억 원에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득원가 당시로 적용받기 때문에, 당시 삼성전자와 현재 삼성전자 주가가 약 80배 이상 차이가 남에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여전히 0.2%와 0.1%로만 평가받고 있다. 3% 이상이 법에서 규정하기에 지분 매각을 할 필요가 없다. 주식 가치를 시가로 평가받는 걸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게 조금 의아하다. 주식이 시가로 거래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초기 멤버에게 주는 스톡옵션도 아닌데 말이다. 유독 삼성만 특혜를 받는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박용진 의원은 법안 발의 이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약 20조~25조 이상씩 더 보유함으로써 이재용 총수 일가가 고객의 돈을 이용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는, 말도 안 되는 특혜를 받았다. 법을 무시하는 재벌 특혜를 바로잡아야 한다” 라며 “나는 재벌 총수들의 편법·탈법·부당한 기업 지배에 집중해왔었다.” 라고 말했다. 법안이 통과되게 되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주식 가치가 14.1%가 되고, 삼성화재는 8.6%가 된다. 특정 회사 주식 3% 이상을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현행법으로 인해 삼성생명은 약 11%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고, 삼성화재는 약 6%의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전자 지배구조도. 기업명 하단 숫자는 기업 시가 총액, %는 보유 주식 비율 (자체 제작) 매각이 이루어지게 되면, 기존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지배구조도 변하게 된다. 이재용 회장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던 지배구조 순환출자 고리가 끊기게 된다. 지배구조 고리가 끊기게 되면,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 경영권과 지배력도 약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보험업법 개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만약 박용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동일한 법안을 밀어 붙일 의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탈당 없이 경선에 참여한다고 밝힌만큼, 경선에서 탈락하면 무소속으로도 출마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해당 법안은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의 경영권 문제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도록 주식 시장에서 언급되어 온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소액 주주 피해 문제, 환경과 사회 이슈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의 경영권 상속 문제와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해당 이슈들은 우리나라 주식 시장 가치가 평가 절하된 원인으로 지목받던 이슈다. 보험업법 개정의 핵심은 기업지배구조 개편 박용진 의원이 재벌 저격수라고 불리며, 20대 국회와 21대 국회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을 밀어 붙인 핵심은 ‘기업지배구조 개편'이다. 기업지배구조는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시스템, 이사회의 역할과 기능, 경영자와 주주와의 관계 등을 총칭한다. 다시 말해 경영진, 소액주주, 채권자, 종업원 등 기업 이해관계자들의 역할관계를 총칭하는 말로 기업을 다스리는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주식회사는 주주 의결을 거쳐 이사선임,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의결권은 보유 주식 수에 비례한다. 1주에 1표를 갖는다. 즉, 주식 수를 많이 가지고 있을 수록 더 많은 의결권을 갖게 된다. 이재용 회장이 0.7%의 주식을 가지고 삼성전자를 실효지배하고, CEO로 선임될 수 있던 것은 지배구조에 있다. 삼성전자의 주주인 삼성물산의 대주주가 되고, 그 삼성물산으로 삼성생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삼성생명으로 삼성전자과 삼성화재에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기업 창업자들은 이 지배력을 공공히 하는 결정들을 했다. 그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쪼개고, 신규 상장하고, 신규 상장사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지배력을 공공히 했다. 그 과정에서 재산뿐만 아니라, 경영권 상속까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건, 소액주주들이다. 기업 쪼개기와 상장, 그로인한 경영일가의 지배력 강화가 우리나라 주식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해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약 40%로 평가 절하 됐다고 평가 받기도 하며, 전문가들 역시 기업지배구조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1위로 뽑고 있다. 주주환원 대신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강화에 돈을 쓰기 때문에 해외 투자자들에게 매력이 떨어지고, 가격도 제 값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장악에는 장점도 있었다. CEO의 경영 평가가 1년에 한 번 씩 이루어지고, 그 경영 평가가 주가 상승으로만 평가된다면 CEO는 어떻게든 단기 주식 가치 상승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재선임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주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면, CEO는 조금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당장에는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결정들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기업지배구조는 최고경영자들로 하여금 주주 눈치를 보는 것을 원척적으로 차단하고, “단기적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경우 그 직을 잃는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신 성과들을 일구어낸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많은 부작용들 가져오긴 했지만, '재벌'이라 불리는 한국 고유의 기업지배구조 체제가 경영자들이 단기성과주의를 극복하고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가능하게 한 부분이 있다”* 견제 없는 기업지배구조, 그대로 둬선 안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고려대학교 김우찬 교수는 “모든 기업은 경쟁하고, 견제를 받아야 한다"라며 “"그런데 유독 한국 경영자 시장에서는 창업자의 자손이 아버지,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경쟁 없이 그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재벌 중심 지배구조에서는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2년 5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약 1년 간 대기업 소속 309개 상장회사 이사회 안건 7,837건 중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55건 뿐이다.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의사회에서 No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No를 외칠 줄 모르는 거수기 이사회인 셈이다. 이사회가 주주를 대변하지 하고, 대주주만 대변하는 셈이다. 한국 사회 대기업 총수 일가는 지배권 강화를 위해 주주환원을 줄여 총수 일가 지배권 강화에 쓰고, 주주 가치와 총수 가치가 충동할 때 이사회는 총수 가치에 손을 들어줬다.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약 1,400만 명의 국내 개인 주식 투자자와 약 638만 명의 삼성전자 주식 투자자들이다.  재벌 총수가 최고경영권을 갖고,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안건에서도 가장 많은 의결권을 갖고, 이사회가 그런 총수와 최고경영자의 눈치를 본다면 소액주주 가치는 계속 훼손되고, 기업 내부에서 벌어지는 환경과 사회 이슈 역시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재벌 총수 일가 중심 기업지배구조가 개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주주도 고려하지 않고, 대주주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상황에선 우리 사회가 직면한 환경, 사회 이슈에 대응할 수 없다. 박용진의 재벌 개혁은 결국, 소액주주, 환경, 사회적 이슈까지 영향을 미친다 ESG(환경・사회・거버넌스)**가 몇 년 전부터 큰 화두다. 몇 년새 언론의 태도는 찬양에서 저주로 바뀐듯 하지만, 그 핵심은 기업이 속한 사회와 환경이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기업 조차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환경과 사회를 고려한 의사결정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가 환경과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을 탈피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최고경영자가 환경과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경영 방침을 지속할 때 이사회와 주주들이 이를 견제하는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권한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주주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아니라, 환경과 사회까지 동일 테이블에 놓고 의사결정 하라는 게 ESG의 핵심이다. 기업의 목적함수를 주주에서 환경과 사회로 확장하라는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변화를 추구하는 추세다. 하지만 “전 세계 선진국들이 주주우선주의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지역사회와 국가, 심지어 병든 지구를 고치는 책임까지 강제적으로 기업에 맡기고, 기업 또한 이를 생존의 이슈로 받아들여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소위 ESG 논의가 한창인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이 모든 것들이 마땅히 환영할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쓰리고 부럽기만 하다."*  "주주만이 기업의 주인은 아니라는 흐름이 밀려오는데, 한국에선 아직 주주조차 기업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은 커녕 아직도 기업을 제멋대로 쪼개고 붙이며 사익 편취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속수무책인 후진 기업지배구조로 결국 고통을 받는 것은 자본시장에 성실히 참여하는 주주들일 것이다. 이제 이런 피해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아야 한다. 주주들이 당당히 목소리를 높이고 대접받기를 응원한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박용진의 의제는 여전히 필요하다 국내 재벌 개혁 이슈는 곧 기업지배구조 이슈이고, 이는 곧 기업의 소액주주 가치와 환경, 사회 이슈까지 연결된다. 그 점에서 박용진 의원의 재벌 개혁 의제는 여전히 필요하다.  환경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선 기업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업이 자신들의 문제를 더욱 깊이 돌아보고, 기업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에 까지 시선을 돌리게 해야 한다. 만약 기업의 시선이 대주주에게만 향해있다면, 기업의 문제는 대주주가 시선을 둘 때만 고려될 것이다. 그 시선은 결코 주변으로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대주주 스스로 각성해서 돌아보길 바라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이를 위해 한 곳에 쏠린 힘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기업지배구조개편이다. 앞서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정치 의제도 함께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치인의 퇴장은 그 의제가 해결이 됐거나, 해당 정치인이 그 의제를 다룰 능력이 없을 때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박용진의 의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국내 주식 투자자 수가 건제하고, 기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후위기와 사회이슈가 증가하는 이상 그의 의제는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그 핵심이 기업지배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그처럼 이 의제에 매달린 사람은 없다. 박용진 의원은 해당 의제에 6년을 매달렸다. 아직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당내 평가를 통해 박용진 의원이 하위 10%라고 평가했지만, 그가 2선을 하며 제시한 정치 의제와 경력을 봤을 때 나는 그가 상위 10%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기업지배구조 관련 의제는 계속 주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도 아니고, 박용진 의원 지역구인 강북구 사람도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그의 의제와 법안이 필요하다. *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이관휘/ 21세기북스/ 2022) p.51, 52, 172, 249, 250 ** 언론에서는 ESG를 ‘환경・사회・지배구조’로 해석하지만, 개인적으로 G를 지배구조로만 해석하면 그 의미를 축소시킨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주인이 누구냐로만 해석하기 때문이다. G의 본질은 기업의 주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기업이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어떤 의사결정을 하고, 환경(E)와 사회(S)에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결정을 바로잡고, 견제할 수 있는 등의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느냐이다. 때문에 그 의미를 포괄할 수 있는 거버넌스 자체로 작성했다.
