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인 네이버웹툰을 다룬 기사는 아니지만, 결국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보면 창작자의 태도와 수용자의 태도 사이 대화와 이해가 필요해요. 그 서사에 필요했는가 맥락을 다룬다면 수용할 수 있겠죠. (물론 비판적인 부분도 있겠다만) 하지만 단지 그냥, 누군가를 음해하고 싶어한다는 마음, 보여지는 현상만 보고 타자화해버리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고 보여집니다.
공감합니다. 내부 직원이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블라인드 글에서 1도 보이지 않아 답답합니다. 네이버를 비롯한 거대 플랫폼을 둔 기업은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인지요.
블라인드는 사실상.. 남초 커뮤니티와 다를 바 없어졌다고 생각해요.
악의적 차별이 퍼지는 방식은 여기에 있어요. 처음에는 밈처럼 놀이로 여기다가 나중에는 진실을 믿지 않게 되어버리는 거죠. 언어화된 논증방식이 아닌 하나의 고착화된 밈과 밈과 밈, 코드들에 익숙해져 버리고야 맙니다.
[출처] 웹툰 속 여성혐오 표현 (위근우 평론가님과)|작성자 지녕
2021.6.18 자 기사입니다. 기안84와 네이버 웹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사이인데요,
'우연이지만, 기안84가 그린 달팽이 인간의 황당함은 최근의 소위 ‘이대남’ 담론의 허구성과 조우한다. 왜 20대 ‘남성’들의 목소리만 세대론으로 대표되느냐는 정당한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같은 이들이 ‘이대남’ 혹은 ‘반페미’라는 미심쩍고 모호한 정체성으로 뭉뚱그려 호명할수록 정작 20대 남성 각각이 경험 중인 계층 사다리의 부재, 폭력적 군 문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할 정치적 대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다. ' 라는 기자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위 문제를 두고 진지하게 고찰한 이들이 웹툰 상에서는 부재한 것 같습니다. 누구나 보는 콘텐츠잖아요. 창작을 넘어 타자의 이해가 부재한 채 두루뭉술하게 문제를 넘긴 점, 창작 과정에서 발생한 부적절한 맥락을 보임으로써 창작자나 콘텐츠 플랫폼이 직접 나서 진심으로 독자들에게 사과하지 못한 점, 설령 어떻게서든 반성의 여지를 보이려는 이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음지의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와 조롱이 난무하도록 방임해둔 것도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작년 위근우 기자님 강의 내용이 생각나네요.
'취향도 정치적 맥락이랑 깔려 있다. 문화적 텍스트 창작과 수용은 이처럼 다양한 맥락 안에서 교환되며 그 과정에서 맥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논란의 웹툰('퐁퐁남') 은 여성을 주변화하고 (사물처럼 이용하기 쉬운 대상으로 치부), 스테레오타입을 강화 및 징벌서사->사이다 라는 방식으로 사용하지요. 남성 이용자들은 정치적 맥락(안티 페미니즘, 백래시, 퐁퐁남) 이라는 것을 악용하여 혐오를 양산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삼성을 시작으로 SK도 주요 임원진부터 6일 출근을 하고 있네요.. 6일 출근.. 저희 모부님 세대로 돌아가는 것일지… ㅠㅠ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029년에 2.9%가 된다지만 목표달성이 4년 늦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세입 기반이 무너진 게 문제인데, 윤정부가 낭비한 세금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고 변명이 구차해보입니다.
“ 광주, 우리시대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에서 타이거즈는 운명이자 자랑이었습니다. 그런 타이거즈가 7년만에 프로야구 챔피언으로 오릅니다.“ -한명재캐스터-
김 교수는 “정상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가치와 자격이 없는 대통령에게 받고 싶지 않다”면서 “무릇 훈장이나 포상을 함에는 받는 사람도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그 상을 수여하는 사람도 충분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상을 내어주는 이의 위치도 다시금 생각해보아야하는데, 지금 대통령은 왕좌에 앉아 취해있습니다.(drunken or greedy)
결국 또 돌고돌아 자본논리와 마주할 수 밖에 없네요. 영세한 동네서점 대형 서점이자 유통망까지 갖춘 교보나 예스 혹은 알라딘이 아니면 사실상 거래할 수 있는 곳이 전무하고 북센이나 송인 같은 곳도 코로나 기점으로 부도처리 되면서 동네서점이 책을 입고함에 있어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보문고는 안타깝게도 동네서점 상생을 위해 한시 대형서점 판매를 중단했어도 대응이 늦었고, 기만이란 인식이 심겨져 이미지가 도리어 나빠진 것 같습니다. 동네서점이 동네의 문화기지 전초가 되려면 유통망이 동네서점에 닿을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출판사의 대응도 그닥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아 안타깝고요.
한강 작가 수상은 분명 축하받을 일이지만, 축하에 드리운 유통문제도 분명 상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기사 제목도 격하게 쓸 정도로 보면 진짜 SNL은 폐지해야할 것 같습니다. 쿠팡플레이라는 자본을 등에 업었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안일함과 뭘 해도 조회수는 나온다는 방만함을 가진 채 혐오를 만드는 건 아닌지요.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여야하냐는 더러 의견도 있겠지만, SNL이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회개라는 뜻부터 모호합니다. 잘못을 뉘우쳐 고친다는 말의 뜻엔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내가 한 게 없는 것 같다, 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것 같단 죄책감에 회개란 말로 기도했겠죠?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니 한국 교회는 ‘회계‘ 에 관심이 많습니다. 돈과 위계 그리고 권력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혐오합니다. 신께서 내려주신 사랑하라는 율법은 어디에 있나요.
