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나설 때부터 심상찮았는데, 민주주의 정신마저 훼손시키는 것 같아서 두렵네요.
지금 한국 사회의 노벨상 열풍의 근저에는, 한강의 수상은 곧 ‘케이 문학’의 성취라는 인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강의 작품은 한국 문학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되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노벨상을 받은 백인 남성들처럼 한강의 문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이다. 한강을 한국 문학이든 여성 문학이든, 특정한 범주에 가둘 필요가 없다.
정희진님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주셨군요. 한강 작가님은 그 작가님 작품 그 자체로써 평가받아야할텐데 우리 것 세계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부터가 이미 서구로부터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미 식민주의를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생각할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SNL 코리아가 하는 개그는 하나같이 비열하고 저급합니다. 유행한다고 싶으면 희화하고 조롱하면 다 웃긴다고 믿는 건가요.
프로그램 구성과 아이디어를 짤 때 인권 감수성과 상대를 생각하는 품격있는 코미디보단 조회수(시청률) 올리기에 혈안이 된 것은 아닌가 싶고요. 이마저도 논란을 부추겨 조회수를 높이려는 계산된 전략이라면, 이 프로그램은 불매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고, 이 조차도 다가갈 수 없는 이들을 돕는 정책이 시작된다면 교육 받는 이들의 수준과 관심도는 지속 가능성으로 이어질 마중물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네이버웹툰은 그동안 <복학왕>의 여성혐오 논란과 그에 따른 사과와 수정, <참교육>의 인종차별 대사와 해외 공개로 인한 국내외적 비판과 장기 휴재 같은 굵직한 일을 적지 않게 겪어왔음에도 특정 대상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선별하고 걸러낼 가이드라인은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돈이 되면 혐오로 장사해도 된다는 논리가 공고한 것 같아요. 여성은 전부 그래라며 일반화하기 쉽고, 여성 혐오하기 좋도록 만든, 남성들의 망상이 그득한 웹툰으로 보여집니다.
자신에게 알맞은 '가정'의 모습은 무엇일지, 내가 꿈꾸는 '가정'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정상성'에서 벗어난 가정을 꾸리고 지키는 이들이 사실 '건강한 가정'이 아닐까. 진정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정확히 따르려는 모습들이 '건강한' 것 아닐까. 성찰과 고민 없이 가정을 꾸리는 것은 그저 가부장제에 놀아나는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다.
10월 27일 집회에 모인 (보수)기독교인들은 100개 기도문을 갖고 신께 기도 드리겠지요. 그런데, 기도 제목 하나하나가 전부 소수자 배제를 저의로 깔고 있네요. 이들이 바라는 ‘건강한 가정’ 과 ‘거룩한 나라’ 의 정의는 가부장제 강화로 성역할을 고정시키고 편견을 고착화 시킴에 지나지 않습니다.
쿠팡은 해마다 여•야 정당 보좌진 및 대통령 행정관 인사를 영입해 왔습니다. 대관팀 임원진으로 스카웃하여 요직에 앉혔을 때 가져다주는 이점은 이미 국회와 오랜 관계를 쌓아온 이들이 국회를 견제하기 유리하기 때문이죠. 인맥정치가 국회 밖에서도 적용되자 해마다 발생한 산재를 묻어버린 것 같아요.
사상구 주례동. 형제복지원이 있던 자리입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는데, 옛날 어르신들은 그 곳을 보면 지금도 형제복지원을 기억하고 계시지요. 독재정권 훈령 하에 부정한 부를 축적해온 박인근 원장은 원생들을 잡아다 강제노역과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들을 마다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그 피해의 여파와 생존자의 고통은 오랫동안 남아있구요.
김건희씨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바로 구조적 성차별의 명백한 증거다. 아무리 ‘무식하고 철이 없어도’ 오직 남자를 통해서만 권력에 접근할 수 있고,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사회를 우리는 성차별이 구조화된 가부장제 사회라고 부른다.