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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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공무원 준비생에게 이준석 대표 공약에 대해 묻다
제목 : 소방 공무원 준비생에게 이준석 대표 공약에 대해 묻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연일 논쟁적이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에 이어, 소방・경찰・해양경찰・교정직 공무원의 경우, 군복무를 해야지만 지원할 수 있게 한다는 공약이다. 적용은 2030년부터이며, 이를 통해 감소하는 군복무 인원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공약을 발표하며, “이제 더 많은 여성이 국방의 의무를 담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자 합니다.” 라고 말했다. 또한, “노량진에서 수험생활 하면서 몇 문제 더 맞고, 덜 맞고로 우열을 가리는 경쟁보다,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자발적으로 한 진정성 있는 사람들로 제한해 경쟁을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경쟁일 것이다.”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해당 방안이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 병역자원 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선 병역제도 개혁이 필요하며 (중략)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 공약 취지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의문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공감되는 부분은 문제 몇 개 더 맞고, 틀리고로 우열을 가린다는 부분이었고, 의문이 드는 부분은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자발적으로 한 진정성 있는 사람들로 제한해 경쟁하게 한다.”는 부분이었다. 평소에도 현행 공무원 시험 과목이 직무 수행에 얼마나 필요한지 의문이 있었다. 때문에 자칫 직무에 필요 없는 시험을 위한 성적으로 사람을 뽑는게 적합한 건가 의문이 들었다. 그 점에서 시험 점수 경쟁이 적합하지 않다는 부분에서는 공감했다. 반면, 군복무를 해야지만 소방・경찰・해양경찰・교정 공무원에 지원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의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자발적으로 한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는 부분은 더욱 그랬다. 나 역시 군복무를 했지만, 자발적으로 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군복무 자발성과 소방, 경찰, 해양경찰, 교정직 근무와의 연관성에 의문이 들었다. 군복무가 해당 직무 근무 능력을 보장한다는 근거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이준석 대표가 활발한 토론을 바랐다. 까짓거 해주겠다고 생각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해당 직무 공무원 준비생들의 생각이 너무 궁금했다. 설날 긴 연휴를 맞아, 노량진으로 가서 공시생 몇 명을 인터뷰 했다. 설 연휴를 노량진에서 보냈다. 공부에 방해될까봐 걱정 했는데, 괜찮다며 인터뷰에 참여해 주고, 외부 게재를 허락해 소방 공무원 준비생 분께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린다. 꼭 합격하셨으면 좋겠다. 인터뷰 내용이다. — Q.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노량진 공시생이다. 현재 소방 공무원 준비 중이다. 원서 접수가 얼마 안 남았다. 합격하고 싶다. Q. 소방공무원을 선택한 이유는 중학생 때 집에 불이 났었다. 그 불로 집이 까맣게 탔었다. 당시 우리 가족 전부 집에 있었다. 새벽에 난 불이라 대피가 어려웠다. 죽는 줄 알았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기침이 계속 났고, 눈이 따가웠다. 뜨거운 화마가 주는 공포에 몸이 얼어서 움직이지 못했다. 공포에 질려본 사람만이, 그 공포가 뭔지 알 수 있다. 정말 무서웠다. 그때 우리를 구하러 와준 게 소방관 분들이었다. 소방관분들이 들어오시는 걸 본 것까지 기억하고 그 뒤론 기억이 안난다. 아마 기절했던 것 같다. 일어나니 병원이었다. 소방관분들이 나를 살려준 거다. 조금만 늦었어도, 난 없을 거다. 그렇게 누군가의 생명을 살린다는 것이 참 멋지고 고귀한 거라는 걸 체험하고 나니,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했었다. 이젠 이루고 싶다. Q. 큰 일을 겪으셨다. 나였다면 불이 무서웠을 것 같은데, 소방관이 됐을 때 마주할 화마가 무섭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물론 무섭다. 한동안은 작은 불도 무서워했다. 성냥 불, 라이터 불 처럼 작은 불씨도 무서웠다. 그때문에 아버지가 담배를 끊으셨다. 라이터 불과 담배 불이 자식 트라우마 심는 것 같다고. 솔직히 내가 그 화마 앞에서 다시 얼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도 한다. 하지만, 이건 모든 소방관들이 다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방관이라고 불이 무섭지 않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섭지만, 화마 안에 사람이 있고, 그 속에서 느끼는 공포가 무엇인지 알기에 불에 뛰어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 무서운 불과 마주하고 싸우기에 소방관이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때 느낀 공포를 알기에, 그 공포에서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또 조금이라도 빨리,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훈련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격투기 선수들이 항상 훈련을 하듯, 소방관들도 훈련을 한다. 영어로 소방관을 Fire fighter라고 하지 않나. 불과 싸우는 사람들. 이길지 질지 모르지만, 항상 불에 맞서는 사람들. 정말 응원하고 싶다. Q. 말만 들으면 이미 소방관인 것 같다. (웃음)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다. 공부 안 하고 딴짓을 많이 해서 그렇다. (웃음) 사실 뒷 부분에 말한 건 예전에 현직 소방관에게 들은 말이다. 학교 다닐 때 현직에 있는 분들을 학교에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 게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이다.  당시 내가 “불이 무섭진 않으신가요?” 라는 질문을 했었는데, “소방관도 불이 무섭습니다.” 라고 하셨다. 또 가족이 있기에 더욱 무섭다고 하셨다. 소방관인 가장은 화재 현장의 사람도 구해야 하지만, 가정도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소방관의 무게를 말씀하려고 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화재 현장에서 하고 있을 순 없다. 현장에선 빠르게 판단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하셨다. 찰나의 고민의 순간에 나와 시민, 내 동료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빠른 판단을 하기 위해, 훈련을 계속한다고 말씀하셨다. 혹여나 소방관을 꿈꾸시는 분들이 있다면, 생각 이상으로 혹독하고, 무서운 일이라고 조언해주셨다. 또 그 만큼 값지고, 가치 있다고 하셨다. Q. 소방관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다른 것 같아서 묻고 싶다. 소방관이 되는데 필요한 자격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마음가짐이나, 능력이나 그런 것들. 현직이 아니라서 모르겠다. 현직 소방관에게 묻는 게 확실할 것 같다. (웃음). 뭐 사실 소방관도 어째든 공무원이니, 짤리지 않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를 거다. 근데 그걸 다 재단할 수 없으니, 나 같은 수험생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 생각으로 판단할 수 없으니, 시험 성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시험이 다 그렇지 않나. 하지만 소방관이라면 어느 정도의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째든 목숨 내놓고 하고, 죄책감도 느끼는 직업이니까. Q. 목숨을 내놓고 사람을 살리는데, 죄책감을 느낀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지금도 종종 보는 웹툰이 있다. <죽음에 관하여>라는 웹툰이다. 거기에 소방관 에피소드가 나온다.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다른 동료를 구하다 사망한다. 눈 떠보니 신이 그 앞에 있었고,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한다. 너라면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주겠다고. 그때 그 소방관이 십 수년 전 자신이 화염 속에 놓고 온 것이 사람인지, 물건이었는지 묻는다. 과거 한 화재 현장에서 물건인지, 사람인지 판단이 안 되 도망치듯 나온 현장이 있었다. 신은 “물건이었어.”라고 말한다. 물건이라는 말을 듣고 소방관은 울며 주저앉아, 내내 마음 속에 품고 살았다고 말한다. 내가 생명을 버리고 도망친 것은 아닌지,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의문이 풀린 소방관은 다시 환생하는 문을 통과한다. 소방관이 가고 나자, 까맣게 그을린 어린이가 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흔든다. 신은 그 꼬마에게 “이제 그를 용서해. 이런 사람들이야.” 라고 말한다. 소방관이 두고 온 건 물건이 아니라, 어린 아이였고 모두가 해당 사실을 알지만 숨겨줬던 거다. 진실을 알고 싶어 신에게 물었지만, 그 신 마저도 그에게 진실을 숨겨준다. 그가 느낄 죄책감과 소방관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알기에 했던 행동이다. 그 웹툰을 볼때면 소방관이라는 직업과 사명감, 죄책감에 대해 생각한다. 까만 어린 꼬마의 모습처럼, 수 많은 소방관들의 마음도 그렇게 까맣게 그을려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방관도 한 명의 사람이다. 아무리 잘 훈련된 사람이라도 화마 앞에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싸움에서 이길 순 없다. 때론 질 때도 있다. 또 개인적으론 소방관 자신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두고 올 수도 있는데, 그것이 소방관에겐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웹툰의 그 장면을 보면서, 모든 소방관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런 소방관들을 더욱 알아주고, 지지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 소방관이 많아지고 또 소방관을 위한 지원도 많았으면 좋겠다. Q. 최근 정치에서는 소방관 지원 자격을 추가하려고 하고 있다. 군복무를 해야지만, 지원할 수 있다는 방식으로. 그런 장벽이 논의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런 것이 정말 소방관이 되는데 필요한 자격이라고 생각하나? 해당 공약을 봤다. 유튜브에 공약과 취지를 말하는 영상이 있어서 몇 번이나 봤었다. 솔직한 심정은, 군인 수를 채우기 위해 소방관, 경찰관을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소방관과 경찰관이 군인 수 채우는 도구인가? 묻고 싶었다. 군인 수가 부족하다던데, 소방관, 경찰관은 충분한가? 묻고 싶다. 만약 이준석 대표가 군복무 경험이 소방관 업무에 얼마나 필요하고, 어떤 점에서 필요하고 연관되는지 설명하고, 그 필요성 때문에 군복무를 말한 거라면 납득 했을 수도 있을 거다. 일반 사병 경력을 말하던데, 사병들의 어떤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근거로 제시했다면 설득력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것 마저도 군 경력이 높은 가산 점의 형태로 되어야지, 전제 조건으로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근거도, 논리도 없이 소방관이 되려면 군대를 다녀와라? 그저 주목 받고, 여성 징병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Q. 현재 군 특수부대 출신은 소방 특채로 뽑는 것으로 안다. 군 경력을 내세우려면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건지? 맞다. 해당 경력들은 분명 소방 현장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불을 끄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구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간호사, 의사, 혹은 군 특수부대에서 관련 경험을 했다면 그들은 빠르게 소방 현장에 투입돼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해당 직무 들은 특수한 능력이 필요한 만큼, 그런 사람들을 위주로 뽑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거고, 그들의 경력이 그것을 뒷받침 해주는 근거가 되니까. 몇 년 전이다. 소방항공대원 5명이 독도 인근 해상에서 사고로 순직한 일이 있었다. 당시 합동영결식에서 순직한 5명의 동료 소방관들에게 하는 고별사를 본 적이 있다. 보고 많이 울었다. 순직한 분 중 해군해난구조대에서 군 복무 후 소방에 임용되신 걸로 안다. 그런 분도 현장에서 사고로 순직하는 게 소방현장 같다. 사병 경험이 그들에게 준하는 경력을 주는건지 의문이다. 물론 군인도 고귀한 직업이다. 소방관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경찰이 치안을 담당한다면, 군인은 국방을 맡아 외부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군인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군인에 대한 처우와 인식도 안 좋은 것 같다. 이러한 인식 개선과 처우 개선을 말해도 부족할 것 같은데, 그런 공약을 보니 솔직히 후졌다고 생각했다. 감정이입이 돼서 말이 좀 센 거 같다. Q. 솔직해서 좋다. 노골적으로 묻자면, 여성도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한다고 보는지? 사실 이준석 대표는 경찰과 소방을 미끼로 여성 징병을 말하고 싶은 거였다. 이거 정치 인터뷰인가? (웃음) 지극히 개인적으론 여성도 군대에 가고 싶다면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가는 여성도 있지 않나. 내가 소방관이 꿈이듯, 누군가에겐 군인이 꿈일 수도 있다. 그걸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월드 인베이전>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영환데, 외계인이 전 세계를 침공한다는 내용이다. 거기에 맞서 싸우는 군인들을 그린다. 그 중에는 여성 군인도 있다. 공군인데, 주인공 분대와 합류하면서 분대장이 “싸울 줄 아나?” 라고 묻는다. 그때 그 여성 군인의 답변이 인상 깊었다. “얼굴 반반해서 살아 남은 게 아닙니다.” 라고 말한다. ‘니들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라는 걸로 느껴졌다. 그렇게 누군가에겐 군인이라는 직업이 평생의 꿈이자, 사명감 넘치는 직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중엔 분명 여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분들이라면 사명감과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에서 군 복무를 할 것 같다. 그런 분들의 사기는 조금 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의무로 복무하는 사람에게 그런 사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의문이긴 하다. 군인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지원이 필요할텐데, 그런 게 있나? 라고 물어보고 싶다. 의무로 인원 수를 채우는 게 아니라, 자긍심으로 군에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재밌었다. 노량진은 분위기가 우중충 한 게 있다. 공시생들만 모여서 그런 것 같다. 잠깐 이지만 분위기 전환도 되고 좋았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불 조심 하시고, 연휴 잘 보내시라. — 노량진에서 공시생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설날이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건지, 학원에 간 건지, 독서실에 간 건지 찾기가 어려웠다. 공시생을 인터뷰 하는 유튜브도 검색해서 어떻게 찾았나도 살펴보고, PC방에도 가보고, 식당에도 가봤다. 