중국- 대만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러시아-우크라이나 같이 큰 전쟁과 더불어 지구촌 곳곳에 내전이 격화되는 중인데요, 북한군이 러시아 파병이 결정되면서 전쟁의 도화선이 우리나라까지 미칠 것 같아 걱정입니다.
기사를 읽고 떠오른 바를 일기로 적었습니다.
일부를 옮깁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혼인평등을 위한 법제화에 다다르기까지 고초를 겪은 건 성소수자들이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이 외치는 ‘정상 가족’ , ‘건강한 가족’ 범주에도 속하지 못하기에 법적 보호나 위급시에 병원에 조차 보호자 신분으로 반려인을 보호할 수도 없다. 법적인 제도를 제발로 찼고 스스로 핍박받길 택한 이들이니 어쩔 수 없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겠다. 이 또한 혐오인 줄 모른 채.
그들이 내뱉는 말에 서린 감정에 의미가 담기어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단체에 정당성이 쥐어진다. 권력이 스민 말. 위계가 서린 말에 천국과 지옥이란 경계가 그어져버렸다. 천국을 진정으로 갈망하는 이들은 역설적으로 지옥을 만들었다.
10.27 대집회가 끝난 자리에 이어서 전광훈의 극우집회가 이어지네요. 환장의 연대입니다.
‘책을 줄이더라도 이용자가 찾는 도서관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주장’과 ‘아무리 많은 사람이 이용해도 본래의 정체성을 잃는 순간 자멸할 것’이란 주장 사이의 접점은 어디인가. 생사 기로에 선 종이책들의 가치를 평가하고 보존 여부를 판단할 전문 인력은 어떻게 갖출 것인가. ‘책의 집’에서 책을 추방한 ‘미래형 도서관’이 추구하는 미래란 무엇인가. 쫓겨난 책들을 무조건 없애는 대신 시민적 활용 방안을 구축할 순 없나.
서사가 담긴 기사를 오랜만에 만나 반갑고 효용성에 사라지는 책은 어디로 가는가 궁금했는데 이 기사를 읽고 쓸쓸해집니다.
여담으로 이 기사를 쓴 이문영 기자님이 쓴 책 <웅크린 말들> 도 꼭 일독을 권합니다. 한국어에 빠진 그 단어의 의미조차 들어가지 못한 배제된 이들을 다룹니다.
바알 신앙의 요체를 '넘쳐 나는 제사, 약속된 풍년'이라고 표현합니다. 히브리어로 바알은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이 보는 바알 신앙은, 온 정성과 온 마음을 갖다 바치면 그 신은 예배하는 사람에게 풍성한 삶을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나요. 구약시대 사람들이 겁나게 유혹을 받았을 것 같아요. 윤리적인 삶이고 올바른 삶이고 다 필요 없어요. 그러니 자식 인신 제사까지 드리기도 하고, 신만 기쁘게 한다면 뭐든지 다 드린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바알 신앙은 전 세계 모든 종교 안으로 파고들어 종교를 변질시키고 있는 겁니다.
한 때는 기독교를 열렬히(?) 믿었지만 지금은 그만두었습니다. 차별금지법 반대와, 동성애 혐오 발언그리고 가부장제 때문이었지요.
교회를 한자 뜻 그대로풀면 모인다는 뜻이잖아요. 모인다는 게 같은 뜻과 목적을 위해 모인다는 것이지요. 뜻을 모은다면 무얼하죠, 세상에 나와 펼쳐서 의로운 사회로 돌려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관장하는 주체인 신을 섬김으로써 모인 집단이 교회라는 것인데, 안타깝지만 한국 교회는 그 목적이 신의 뜻이란 미명 하에 서로를 차별하려고 뜻을 모으는 집단이라 규정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심히 개탄스러운데요. 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하여 지은 으리으리한 예배당부터 몰래 돈을 횡령하는 목회자며 여성도들을 간음하고 추행한 목회자 혹은 혐오발언을 서슴치않게 하는 청년, 설교의 뜻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은근한 가스라이팅을 주입하는 목회자들에게서 둘러싸이다보니 저는 교회에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교회로 물론 0에 가까운 사회성을 얻고 나 같이 없는 놈도 신의 뜻으로 아껴주니 나도 누군가를 사랑으로 대해줘야지라는 태도는 배웠다만, 깊이 파고들수록 혐오하기 위해 이용한다는 생각에 두러웠던 것 같아요.
오히려 교회 밖을 나서니 성경에서 말하는 낮은 자리, 핍박받는 이들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안에 머무를수록 관념처럼 멤돌던 것들이 선명하고 저들을 위한 행동을 떠올리게 됩니다.
교회에 묻습니다. 기후위기,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동물권을 위해, 페미니즘을 위해,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교회는 무얼 하고 있나요. CCC, IVF등 큰 규모의 대학생선교연합은 어째서 그들만의 리그에 머무르는가요. 의미없이 역사에서 찬양을 부른다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동성애는 죄라고 윽박지른다고해서 사람들의 냉소는 그치지 않습니다. 교회 문자주의 안에서만 머무르느라 혐오를 학습하는 청년들이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필요한 수술이지만 투여대비 들어가는 비용은 많고 소득은 적고. 의사들도 먹고살아야하는데 돈이 안되니 기피하고 막상 환자들은 늘어가는데 이 접점을
좁힐 수 없으니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네요. 어느 편을 들기도 어렵고. 개선은 필요한데 현장은 나아지지 않으니 모두가 고통받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