결국 보상금을 수령하기 위해선 작가가 직접 신청해야만 하는데, 자신의 작품이 사용됐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저협이 작가에게 알리는 방법도 있지만, 앞선 한강 작가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다지 적극적이진 않다. 장강명 작가도 지난달 6일 페이스북에 "자기 글이 교과서에 실렸다는 걸 저자가 이렇게 늦게 아는 상황이 이상하다"며 "저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 관례는 부조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총선, 대선 때는 투표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교육감 선거는 관심이나 주목도가 너무 적어서 투표하러 들어간 내내 어색한(?)분위기를 감지했어요. 투표하러 온 사람은 저 뿐이고 참관인과 직원들로 가득한 이 곳에서 관심이 이토록 적어서 어쩌나 싶었는데, 총 투표율 결과가 역시…
다른 이야기지만, 교육은 멀리 내다보고 관심 가져야할 문제임을 자각하게 됩니가. 최근 치명적인 사회적 범죄가 청소년을 파고들고 입시 경쟁은 가속화되고 능력주의는 강화되는 와중에 공교육은 너무 힘을 잃어버린 것 같아 슬퍼요. 오죽했으면 공교육보다 사교육 강사들에게 입시와 솔루션을 제공받고 위탁받으려는 이들이 늘어나는 일이 생길까요.. 사교육이 공교육의 부족함을 보완하는 게 아닌 공교육을 너무 무력하게 만드는 것 같고요.
고립과 자활 사이 연결고리가 여전히 닿지 못하는 이들이 많군요. 복지 예산의 확충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들을 꺼내어 사회로 다가가게 하도록 관심이 필요해보여요.
책임자는 왜 처벌받지 않는건지, 왜 피해자는 고립되어 혐오세력으로부터 괴롭힘 받는건지 이 사슬은 도대체 끊어지지 않는 건 왜 인건지 답답하고 먹먹합니다.
2010년에 처음으로 소개된 곳이 베트남이라니! 우리나라도 베트남 전쟁에서 가해자 입장에서 섰지요.. 그들을 마주할 때 너무 부끄럽지만 이들 역시도 한강 작가의 작품을 통해 존엄을 생각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소개한 베트남 번역가 황하이번님께 감사드립니다.
교보문고가 유통을 하면서 한강 작가 작품 대부분이 교보문고로 들어왔지만, 동네 서점에선 제대로 수급하지 못해 어떤 곳은 한 권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어요. 교보문고 유통에서 1종 당 10권으로 제한하는 조건으로 물량을 동네서점에 풀었다고들 하지만, 문제는 그마저도 너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대형서점과 동네서점, 서점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사양산업으로 접어드는 출판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곳인 것은 맞지만, 적은 파이를 두고도 누군가 더 차지하려는 독과점이 보이니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왜일까요.
이젠 쿠팡도 책을 납품하고 있는데..(그거 아시나요 한강 작가 책 18종 사전 세트로 예약 받아요) 대기업과 대기업의 담합 혹은 싸움으로 작은 동네서점이 힘을 잃고 스러질까 걱정입니다. 동네책방의 존재이유며 문화 사랑방 역할을 그저 낭만, 감성으로 치부하게하고 정가보다 10% 싸게사는 게 이득이라고 믿게하는 대기업의 전략도 피로감이 느껴져요. 둘 다 저마다의 좋은 점이 있지만, 반대로 좋지 않은 점도 있겠지요. 그러나 누군가 죽여서 나만 먹고 살자는 결국 또 다른 강자에게 먹잇감만 될 뿐일텐데 말이죠.
저는 노벨상의 수상을 넘어 대형서점의 독과점 문제도 한 번 짚어봐야하지 않을까도 생각해요. 대형서점을 통해 더욱 광고효과며 수익의 극대화 등의 이점도 있다지만, 동네와 사람을 잇는 동네서점에게 떨어지는 양은 너무 적어서 안타깝더라고요...
저는 김규나 씨의 악의가 담긴 평과 정치적 올바름이라 주장하며 그릇된 역사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몸, 기억, 광주시청 벽에 박힌 총탄과 칼자국처럼 각인된 고통을 직시하지 않으면 진실은 가려지고 왜곡됩니다. 80년대에 태어나지 않았어도 역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압니다. 그러나 정치는 이것을 왜곡하고 숨기고 조롱하죠. 그 틈에서 존엄을 찾고 살아야할 이유를 찾는 이들의 싹마저 잘라내면, 진정한 자유이고 평화인가요. 종북 빨갱이 좌파라는 색깔론을 입혀 얻는 이득은 혐오세력들의 잇속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