그렇게 만난 공시생들 대부분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시간 아깝고, 본인에게 떨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당연할 것이다. 검색해보니 공무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쉽지 않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간 노량진을 서성였다. 그리고 모 카페에서 우연히 소방 공무원 교재로 공부하는 분을 봤고,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인터뷰 문의를 드렸다. 처음엔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 봤으나, 예전에 했던 인터뷰들을 보여드리고, 내가 준비한 질문들을 보여드리자 재밌을 것 같다며 흔쾌히 응해주셨다. 앞서 인터뷰 내용은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해당 인터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는 각자의 생각이니, 내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몇 년 전, 코로나가 아직 한창일 때 집 근처 보건소에 간 적이 있었다.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었고, 검사를 위해서 선별 진료소를 간 거였다. 선별진료소가 있던 게 벌써 몇 년 전이라니 시간이 빠르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보건소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봤다. 그 쪽으로 가니 시뻘건 불길에 상점이 불타고 있었다. 불길은 거셌고, 검은 연기는 계속 위로 솟아 오르고 있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고, 깨진 파편이 튀어 나왔다. 당시 찍은 동영상 캡처 사진 그리고 불과 1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방차가 왔고, 이미 준비를 끝 낸 소방관 분들이 내려 신속히 화재를 진압했다. 화재 진압은 순식간이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는 것 같았다. 소방관 분들은 뜨거운 불에 다가가며 물을 뿌리셨다. 멀찍이 서있는 내게도 화마의 뜨거움이 전달 됐다. 방화복을 입었다고 해도 그 뜨거움을 막지는 못할텐데 라며 숨을 죽였던 게 기억난다. 화마(火魔)란 화재를 마귀에 이르는 말이다. 화재 현장이 마치 마귀가 할 퀴고 간 듯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당 화재 현장을 보고 화마가 할 퀸 자국이 어떤 것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저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그 공포가 어느정도 일까. 경험하지 못한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저 불 속으로 들어가 내가 아닌 남을 구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사명감이란 무엇일까도 역시 상상할 수 없다. 확실한 건, 나는 할 수 없다는 점 뿐이다. 그런 사명감 있고, 위험한 직업에 도전하는 한 분과의 인터뷰는 그래서 특별했다. 어느정도 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불길을 경험하고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불에 맞서고 싶다는 분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 분 외에 수 많은 소방 공무원 준비생 분들에게도 동일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준석 대표는 군복무를 해야 공무원 응시 자격을 주겠다며, 공무원 경쟁률에 대해서 말했다. 2023년 소방 공무원 경쟁률은 합계 21.2이었고, 남성의 경우 20.3, 여성의 경우 30.8이었다. 선발 인원 자체에서도 남성은 730명을 뽑고, 여성은 63명을 뽑았다. 여성 지원자는 1,939명이었다. 2023년 경찰 공무원 2차 하반기 경쟁률은 남성이 15.1, 여성이 28.9이었다. 여성 지원자는 10,552명이었다. 이준석 대표는 해당 경쟁률과 지원자를 근거로 연 1만에서 2만 명의 병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의문이 든다. 얼마전 문경 육가공 공장 화재 현장을 진압하다가 2명의 소방관 분들이 순직했다. 두 사람은 공장안에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갇힌 사람을 구하러 들어간 것이었다. 불행히 들어간 두 사람은 순직했고, 그 안에 그 두 사람이 구해야 할 시민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수색 역시 인원이 부족한 상태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만성적인 인원 부족 상태에, 이준석 대표의 공약이 과연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겠다. 인원 부족에 또 하나의 자격이 있어야만 지원할 수 있다면, 그건 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방, 국방, 경찰 등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정치권에서 해야할 건, 이들이 보다 안전하고 사명감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일 것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루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세금을 투입해도 아깝지 않은 게 개인적으론 소방과 국방이다.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탐욕과 무능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부디 새로운 정치인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래본다. 철골을 엿가락 처럼 휘게 만드는 그 화마 속에서 누구보다 살고 싶었을 문경 화재 공장 순직 소방관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편안하셨으면 좋겠다. 왠지 그 두 사람은 좋은 곳에 가서도 웹툰의 이야기처럼, “제가 구하려고했던 시민은 무사한가요?”라며 첫 마디를 내뱉을 것 같다. 소방관들은 그런 사람들이니까.
노인에게 무임승차에 대해 묻다
제목 : 노인에게 무임승차에 대해 묻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쏘아올린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 공약으로 연이은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노인회는 이준석 대표에게 “개혁신당 대표가 아니라, 패륜아 집단에 망나니 짓" 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이에 이준석 대표는 “4호선 무임승차자 대부분은 경마장역에서 내린다"며 맞받아쳤다. 이준석 대표가 무임승차를 두고 연이은 설전을 하는 와중에 국민의힘은 경로당 주 7일 점심 제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해당 공약에 이준석 대표는 “매표 행위 밖에 못하냐"라며 비판했다. 노인들 환심 사려는 공약 밖에 못하냐는 비판이다. 노인회와 입다툼하고, 국민의힘과 각을 세우느라 이준석 대표가 연일 바빠 보인다. 대립 각을 세우는 와중에 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이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무임승차 논쟁에 대해서 물어봤다. 처음에는 주변에 아는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하려고 했으나, 아는 사람은 정제된 답변을 해줄 것 같았다. 날것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처음보는 노인을 찾아 지하철로 향했다. 장소는 이준석 대표가 언급한 4호선과 길이가 가장 긴 1호선으로 정했다. 처음보는 노인들에게 갑자기 다가가서 물어보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몇 몇 노인분들이 “입이 심심했다.”며 답변해 주셨다. 물론 일부는 거절했다. 시간은 저녁대였다. 대화는 노약자석 앞과 승강장 의자에서 이뤄졌다. 질문은 무임승차와 노인 시선에서 바라본 지하철 등 평소 궁금한 내용이었다. 외부 게재를 허락해 준 한 분과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했다. — Q. 현재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현재 76세다. 젊어서 서울에 올라왔다. 계속 서울에 살고 있다. 자식들은 지방에 살고 있다. Q. 처음 노약자석에 앉았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하시는지 궁금하다. 언제 처음 앉았는지는 기억 안난다. 노인 대우 받는 나이 되자마자 앉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앉기 싫었다. 노인이 됐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게 싫었다. 뭐 나이차면 다 노인인 건 맞는데(웃음), 뭔가 심리적으로 거부하는 게 있었다. “난 아직 팔팔해.” “마음만은 청춘이다”, 이런거. 젊은 사람이 보면 나잇값 못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랬었다. 젊은 분도 지금은 이해 못하시겠지만, 나중에 나이 들면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이해하실거다. 그러다 결국 언젠가부터 앉았다. Q. 결국 앉게 되신 이유가 궁금하다. 별거 없다. 다리가 아팠다. 오래도록 서서 갈 자신이 없었다. 나이들면 온 몸이 쑤시다. 아픈데 장사 없다고, 이제 노약자 석 그런거 상관없이 앉는다. 마음도 몸이 따라줘야 하는 거고, 청춘도 몸이 따라줘야 한다. 무릎 쑤시면 자연히 무릎이 굽혀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고, 앉을 곳을 찾게 된다. 예전에는 노약자석에 자리가 있었는데, 요즘은 노약자석에 자리도 없다. 내 앞에 더 굽고 나이든 것 같은 사람이 보이면, 비켜줘야 하나 싶은 때도 있다. 나라가 나이들었다던데, 진짜인 걸 실감한다. Q. 젊은 사람들도 내 앞에 노인이 있으면 비켜줘야 하는 생각이 든다. 노인들도 같은 생각을 한다니 놀랍다. 노인들 사이에서도 젊은 노인, 나이든 노인 구분이 있는 건가? 그런거 없다. 다만 가끔 싸잡아 놓고 다 노인이라고 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은 든다. 지금 65세 이상이면 다 노인 아닌가. 내 나이가 76이다. 올해 65살 된 사람이랑 나랑 같은 노인인거다. 11살 차이가 나는데.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요즘 말하는 세대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 오산이다. 아픈 곳도 다르고, 몸 상태도, 마음 상태 다 다르다. 젊은 분도 11살 차이 나는 더 젊은 혹은 더 나이든 사람과 같은 세대라고 하면 맞다고 보나? 젊은 사람들도 차이가 있듯, 우리도 차이가 있다. Q. 현재 65세를 기준으로 노인으로 보는게 너무 젊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르지 않겠나. 아까도 말했듯 처음 노인 나이 됐을 때, 난 나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 안 했다. 돌이켜보면, 노인 나이 됐을 때 뭔가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인이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걸 받아들이기 싫어서 노인인 걸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러다 몸이 안 따라주니 노인인 걸 받아 들였다. 지하철에서 오래 서 있기도 힘드니까, 노약자석도 앉고, 경로당도 가고, 혜택도 받고 그랬다. 노인이 되면 신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게 확실히 줄어든다. 그런데 요즘 65세가 신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기 어려운 나이인가 싶기는 하다. Q. 혜택 얘기가 나와서 묻자면, 요즘 무임승차 폐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없어지면 당연히 불편하다. 줬다 뺐는 거 아닌가. 애초에 없었다면 모를까, 있던 걸 없앴다고 하니 당연히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이건 누구라도 그럴거다. 신문 보니까 적자도 심하고, 지역 편차도 있다고 하던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야 있겠지만, 그걸 전부 노인들 탓으로 돌리는 것 같다. 물론 노인이 돈을 안 내고 지하철을 타니까, 그 만큼 돈이 안 갇혀서 적자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노인들한테 돈을 받으면 그 만큼 돈이 걷히니 당연히 적자도 줄어들 거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 먹고 싶어서 먹은 게 아니지 않나? 시간이 지난 거고, 노인이 된 거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살면서 세금을 안 낸 것도 아니고. 내면서 살았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면서 살았다. 이유야 있겠지만, 듣기에 노인이 공짜로 타서 적자다라고 몰아가는 것 같다. 마치 지하철만 무임승차 하는 게 아니라, 삶 자체를 무임승차 한 거라고 보는 건가 싶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내 전 세대도 그렇고, 지금 젊은 분도 그렇지 않을 거다. 젊은 분들도 세금 내지 않나. 지금 태어나지 않았지만 향후 태어날 사람들은 지금 젊은 분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열심히 살고 계시지 않나. 우리도 그랬다. 그걸 조금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Q. 삶 자체를 무임승차 하는 것으로 본다는 말씀이 조금 깊게 다가오는 것 같다. 살면서 별의 별 일을 다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내 나이대 사람들 모두 그랬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가 그랬다. 네거 내거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지하철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나 같은 세대 노인들이 일해서, 세금 내고 그랬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젊은 분 같은 시대랑 우리 시대랑은 다르다. 그것은 안다. 하지만 우리의 땀이 있어서 지금의 사회가 있고, 시설이 있는 거다. 물론 나 덕분에 있었으니 당연히 누려야지 이건 아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젊은 분들이 낸 세금 덕분이다. 우리가 만들었다면, 젊은 사람들은 발전시켰다. 노인되서 무조건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노인들도 있던데, 그건 잘못 된 거다. 우리랑은 다른 시대에서 더욱 부담 되는 게 사실일 거다. 그 점에선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조율 해야 할 문제지, 한 세대 전체를 싸잡아서 원인으로 규정 짓는 건 아니다. Q.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 간의 차이가 있다. 차이야 당연한 거지만, 문제는 그걸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서로 답이 없다는 점 같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옳다고 주장만 하고, 갈등으로 번지는 게 아닌가 싶다. 답은 나도 모른다. (웃음). 나이 든 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니까. 배운 거라야 젊은 사람들이 훨씬 많이 배우지 않나. 난 고등학교도 안 나왔다. (웃음). 그때는 안 나와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이런 차이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세금 냈으니까 당연히 받아야 돼, 앞으로 세금 부담되니까 안돼.” 이런 게 아니라 오래도록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서로 이기려고 대화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려고 대화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살다보니 ‘져주는 게' 이기는 거더라. 노인도 적당히 받아야 한다. 물론 내가 모르는 노인의 어려움도 있을 거다. 난 뭐 부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여유롭지도 않다. 때문에 내가 생각했을 때 충분하다고 하는 게, 나보다 어려운 노인에게는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런 점을 찾는 게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또 그런 부분에서 노인들이 버틸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것도 젊은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주머니 털어서 다 주는 게 아니라, 최소 살 수 있을 정도로 도와주고,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인정해 주셨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은? 재밌었다. 노인이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다. 나이 들면 원래 말이 많아진다. 근데 말할 기회는 줄어든다. 말할 사람도 줄어든다. 하늘로 올라가던, 땅으로 꺼지던, 하나님 만나러 가던, 부처님 만나러 가던 줄어든다. (웃음) 노인한테 즐거운 시간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 곧 있으면 설날인데, 새해 복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다. 건강이 최고니, 젊어서 건강 잘 챙기시라. 늙어서 챙기면 늦는다. 젊음 잘 즐기셔라. 아무리 즐겨도 더 즐길 걸 하며 후회하니까. — 어르신은 1호선 지하철 어딘가에서 나와 함께 내려 한 참을 이야기 하시곤, 감사하다고 머리를 숙이고 다시 지하철에 오르셨다. 늦은 저녁이라 자리가 꽤 있었음에도 어르신은 노약자 석에 앉으셨다. 자리가 있는데 굳이 노약자 석에 앉은 이유가 뭘까 잠시 생각했다. 문이 닫히고, 어르신이 탄 지하철이 역을 완전히 통과할 때까지 지켜봤다. 어르신과 인터뷰 한 자리에서 인터뷰 한 내용을 잠시 정리하고, 지하철을 기다렸다. 거의 막차가 된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집에 가면서 어르신과 인터뷰를 돌이켜 봤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이 떠올랐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책이었다. 책은 노인 인구 증가로 인한 사회비용 증가, 고부 갈등 심화, 저출산이 극심한 사회문제로 치닫자 70세 생일을 맞은 사람들은 30일 이내에 사망해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된 사회를 그린다. 노인 사망으로 문제를 극단적으로 해결하는 사회를 그린 것이다. 법안이 통과 됐다는 점에서 사회와 정치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책은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사망을 기다리는 노인, 시어머니를 돌보는 며느리, 은둔형 외톨이, 70세면 죽으니 빨리 정년 퇴직해서 여유를 즐기겠다는 직장인, 일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빠져야 내 일자리가 생기니 법안을 환영하는 취준생 등 다양하다. 법안이 통과된 후 한 가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가는지를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던 책이었다. 인터뷰 이후 그때 책에서 봤던 몇 개 문장이 떠올랐다. “앞으로 2년 만 더 버티면 돼요. 그 법안 덕분에.”* “어휴 위에 사람들이 빠져야 우리도 일자리 생기니까 난 완전 찬성!.”* “우리 세대는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기도 힘들다고 그러니까 아빠도 죽을 때까지 일해요.”* “오래 살아도 되고,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우리의 일은 앞으로가 시작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반드시 실현해야 합니다.”*  책이 보여주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과 노인들의 모습이 비단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책에서 말하는 갈등은 현재 우니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책이 가정한 사회처럼 극단적인 사회로 가서는 안 된다. 소설은 소설이기에 현실에서 저런 극단적인 대안이 나오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무언가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정말 점점 극단적으로 가겠다는 조금의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어르신의 말처럼 정치의 일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의견을 들고 이기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상방된 의견이 만족할 수 있는 선을 찾고, 양보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찾는 조율의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 정치의 모습이 이기기 위한 공약과 정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어도, 다수가 만족할 수 있고, 소수가 소외 받지 않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토론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또, 그 과정에서 나는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 어디까지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왼쪽주머니, 2018) p.350, 375, 391
노인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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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변화] 선거 공약이 내게 미칠 영향을 상상하는 것
“노인들 무임승차가 문제야. 노인들이 양보해야지. 요즘 누가 65세를 노인으로 생각해. 75세로 연장하던가. 젊은 사람들만 고생이라니까. 우리랑은 시대가 다르잖아.” 지난 1월 24일 저녁 10시, 2호선 외선순환 열차안이었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새로 산 책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늦은 저녁에도 앉을 자리 없이 사람이 붐볐다. 환승 가능 역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이내 옅은 술냄새와 진한 스킨 냄새를 풍기는 두 사람이 탔다. 직장 선/후배 혹은, 학교 선/후배처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머리에 눈이 서려있었다.  둘은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관련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얼마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쏘아올린 공약이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공약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유권자 다수의 표를 잃을 수도 있는데 꽤 과감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책이나 읽자 싶었지만, 이내 책이 읽히지 않았다. 얼굴을 가리고, 귀를 쫑긋세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참기엔 귀가 너무 간지러웠다. 선배로 보이는 사람은 “예전에는 그냥 빨리 갈 수 있는 걸 탔단 말이야. 그게 지하철이든, 버스든, 택시든. 그런데 무임승차 가능하니까, 그때부터는 지하철만 타게 돼.”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얼마전에 이준석이 무임승차 폐지한다고 공약 걸었잖아. 나는 이거 잘한거라고 봐.” 라며 뒤이어 말을 강조했다. “노인들 무임승차가 문제야. 노인들이 양보해야지. 요즘 누가 65세를 노인으로 생각해. 75세로 연장하던가. 젊은 사람들만 고생이라니까. 우리랑은 시대가 다르잖아.” “결국 그거 적자나면 누가 매워? 젊은 사람들 세금으로 매워야 돼. 그게 얼마나 부담이 돼. 우리 때처럼 뭐하면 다 잘 되고, 성공하는 시기가 아닌데. 아무리 본인들이 세금을 냈다고 하지만, 그때는 혜택으로 다 돌아왔어. 혜택도 다 누린거고. 근데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단 말이야.”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이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신기했다. 문득 어떤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곧바로 말했다. “내가 사학연금 받잖아.” 사학연금을 받는다는 건, 일평생 사립학교 교직원이었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중 어느 학교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에서 근무했든 ‘선생님'이라는 위치였던 건 동일했다. 요즘은 어떤지 정확히 모르지만, 과거 선생님으 존경받는 직업이었고, 사회적 위치가 있다고 여겨진 직업이었다. 그 말을 듣고보니, 말하는 사람에게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애초 지하철, 버스, 택시든 가리지 않고 빨리 도착하는 걸 탔었다는 말에서 금전적 여유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어떤 내용으로 말하나 궁금하고 더 귀를 세웠는데, 아쉽게도 두 사람은 다음 환승역에서 부리나케 내리고 말았다. 더 듣지 못해 아쉬웠다. 읽고 있던 책을 다시 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임승차 관련 내용이 자꾸 떠올랐다. 잠깐 상상을 해봤다. 저 공약이 실현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지하철에 사람들이 줄어들 것 같다. 지하철 타는 노인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어디로 갈까.  한국 노인들은 지하철에서 목적지 없이 종점을 왕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지하철 없는 노인들은 어디로 가서 시간을 보내게 될까? 우리 사회에 노인들이 보낼만한 즐길거리가 있나? 거리에서 두는 바둑? 장기? 우리 사회 노인들이 문화생활을 영위할만큼 배려가 되어 있나?  여러가지 모습이 떠올랐다. 값싼 커피숍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 노인들, 미로 같은 키오스크 앞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노인, 카페에 시험 공부하러 왔다가 자리가 없음을 알고 돌아가는 대학생, 자소서를 쓰러 왔다가 돌아가는 취준생, 갈 곳 없어 집에만 있어서 우울증 증세가 심해진 노인들 등. 재밌는 모습도 떠오르고, 씁쓸한 모습도 떠올랐다. 무임승차 관련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 관련 기사를 찾아봤다. 무임승차 폐지에 찬성하는 기사가 많았고, 그 중에는 청년과 노인 갈등을 말하는 기사도 있었다. 한 기사에 따르면, “밤새도록 실험하고 녹초가 되어서 왔는데, 등산복 입은 노인이 자리르 비켜줄 것으로 요구했다” 라며 “등산할 체력으로 서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며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무임승차까지 하면서, 노인들이 청년에게 자리 양보까지 요구한다 목소리였다. 노컷뉴스는 해당 주제로 투표를 진행했다. 네 개 답변이 있었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해야 한다.’, ‘혜택 유지하되 연령 상향 등 조정 이뤄저야 한다.’, ‘복지 일환이므로 유지해야 한다.’, ‘잘 모르겠다.’. 투표 결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약 50%를 차지했고, 혜택 유지하되 연령 상향 등 조정 필요가 약 30%였다. 실시간이어서 달라질 수는 있으나, 현행 무임승차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투표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다. 시사위크는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사실인지 팩트체크하는 기사를 썼다. 기사는 무임승차로 인한 수익감소가 있고, 무임승차를 폐지했을 때 분명 수익이 증가하는 건 맞지만, 기본적이 적자는 지하철의 싼 요금에 있다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대체로 사실 아님'이라고 썼다. 예전에 한 노인 관련 조직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일종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노인들은 평생 살아오면서 세금을 낸 분들이예요. 그 분들이 낸 세금으로 우리 사회가 이뤄질 수 있었어요. 지금의 혜택은 그때 낸 세금에 대한 보상이예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돼요.” 지하철에서 본 노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관련 기사를 찾아 보며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서 무엇이 맞는건지는 모르겠다. 각자의 판단에 달린 문제다. 하지만, 한 개의 공약으로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둘러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사학연금이든, 공무원 연금이든, 국민연금이든 노후가 보장된 사람에게는 지하철 무임승차가 시간을 보내는 놀이나 복지보다는, 싸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일 것이다. 반면, 노후 보장이 없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마음 둘 곳이고, 삶의 긴장감을 낮춰주는 복지일 수도 있다.  후자의 사람에게 75세 연장은 긴장의 시간을 10년 더 늘리라는 요구로 들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 나아간다면, “과거에 당신이 세금을 냈지만, 지금은 보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이었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내 일상에 큰 영향을 준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처럼, 당장 내 세대에 관한 게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돌고 돌아 내게 돌아온다.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가 계속되는 한, 지하철 요금은 인상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내 지갑은 더욱 얇아질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임승차를 중단하자니, 사회의 안전망 하나를 허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경제적 문제가 있으면 복지를 허물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된다면, 훗날 내가 낸 세금의 보상을 내가 받게 될 때 동일하게 내 보상이 뒤로 밀리는 건 아닐까 싶다. 그때 이건 아니다 라고 내 목소리를 낼 때 과거의 나 역시 동일한 논리를 지지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내가 내세운 목소리가 내 목을 쥐는 모양새. 이것만은 막아야겠지만, 당장의 경제 논리는 너무 강해보이기에 섣불리 가타부타 말하기가 어렵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수많은 공약이 언젠가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쏟아지는 공약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약자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
2024년 4월 10일,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길을 걷다보면 벌써 현수막을 걸고, 국회의원 후보 혹은 예비 후보라며 자신을 어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지역구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내 지역구의 한 후보자는 현수막에 윤석열 정권 심판을 써놨다. 맞은편 다른 후보자는 자신을 마음껏 부려먹어 달라고 써놨다. 그 옆 또다른 후보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성과와 지역구에 만들 인프라를 써놨다. 후보자 현수막에서는 그들의 관점과 어필 대상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권 심판을 내건 후보자는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며, 본인과 동일한 생각을 갖는 유권자에게 어필함을 알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유권자는 포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마음껏 부려먹어 달라는 후보자는 구민을 위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걸 손에 쥘 수는 없다. 너무 삐뚤게 보는 걸수도 있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걸로도 보였다. 마지막 다른 후보자는 구 전체에 돌아갈 이득을 말한 것으로 보였다. 인프라 구축되면 구민이 이용할 시설이 늘어나는 것이니 혜택이 돌아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얼핏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지금 인프라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새로운 인프라가 늘어난다고 해서 좋아지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았고, 유세 운동도 펼치지 않은 상태라 정확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수막을 내 건 세 후보 모두 실망스러웠다. 자신과 다른 유권자는 포기하는 태도, 단순히 열심히 하겠다는 구호, 구의 성장을 이끌겠다는 어필 모두에서 ‘구민'을 위한 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4년을 이끌어 갈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 이번에도 뽑을 후보가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 이 정치이고, 정치인은 이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펼쳐야 한다. 나는 여기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 후보자라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고,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냐의 판단 기준과 관점은 다양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불평등과 혐오, 차별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열심히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환한 낮과 화려한 밤에 버려진 쓰레기가 아침만 되면 사라져 있는 이유는 새벽 어스름에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 미화원이 있기 때문이다. 바닥에 버려진 수많은 폐지가 아침이 되어서 사라져 있는 이유는 새벽에 일어나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말없이 참고 견디고 있기 때문이며, 말없이 참고 견디는 이유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고통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조롱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조롱으로 인해 받을 더 큰 상처가 두렵고, 아무른 흉터마저 다시 벌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좋은 정치란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려서, 그들까지도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좋은 정치인이란 그들의 고통을 보는 눈과 보이지 않는 그들을 찾아가는 노력과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쓴 신형철 교수는 인간이 배울만한 것중 가장 가치있고, 어려운 것은 타인의 슬픔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자질로) 혹자는 성품이 아니라 능력을 봐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성품이냐 능력이냐'라는 물음은 잘못된 양자택일이다. (중략) 성품이 곧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고통받아 본 사람이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 그들은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능력과 그것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중략) 귀 기울일 것이다. 반값 임금에 혹사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을, 차별당하는 소수자들의 말을, 그 고통을 알겠어서, 차마 도망칠 수 없어서,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고통받지 않았다고 해서, 고통받은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고통받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람을 보는 눈을 갖고, 그런 사람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가진다면 수많은 동일한 고통을 받은 적 없는 사람들을 향해 저들을 고통과 슬픔을 헤아려야 한다며 설득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관점이다. 약자의 고통을 알고, 그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지 아는 사람이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한다는 정치의 의의와 맞닿는다고 생각한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 출판/ 2021) p.27, 203, 204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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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국회의원의 행적을 보며
제목 : 어느 국회의원의 행적을 보며 시대전환의 조정훈 의원이 최근 국민의 힘과의 합당을 결정했다. 국회의원 의석 1명을 가진 소수정당이 거대 정당 중 하나로 들어간 것이다. 소수 정당이 거대 정당으로 편입되는 것, 혹은 소수 정당에서 이탈해서 거대 정당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실 새로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수정당으로써 국회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의석 1석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거대정당에 들어가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이다. 조정훈 의원은 586 운동권을 몰아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궁금했다. 이 목표가 첫 국회 입성 당시부터 이어진 목표였을까? 그가 국회의원으로써 하고 싶었던 건 뭘까.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조정훈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 후 스스로를 ‘입법 노동자'라고 명명했다. 그렇다면, 그가 대표적으로 발의한 법안이 무엇인지,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세계은행, 개발협력 전문가 조정훈 조정훈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 세계은행에서 근무를 했다.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에 도로, 항만, 건설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활동한다.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장기간에 걸쳐서 적은 이자로 값을 수 있게 해준다. 대규모 개발협력 프로젝트에 있어서, 세계은행과 함께 하지 않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조정훈 의원 스스로도 세계은행에서 근무를 하면서, 다양한 개발도상국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15년 간 세계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오랫동안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는 이주민 생활을 했다. 낯선 타국에서 이방인의 삶과 희귀피부암을 앓으며 누구보다 낮은 자세로 타인의 고통에 깊게 공감하게 됐다. 이에 자신이 받아온 것들을 이웃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합리적임녀서 미래지향적인 이주민 정책을 수립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 번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외국인과 함께 살아가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게 됐다.” 대표발의안,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 조정훈 의원은 지난 3월 21일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본인을 포함해 총 11인이 함께 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명, 국민의 힘 의원이 8명이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월 100만 원에 고용하자는 내용이었다. 월 100만 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사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법안 발의 이유는 육아와 가사 부담으로 인해서 여성들이 출산을 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데려와서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출산율을 높이자는 취지다. 그는 싱가포르 사례를 설명하며,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에 약 20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중소기업, 제조업, 농어촌, 임엄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다면 산업이 돌아가지 않는 수준이다. 그만큼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나라에 깊숙이 들어왔고, 그 역할면에서 적지않은 영향력과 중요성을 갖고 있다. 이런 영향력과 중요성에 비해 그가 발의한 법안은 최저임금 보장이 되지 않는 차별적인 법안으로 인식됐고, 거센 비판을 받았다. 정의당, 기본소득당, 한국노총, 이주민단체 등에서 차별을 법제화하는 법안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해당 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 실제 출산율을 높이자는 취지와 다르게 예로 들었던 싱가포르의 출산율이 오히라 낮아졌다는 통계가 있었고, 월 100만 원으로 대한민국에서 이주 노동자가 살 수 있는지, 국내 부부들이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신뢰할 수 있을지, 기존 가사노동자조차도 근로기준법적용을 못받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고칠 생각은 않고, 차별적인 법안으로 채우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당 법안을 환영한 건 오세훈 서울시장이었다. 비판이 강하게 일자 조정훈 의원과 함께 발의한 국회의원 중 이탈자가 발생했다. 이에 법안 발의가 철회되어, 다시 인원을 모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여의도를 넘어 용산으로 넘어갔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까? 조정훈 의원은 외국인 가사 도우미가 없었다면, 자신의 아내 역시 경력 단절 여성이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만큼 여성의 경력 단절을 위해서도, 가사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해당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당 기사를 보면서 앞서 조정훈 의원이 말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어디에 있었나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가족에 대한 공감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가족을 위해 일하는 누군가에 대한 공감은 보이지 않았다. 조정훈 의원이 국민의 힘과 함께 한다면,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떻게 될까? 현재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처우는 너무나도 열악하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아니었다고는 하나 주 69시간 근무를 말했던 정부다. 이러한 취지의 정당에 들어가서 과연 본인이 스스로 말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정말로 할 수 있을지 우려 스럽다. 외국인과 함께할 수 밖에 없다는 조정훈 의원 본인의 말처럼, 부디 외국인 노동자일지언정 최소한의 권리는 지킬 수 있으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4년의 16만 5천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제목 : 2024년의 16만 5천 외국인 노동자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나라 농어촌과 지방 공장에 외국인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이 말이 나온 지 벌써 수년이다. 코로나19 당시, 국경을 막아서 외국인이 들어오지 못하자 일손이 없다고 아우성치던 기사를 허구한 날 본 기억이 있다.  이러한 현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더욱 많이 국내에 들여오게 만든다. 2024년에는 최대 16만 5천 명의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에서 일 하기 위해 들어올 예정이다. 16만 5천 명의 사람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 산업현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2021년 5만 2천 명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한편,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전문 취업 비자(E-9)’를 받게 된다.  비전문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법률, 의료 등 전문직이 아니라 제조업, 농축산업 등 특별한 기술없이 할 수 있는 업무들을 하게 된다. 해당 분야들은 대부분 구인난을 겪고 있는 곳들이다.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과 제조업, 농어촌 분야는 사람이 구해지지 않으니, 외국인을 고용하려고 한다. 이들에게는 고용허가제가 구인난을 해결할 기회가 된다. 또한, 국내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 역시 자국에서 받는 급여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일거 양득, 모두에게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건 양면을 갖는다. 코리안 드림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개발도상국 사람들이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등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주류다. 이들 나라와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GDP 기준)은 몇 배씩 차이가 난다. 1인당 GDP로 따지면 더욱 크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022년 기준 약 3만 2,400달러다. 베트남의 1인당 GDP는 약 4,160달러, 캄보디아 약 1,800달러, 라오스 약 2,100달러다. 많게는 16배에서 적게는 8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들에게는 몇 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한국행이 꿈이다. 우리나라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듯, 이들 역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온다. 고용허가제는 그 꿈을 이루는 길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대한민국에 들어오기 위해 그들은 한국어능력시험을 거친다. 최소 한국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통과가 되고, 국내 취업처가 확정이 되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 또 이렇게 일할 경우, 최저임금, 산재보험, 노동 3권 등을 보장받는다. 최저임금을 받는다고 해도 자국에서 받는 것에 몇 배는 벌 수 있기에 한국에서의 일은 그들에겐 코리안 드림이다. 하지만, 그 꿈이 길몽이라는 법은 없다. 어쩌면 현실에선 악몽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깻잎 투쟁기 책, <깻잎 투쟁기>는 밥상머리에 깻잎이 어떻게 올라오는지, 누가 깻잎을 재배하는지, 왜 그들이 재배하는지, 그들의 작업은 어떤 모습인지, 왜 그런 모습인지 다루는 책이다. 저자는 약 1천일 간 깻잎농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조사하며 책을 썼다. 저자는 책을 통해 국내 농어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나라 제도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밝힌다. 앞서 말한 최저임금, 산재보험, 노동3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 우니나라의 현실 중 하나다. 국내 깻잎은 대부분 이주노동자에 의해 재배된다. 이들은 모두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다. 이들이 없다면, 밥상에 깻잎이 올라올 수 없다.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농촌에서 이들의 노동력은 절대적이다. 반면, 그 위치와 입장과 다르게 그들의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하다. 구체적 예는 이렇다. 밥시간이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화장실 갈 시간이 부족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숨어서 몰래 볼일을 보기도 한다. 숙소도 넉넉지 않다.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양찰로 만든 비닐하우스 내 숙소가 전부다. 이러한 숙소마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월세를 내고 살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을 그들이 모를리가 없다. “저개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컨테이너 집, 비닐하우스 집,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집에서 사는 것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자 일종의 차별적 착각이다. 그들도 자신들이 사는 집이 더럽고, 열악하고, 좋지 않다는 것을 당연히 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일어나면 일하고, 해지면 일을 끝낸다. 물론 할당량은 채워야 한다. 하루에 수십 상자의 깻잎을 떼어내야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야근을 해야 하고, 이 야근 일당은 당연히 수당으로 치지 않는다. 애초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점심도 거르고, 화장실도 대충 때우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코리안 드림을 갖고 한국에 왔는지는 모른다. 그들이 자국에서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모른다. 저자는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모순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를 드러낸다. “내가 만난 일부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에게 공짜 노동을 시키며 사실상 최저임금을 주지 않으면서 그마저도 주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쟤네(이주노동자) 못 사는 나라에서 왔어. 캄보디아에서는 한 달 최저 월급이 20만~25만 원인데 여기에서는 일고여덟 배 더 벌어가잖아. 그러니까 한국인과 똑같이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안 되지. 쟤네 월급 조금만 줘도 여기서 일할 거잖아. 쟤네 퇴직금도 받잖아. 한국만 손해 본다니까."”* 한국이 손해보고 있는 걸까?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을 고용한 사람들은, 2주 정도 국내 사람들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지원자가 없을 경우,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인력이 들어온다는 건, 그만큼 해당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국내 사람들이 없다는 의미다.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건, 그만큼 사업주가 손해를 본다는 의미다. 사업주에게 고용허가제는 최저임금으로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기회다. 어찌보면 그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봐야 한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고용을 신청하는 사업주에게 내국인 구인 노력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 취지 자체가 내국인(선주민)이 일하지 않는 곳에 외국인(이주민)을 고용한다는 것이다. 선주민이라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지 않을 곳에 이주노동자가 그 자리를 촘촘히 메우고 있다. 여동수 센터장의 말대로, 한국과 사업주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으로 구하지 못할 노동력을 이주노동자가 제공하니 더 혜택을 보는 셈이다.”* 한편, 이런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외국인들이 국내 일자리를 모두 차지한다고 말한다. 이는 진실과 다르다. “기본적으로 고용허가제는 인력이 부족한 한국의 사업장에 이주노동자가 단기로 와서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이 제도는 내국인 구인 노력을 의무화한다.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은 13일 동안, 농축산업과 어업은 7일 동안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공고를 낸 뒤에도 일손을 구하지 못할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내국인(선주민)이 일하러 오지 않는 곳에 외국인(이주민)이 일을 하도록 돕는 제도인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그것도 최저임금만 받으면서 일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외국인이라고 해서, 저개발 국가에서 왔다고 해서 그들을 함부로 대해야 할까? 책, <깻잎 투쟁기>는 우리나라가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고발하며 부끄럽게 만든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지난 3월, 모 국회의원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월 100만 원 만 주고 일종의 베이비 시터를 고용하자는 말을 했고, 법안 발의를 했었다.  법안의 취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낮은 가격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맞벌이 가정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다. 월 100만 원의 돈이 코리안 드림을 갖고 오는 사람에게는 큰 돈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최소한의 생활안정과 노동의 질적 향상을 꾀한다는 최저임금의 취지와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부분이 맴돌았다. "쟤네(이주노동자) 못 사는 나라에서 왔어. 캄보디아에서는 한 달 최저 월급이 20만~25만 원인데 여기에서는 일고여덟 배 더 벌어가잖아. 그러니까 한국인과 똑같이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안 되지. 쟤네 월급 조금만 줘도 여기서 일할 거잖아. 쟤네 퇴직금도 받잖아. 한국만 손해 본다니까."* "저개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컨테이너 집, 비닐하우스 집,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집에서 사는 것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자 일종의 차별적 착각이다. 그들도 자신들이 사는 집이 더럽고, 열악하고, 좋지 않다는 것을 당연히 안다."* 그들이 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 와서 일을 하는 건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해 그에 합당한 돈을 벌기 위해서다. 결코 차별을 받기 위해 온 게 아니다. 최소 같은 사람이면, 같은 조건에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걸 인식해야 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과거 우리나라는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중동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돈을 벌어왔다. 그 돈을 통해 우리나라가 성장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그들의 가족들은 밥을 배불리 먹고, 교육을 받고, 삶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지난 과거를 생각하고 돌아본다면 최소한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들에게 더이상 차별적인 대우와 차별적인 법률을 만들어서도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개인적으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산업계는 더이상 돌아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선진국으로 진입한 만큼, 우리나라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2024년에 새롭게 들어오는 16만 5천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한민국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코리안 드림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이 한국에 갖고 있는 꿈과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깻잎 투쟁기>(우춘희/ 교양인/ 2022) p. 42, 92, 93, 125
미국과 중국의 <예정된 전쟁>?
제목 : 미국과 중국의 <예정된 전쟁>?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 대한민국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GDP 13위 국가다. 이는 아시아 기준으로 4위에 해당한다. 아시아 국가 중 우리나라보다 높은 GDP를 가진 나라는 중국, 일본, 인도다. 국방력도 결코 약하지 않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국방력은 전 세계 6위다. 이는 아시아 기준으로 3위에 해당한다. 중국, 인도가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다. 국방력은 현역 군인 수, 예비군 수, 주력 무기, 방어 시스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매겨진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만을 바라본 수치다. 우리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분명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니나라를 둘러싸고 있다. 우리나라 주변국들의 GDP와 국방력 순위를 보면 아래 사진처럼 나온다. 한반도 주변국 국방력/ GDP 순위  (자체 제작) 대한민국의 위치는 기구하다. 위로는 북한이 있고, 또 그 위로 중국과 러시아가 있다. 옆에는 일본이 있고, 바다 건너에서 온 미국은 대한민국과 일본에 군사기지를 두고 왕래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보면 결코 경제력과 국방력이 약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주변국과 비교하면 작아질 수밖에 없다. 한편, 현재 측정된 우리나라 국방력 6위에는 모순이 있다. 해당 순위는 핵무기를 제외한 순위다. 핵을 포함한다면, 전 세계 국방력 순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래 사진은 현재 우리나라 주변국의 핵 무기 보유 추정치를 시각화한 것이다. 한반도 주변국 핵무기 보유(추정) 순위 (자체 제작) 가장 많은 건 러시아로 6,372개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다음은 미국으로 5,800개, 중국 320개, 북한 35개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해당 상황이 보여주는 건, 우리나라가 남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나라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가장 많은 수출을 한다.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을 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북한은 핵이 있고, 우리는 없다.  북한이 직접적으로 핵을 들고 도발을 한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대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핵무기를 자력으로 만들 수 없다면, 핵을 갖고 있는 나라를 우리 편에 둬야 한다. (물론 개인적으론 핵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썬 미국이고, 그렇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미국과 손을 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 상황은 놓을 수 없는 이해관계가 있는 두 나라의 관계가 상충할 때다. 미국과 중국, 중국과 미국. 두 나라의 관계가 껄끄러울 때, 우리나라 역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미・중 두 나라가 무역분쟁을 한지는 이미 오래 됐다. 계속되는 이해관계 상충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미 1년 이상이 지났고,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진행 중이다. 여러가지 전쟁의 상황 중 우리나라를 둘러싼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될지 주목해야 한다. 어떤 것이 트리거가 되어 실제 전쟁으로 발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예측할 뿐이다.  예측을 하기 위해선 현재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한다. 오늘은 미국과 중국이 어떤 상황인지, 정말 전쟁을 할지 말지, 전쟁을 하건 안 하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할지 <예정된 전쟁> 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지배세력 스파르타와 신흥세력 아테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전 431년 경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은 약 30년 간 지속됐다. 결과는 스파르타의 승리, 하지만 멈추지 않는 출혈로 두 국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생생히 목격한 아테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두 국가의 전쟁을 보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지배세력과 신흥세력 간의 경쟁구도가 과열되고, 이로인해 미묘하게 생기는 긴장감으로 점점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다는 뜻이다.  전쟁을 간단히 요약하면, 당시 스파르타는 지배세력이었고, 아테네는 신흥 성장 세력이었다. 아테네는 국력이 강화되고, 경제가 커질수록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고, 이에 두 나라 간 긴장감이 고조됐다. 결국 이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침공했고, 서로가 큰 피해를 입고 스파르트가 승리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을 생생히 목격하며 이 전쟁의 핵심을 한 번에 요약했다. 그는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지배세력인 스파르타에게 신흥세력 아테네의 부상은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움이 스파르타의 아테네 침공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자체제작 중국과 미국의 <예정된 전쟁>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두 국가 미국의 대표적 국가 안보, 국가 정책 분석가인 그레이엄 엘리슨은 자신의 책 <예정된 전쟁>을 통해 미・중 두 나라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떠오르는 신흥세력인 중국이 미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도전하고, 이에 따라 미・중 두 나라의 긴장감이 고조되어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선박, 철, 알루미늄, 가구, 옷, 섬유, 휴대전화기, 컴퓨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인 중국은 세계 제조업의 최강자가 되었다.” 라며 “2015년에 중국 소비자들은 자동차 2.000만대를 구입했다. 미국보다 300만 대가 더 많은 수치.”라며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점점 앞질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이 단순한 구매력 상승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오산이다. 이는 중국이 미국을 앞장서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다. 중국의 성장을 경고한 건 그레이엄 엘리슨 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금융 정보 신문사 <마켓워치>는 “미국은 이제 2인자" 라는 기사를 쓴 바 있다. 중국이 구매력평가(PPP) 부분에서 이미 미국을 앞장섰음을 지적하는 기사다. PPP는 경제학자들이 실질적인 경제지표로 생각하는 지표 중 하나다.또한 파이낸셜타임즈는 IMF 자료를 인용하여 2014년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앞질렀다고 말했다. 이 기사 역시 중국이 미국의 경제 규모를 앞장섰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세에 힘입어 중국은 한 세대 전만 해도 중국인 100명 중 90명이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100명 가운데 3명도 안 된다. 또한, 중국은 1981년과 2004년 사이에 5억 명의 사람들이 극심한 빈곤에서 탈출했다. 과거 미국과 소련 냉전 시대는 군사력의 증가가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경제력의 강화가 패권을 위한 주요 요소로 활용된다. 경제고 곧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막강한 경제력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일대일로, 세계로 뻗어가는 중국 중국은 지난 2013년 9월, 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 65개국, 44억 인구를 연결하는 일대일로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규모는 1조 4천 억 달러(한화 약 1.820조)이며, 90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포함되어 있다. 1조 4천 억 달러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을 재건하기 위한 진행한 마셜플랜보다 큰 규모다. 투자자이자 전 IMF 경제학자인 스트빈 젠에 따르면, 인플레를 감안해도 해당 금액은 마셜플랜 열 두 개를 추진할 수 있는 비용이다.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 위완화의 세계화를 더욱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 패권에 도전해 중국 위완화를 기축통화 지휘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통해 달러와 금을 연동시켜 기축통화 지휘를 얻고, 금본위제 폐지 후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할 수 있도록 해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했던 것처럼 중국 역시 자국 화폐 영향력을 점점 키우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 사업에는 미국의 우방국으로 불리는 나라들도 참여했다. 유럽에선 이탈리아가 참여했었다. 이런 현실은 “중국의 경제 네트워크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으며. 오랫동안 미국의 우방이었던 아시아 국가들조차 미국에서 중국 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식으로 세계 힘의 균형을 바꿔놓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경제가 중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아시아투자인프라은행(AIIB) 중국판 세계은행 중국은 지난 2013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설립했다. AIIB는 개발이 필요한 나라와 지역에 융자를 해줘, 항만 건설, 도로 건설, 탄광 개발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103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이 AIIB를 설립한 이유 역시 미국에 맞서기 위해서다. AIIB는 중국판 세계은행(WB)이라고 불린다. WB는 미국 주도로 만들어졌고,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무역기구(WTO)와 함께 세계 3대 경제 트로이카로 불린다.  세계은행은 역시 AIIB와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 등에 필요한 항만, 도로, 건설, 탄광 개발 프로젝트에 저금리로 융자를 지원해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분명 좋은 의도이지만, 여기에는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만큼, 해당 국가는 미국의 경제권에 속하거나 영향권에 들어서게 된다. 항만, 도로 등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지속성도 길다. 또한, WB는 미국에게 유리하게 운영된다. 한 예로 “WB는 운영과정에서 무언가를 바꿀 때 유일하게 미국에만 거부권을 부여한다.”*  이는 미국에 유리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고, 여기에 반하는 건 미국과 대립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에 불만을 품고 세계은행에서 더 많은 투표권 달라고 주장한 것이 ‘중국'이다. 물론 이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고, 이에 중국이 독자적으로 설립한 은행이 바로 AIIB다. 미국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투표권을 넓히는 게 아니라, 중국이 만들어 놓은 판에 다른 나라들을 참여시키고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다. 2015년에 문을 열기도 전에 57개국이 가입했다. 중국의 개발 분야 영향력은 이미 큰 상태였다. AIIB가 설립되기 전부터 이미 중국개발은행이 세계은행을 앞질러 가장 많은 개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한 은행이 된 상태였다. AIIB에 초기 자본으로 300억 달러를 투입한 것을 포함해서 2016년에 중국의 세계 개발 금용 총자산은 서방의 여섯 개 주요 개발 은행의 개발 자금용 총자산을 합한 금액보다 1,300억 달러 더 많았다. 베이징의 생각은 무엇인가? 중국과 교류하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이고, 중국을 제 1무역 파트너로 꼽는 나라들도 많다. 중국과의 교역이 많아지고, 경제적 영향력이 커졌다는 건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아시아 전문가로 활동하고, 30년 간 미국정부에서 일하며 전문성을 키웠던 ‘스티븐 보즈'는 2009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요청으로 북한 특사로 파견되어 아시아 국가를 순방한 바 있다. 순방에서 돌아온 그가 한 말이 중국의 영향력을 한 눈에 보여준다. 그는 아시아 순방을 “놀라울 정도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경험"이었다며 “(아마 1998년 이전) 예전에는 어떤 위기나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나 아시아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했던 질문이 ‘워싱턴의 생각은 무엇인가?’였는데, 지금은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베이징의 생각은 무엇인가?’”* 일대일로와 AIIB 프로젝트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대항이다. 미국이 만들어 놓은 세계질서를 중국식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상황이 정말 위험한 건 아닐까? 16번 중 12번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우선, 지금 궤도에서 수십 년 안에 미국과 중국 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그냥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다”* 그레이엄 교수는 책을 통해 중국이 서양 침범 이전에 아시아에서 미친 영향력을 회복하고, 주변국들로 부터 강대국으로 인정받고, 국제기구에서 다른 강국들에게 중국에 대한 존경을 표하게 하는 것, 신장, 티켓, 대만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 말을 사실화하듯,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확정했고, 그 의지를 더욱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과도한 자기중심적 사고는 자신을 현실보다 높게 평가하게 만든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스스로를 부풀리는 사람을 누군가가 봤을 때 실제로 부풀어 오른 모습이 진짜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게 된다면, 그리고 만약 그 사람도 그에 걸맞는 힘을 가췄다면 언제 방아쇠가 당겨지질지 모른다. 그레이엄 엘리슨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지난 500년 간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사례 16개를 조사했다. 그 결과 16개 사례를 발견했고, 12개가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미・중의 패권 전쟁이 17번째 투키디데스 사례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전쟁, 안 할 수는 없을까? 우리나라는? 그레이엄 교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에서 뻐져나올 수 있는 12개 열쇠를 제시한다.* 그중 핵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간단히 요약하면 두 나라 모두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서로가 공멸로 이어지고, 그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한반도 평화와 함께 조목할 만한 점은 그레이엄 교수가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미・중 두 나라 간의 패권 전쟁이 한창일 수록, 미국 입장에선 동맹국과의 관계가 더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맹국이 미국의 우방이 되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할까? 국제사회에 정답은 없다. 국제사회 흐름을 잘 읽고, 살얼음으로 된 외줄타기를 잘 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론 어느 한 쪽을 너무 자극하는 방향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느 한 나라가 항상 우리편이라는 생각 역시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하게 중국을 겨냥한 발언을 하는 것도, 과도하게 미국을 영원한 우방이라고 말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양쪽 모두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우리나라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외교의 중요성이 커지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정부가 어떤 외교를 펼치는지 잘 살피고, 지켜봐야겠다. *<예정된 전쟁> (그레이엄 엘리슨/ 세종서적/ 2018) p.20, 55, 58, 287~361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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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는 연결되어 있다
제목 : 참사는 연결되어 있다 1,134명이 사망한 참사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위치한 ‘라나 플라자'가 붕괴했다. 건물은 오전 8시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쏟아지는 천장을 피하지 못했다. 1,134명이 사망했고, 2,5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참사로 기록 된, ‘삼풍 백화점' 참사 사망자가 502명이었다. 단순 수치로 2배에 달하는 참사였다. 수치로 고통의 무게를 잴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 역대 최악의 참사보다 2배 이상의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참사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덮쳤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무너진 라나 플라자 라나 플라자는 붕괴할 수밖에 없는 건물이었다. 붕괴 당시 라나 플라자는 총 9층 높이였다. 하지만, 애초에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주인 소헬 라나(Sohel Rana)는 상업용 4층짜리 건물로 2007년에 처음 지었다. 지하는 주차장 겸 소헬 본인의 사무실이었다. 1층엔 다른 사무 공간과 상업 건물, 2층엔 상점과 은행들이 들어서 있었다. 3~4층은 다국적 의류 기업의 옷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이곳에서 주로 하청을 받아 옷을 생산했다. 2023년 기준, 방글라데시의 의류 산업은 전체 GDP의 16%를 차지할 정도로 큰 산업이다. 수출 규모로는 중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다.  이렇게만 보면 전혀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사무실이 있고, 은행이 입점해 있고, 봉제 공장이 있는 건물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건물이 무허가 건물이었다는 점이다. 무허가 건물이라 정부의 관리 감독이 소홀했고, 건물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건물에 입점하면 할수록 건물주는 돈을 벌게 되어 있다. 이에 소헬 라나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무허가 증축을 이어간다. 4년 동안 총 4층의 건물이 무허가로 증축됐다. 증축을 제재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 무허가 건물에 증축 허가와 관리 감독이 있을리 없다. 무리한 증축은 붕괴 원인이 됐다. 건물이 올라갈 수록, 지반은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건물 옆에 금이 가고, 기둥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갔다. 사고의 징조였다. 건축 엔지니어인 압둘라 라자크 칸은 건물주인 소헬 라나에게 건물 붕괴 위험이 있으니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건 소헬 라나 자신 뿐이었다. 생계를 위해 출근했던 3,000여 명의 사람들은 2013년 4월 24일 오전 8시 45분 무너지는 건물에 파묻혔다. 파묻힌 사람 중 1/3은 사망했고,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깔린 사람들은 팔을 절단하며 구조됐다. 비록 살아 남았지만, 그들이 참사 이전과 동일하게 살아간다고 말할 수 없다. 무너진 잔해에 척추를 다쳐 걸을 수 없는 상황에 먹여 살려야 하는 자식을 위해 걷게 되기를 소망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라나 플라자 참사는 이익을 위한 무리한 증축에, 충분히 대피 시킬 수 있었음에도 책임지지 않은 인재가 겹친 참사였다. 건물주였던 소헬 라나는 참사 직후 인도로 도망치다가 잡히기 도했다. 그리고 참사 3년 만에 재판장에 섰다.  어느 한 사람의 이익, 사회의 부정 부패가 극심할 수록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들이 피해를 받는다. 이익 앞에 그들의 안전과 생계는 안중에서 사라진다. 애초 고려 대상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참사를 겪고서도 방글라데시 여공들은 또다시 옷을 만들러 가야 했다. 나라 전체 GDP의 16%를 차지하고, 전 세계 수출 2위를 차지하는 산업인 만큼 생계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참사 당일, 붕괴 조짐을 일하는 노동자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일터로 보내졌다. 괜찮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건물이 무너졌다. 참사의 책임이 어느 한 사람에게만 있지는 않다 참사의 책임을 어느 한 사람에게만 물게하는 건 자칫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 책임이 있을 수는 있으나, 온전히 그 사람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라나플라자 참사도 마찬가지다. 참사가 대대적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참사 희생자들이 어느 브랜드의 옷을 만들고 있느냐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글로벌 SPA 브랜드 들의 옷을 만들고 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시민들은 온라인 상에서 누가 내 옷을 만들었냐라며 #whomademyclothes 해시태그를 달기 시작했다. 일부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오기도 했다. 참사가 발생하고 난 뒤, 방글라데시에 가장 많은 하청공장을 가지고 있던 H&M에 변화를 촉구하는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라나플라자에서 일했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의류 노동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3,000다카(월 4만 원)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는데, 참사 이후 국제사회 압박과 최저임금 인상 시위에 못이겨 월 최저임금이 5,300다카(7만 원) 수준으로 올랐다.  또한 H&M은 방글라데시 현지 하청업체들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고층 빌딩의 스프링 쿨러 설치, 비상계단 사이 방화문 설치 등이었다. 또한,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1500곳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클린 클로즈 캠페인은 방글라데시에 있는 H&M 공급업체 32곳을 조사했는데, 이들은 H&M과 이른바 골드 파트너십 관계에 있었다. 이 대기업에서 특히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생산하는 공장을 선별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클린 클로즈 캠페인은 이들 공급처의 건물에서 안전에 미흡한 점 518가지. 화재에 취약한 점 836가지, 전기 안전상의 문제 650가지를 발견했다. 그런데 H&M은 2014년 지속 가능성 보고서와 웹사이트에 건물 안전 및 화재 안전과 관련한 모든 조치를 기한 내에 모두 시행했다고 선전했다.”*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참사는 돈을 벌려는 개인의 탐욕과 값싸게 옷을 생산하려는 기업의 어찌보면 당연한 논리에서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안전은 비용으로 치부됐고, 최대한 아껴야 하는 것이 됐다. 그렇게 싼 값에 생산 된 옷을 사 입는 건 방글라데시 현지인들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같은 선진국 나라들이었다. 참사 당시 시간당 24센트 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일터로 나갔고, 여전히 저임금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가 입는 옷도 없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처음 들어보는 나라의 참사가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 이유다.  방글라데시 파업, 생계를 위한 싸움 현지시각으로 지난 9일, 방글라데시는 파업에 돌입했다. 현재 월 최저임금인 9만 원을 올려달라는 요구에서 비롯됐다. 지난 2019년을 마지막으로 코로나 여파로 인해 최저임금이 4년 째 동결됐는데, 그 과정에서 물가는 끊임없이 상승해 생계가 어렵다는 이유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측은 월 27만 원을 요구했고, 정부는 14만 원을 제시한 상태다. 이러한 요구에 반발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세계의 의류 공장으로 불리는 방글라데시가 파업하면, 옷 값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현재까지 약 300개 의류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다. 파업이 계속된다면 어쩌면 이들이 만든 옷을 입는 우리들의 옷 값도 비싸질지 모른다. 정부와 노조는 계속해서 협상을 하고 있고, 가장 많은 공장을 가진 H&M은 "근로자와 가족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새 최저 임금을 지원한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임금 인상 계획은 공개하지 않았다. 어느 한 나라의 참사가, 어느 한 나라의 파업이 우리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옷을 만들다가, 우리가 먹을 음식을 재배하다가 참사를 맞은 것일 수도 있고, 파업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적인 참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요즘, 나와 관련한 참사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심을 갖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참사가 아닐지라도,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파업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우리와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해당 참사의 맥락을 제대로 살펴보고, 나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작은 관심이라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내가 먹고, 입고, 마시는 무언가를 위한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장 환경주의>(카트린 하르트만/ 에코리브르/ 초판 2쇄/ 2019)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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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참사로 탄생한 이름
제목 : [함께 기억] 참사로 탄생한 이름 그 날은 수요일이었다. 대학생이던 나는 대학교 강당에서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단에선 교수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설교는 12시 30분에 끝났다. 다음 수업이 1시 15분인 터라, 내 점심시간은 45분 밖에 되지 않았다. 설교가 끝나면 제일 먼저 강당을 나가 점심을 먹고, 도서관 소파에 누워서 어제 못 잔 잠을 자려고 했다. 설교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고, 교수가 한 말에 눈을 떴다. “지금,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학생들이 갇혀 있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핸드폰을 잘 확인하지 않는 나는 그제서야 핸드폰을 꺼내 뉴스를 확인했다. 진도 앞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기사였다. 다행히 안에 있던 학생들은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다행이다 생각하고 핸드폰을 덮었다. 불과 몇 시간 뒤, 앞선 전원 구조 소식이 오보라는 기사를 접했다. 수 백명의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으며, 구조가 시급하다는 기사가 연신 올라왔다. 구조하고 있다는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빠져나왔다는 기사만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도 구조하고 있다는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상식이란 ‘정상적인 일반인이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지식’을 말한다. 가장 먼저 도망친 세월호 선장, 수 백 명의 죽음을 오보하는 언론, 7시간 만에 등장하는 대통령,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던데, 라는 말. 내게 이 모든 게 상식 밖의 일이었다. 선원들을 우선 해야 되는 게 선장 아닌가? 언론은 도대체 뭘 보고 기사를 쓰길래 수 백 명의 목숨을 구조했다는 오보를 냈을까?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보고를 받지 않았나? 보고가 되지 않은 건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발언이 아니라, 어떻게든 구해라 라는 말이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상황에 대비하고 대응하라고 정부가 있고, 부처가 있고, 시스템이 있는 거 아닌가? 이 모든 상황에서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은 “세상이 이상하다"였다. 그 순간 언론에서 비추는 모습이 과연 진짜일까 의심이 들었고, 나는 내 눈으로 직접 그 상황을 봐야겠다 싶었다. 다음 주가 중간고사였지만, 아랑 곳 않고 진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한량없다' 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자식 잃은, 아니 정확히 당시에는 아직 자식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부모들을 보면서 뼈에 새겨지게 느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당시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이유는, 유족들의 모습을 담을 적절한 단어가 뭔지 알 수 없어서였고, 비통해 하는 그 분들의 모습을 어줍잖은 단어로 품을 수도, 그 마음을 모두 헤아리고 이해할 수도 없어서 였다. 당장 서울로 올라가면 가족이 있고, 침대가 있는 방에 누울 수 있는 내가 무슨 말과 마음으로 그들의 비통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비통함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여전히 그 분들의 모습과 마음을 품을 수 있는 단어를 알지 못한다. 물 흐르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까지. 세상 만물의 소리를 담을 수 있고, 가장 과학적인 언어가 ‘훈민정음' 한글이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로, 억울한 것이 있으면 직접 한글로 써서 임금인 자신에게 항소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라는 세종대왕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 어떤 억울함도 표현하고 품을 수 있는 한글이지만, 한 가지 없는 단어가 있다. 바로 ‘자식 잃은 부모'다. 부모 잃은 자식을 일컬어 ‘고아孤兒’라고 하고, 남편 잃은 아내를 ‘과부寡婦’, 아내 잃은 남편을 ‘환부鰥夫’라고 한다. 하지만 자식 잃은 부모를 칭하는 단어는 없다. 부모가 자식을 잃은 것은 세상을 잃은 것이고, 자기 자신을 잃은 것과 같다. 자신 보다 귀한 자식을 잃은 사람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그 비통함은 감히 말할 수 없다. 그 어떤 억울함도 호소하면 들어준다고 말한 세종대왕이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만은 도저히 들어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애초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고, 그 단어를 만들지 않은 게 아닐까. 연극 <먼데서 오는 여자>에 이런 대사가 있다고 한다. “추모하고 애도하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추모하고 애도하고 기억하게 해달라고 싸우다가 10년이 흘렀습니다." 세월호 침몰이 있은 후, 유족들을 표현할 단어가 없는 것처럼 그들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정부는 없었다. 못 들어준 것이 아니라 안 들어줬다. 오히려 그 슬픔이 사회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듯이 외면했다. 유족들은 계속해서 진상 규명을 외쳤고, 함께 기억하자고, 기억해 달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를 만들자고 싸웠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억울함은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또다시 마주했다. 이번에도 정부의 시스템은 발휘되지 않았고, 책임 없다는 말과, 참사가 아닌 사고이며, 경찰 더 투입됐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정부를 보고 있다. 2014년 4월 16일의 부모님들처럼, 2022년 10월 29일의 부모님과 형제, 자매, 남매. 친구들과 예비 신랑과 예비 신부들은 또다시는 ‘한량없는' 슬픔에 잠겨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나는 참사가 있는 곳에 가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 앞에서 아무말도 할 수 없을 지언정,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직접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은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참사를 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혼자라도 참사 현장에 가서 현장을 본다. 그리고 ‘나’라는 작은 사람에게라도 그 ‘햔량없는' 고통이 분담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량'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참사로 탄생한 이름이다. ‘나’라는 사람의 한계와 그릇은 명확하지만, 이 작은 한계와 그릇으로 고통과 억울함이 나눠질 수 있다면, 또 그 사람들이 모이고 모이면 유족들의 고통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참사를 통해 있어선 안 될 이름들이 생겨났다. 세월호 아이들, 세월호 세대, 세월호 유족, 이태원 참사 유족, 이태원 참사 피해자 등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외에도 국내에는 크고 작은 참사들이 발생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와 조금 잊혀진 성수대교 붕괴 참사와 삼풍 백화점 참사 등이 있다. 참사를 통해, 세상에 있지 말았어야 할 이 이름들이 생겨났다. 우리가 그 이름을 잊어버리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그 이름을 잊는 날은 참사의 원인이 된 시스템의 부재와 정비, 책임자들의 사과가 있을 때가 그들의 이름이 잊힐 수 있을 때가 될 것 같다. 그때까지는 우리에게 그 참사가 있었다는 걸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내가 갈 수 있다면, 참사의 현장을 언제고 마주하고 싶다. 글을 쓰고 있는 10월 29일, 사고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과 추모식이 있다는 서울광장을 다녀왔다. 불과 30초면 다 걸을 수 있는 그 골목에서 수백명이 압사했다는 게 다시금 믿기지 않았고, 수 많은 사람이 모인 광장에 책임자들이 나오지 않은 게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세월호 이후 8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한게 없어 보이고 오히려 퇴보한 듯한 상황이 안타까웠다. 나는 여전히 유족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조차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인故人’을 추모하고, 글을 쓰는 것 뿐이라는 점이 부끄럽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 분들의 고통과 억울함, 비참함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유족들의 이야기를 책임자가 듣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유족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책임을 물어주면 된다고 믿는다. 부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억울함이 조속히 풀어졌으면 좋겠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간절히 바란다. 참사로 희생된 분들과 그 유족분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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