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떼는 게 귀찮아서라도 라벨 없는 페트 음료를 택하는 입장에서 반가운 소식이네요.

소설은 현실을 다루는데, '국가적 경사', '한강의 기적' 같은 말을 하며 현실을 외면하는 이들도 있죠. 노벨상이 아닌 작품의 의의를 살펴야 할 역할임에도...

동네 서점은 재고 확보에서도 대형 서점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린다는 얘기를 접한 적 있어요. '출판계 호황'에 앞서 유통망의 불평등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 보여요.

제가 고등학생 시절 도서부로 활동했을 때 교육지원청이 각 학교 도서관에 보내는 공문이란 보통 예산이나 사업에 대한 것들로 기억해요. 직접적으로 특정 도서에 대한 폐기를 요구하는 경우는 없었고요. 어차피 각 학교에서 들여오는 책도 비슷하고, 교육지원청에 계신 분들 또한 바쁘신데 언제 각 학교 도서관의 서적 보유 현황을 챙기겠어요. 그런데 목록까지 보내고, 보유 현황을 묻는 상황은 이례적인 것이고 일선 학교에서도 적잖이 놀랐을 거라 생각해요.

폐기하라는 지시는 아니었으며, 개별 학교가 알아서 조치하는 것이라는 교육청의 변명은 궁색합니다. 블랙리스트는 실제로 무얼 규제하는 제도는 아닙니다. 일선에서 알아서 규제하도록 시키는 장치죠. 제가 고등학생 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작품 읽는다고 혼나는 시대가 올 거라 말하면 비웃지 않았을까요.

'순수한 시민'과 불온한 시민을 가르고 싶어하고, 불온하다 낙인 찍은 시민들이 사실 어떤 이들인지 이야기하는 것 또한 불온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네요.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섰다"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는 단순히 작품에 대한 평가만은 아닌 것 같아요. 불온하다 말하는 이들을 보면 더욱 그렇고요.

저는 투표권도 없는 경기도민인데 제가 다 서럽네요.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아이들에게 우산을 씌워주실 수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시길 바랍니다...

중국의 전기차 공유 업체들이 정부에서 보조금을 끊어 사업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전기차를 공터에 버려놓았던 일이 생각나네요. 제값 받고 사업 못할 바엔 그냥 버리는 게 더 저렴하다 여길 만큼... 책임 없음이 눈에 띄네요

“도심에서 시민들이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이색적인 체험“이 행사의 취지였다고 하는데, 도심이 아니라 어디서든 경험하기 어려운 경악스러운 체험이네요.

가령 ‘한중일’ 이렇게 세 곳을 칭할 때도 우리 정부는 한국 정부니 한국을 먼저, 그 다음 중국과 일본은 3국 정상회의 개최 순서에 따라 번갈아 표기한다고 하네요. 언론에서는 ‘한일중‘ 보다는 한중일이 입말처럼 굳어져 한중일이라 표기한다 하고요. 변하지 않는 건 우리 정부 측 인사는 한국을 가장 먼저 표기한다는 점이죠. 그런 점에서 한일관계라는 표현 대신 일한관계라는 말이 어색한 건 그 말이 익숙치 않아서 보다는, 우리 정부 측 인사인 주일대사가 그렇게 말해서인 것 같네요.

학생인권조례 얘기를 하고 싶어 가져왔습니다. 정근식 후보는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침해의 상관관계가 증명되지 않았으며, '학생인권법' 도입에 찬성합니다. 조전혁 후보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의무와 권리를 함께 명시한 '학생권리의무조례'를 제정할 것이라 합니다. 학생의 인권은 세상 누구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보장 받아야 하는 것인데, 마치 의무를 다해야 권리 또한 보장 받을 수 있는 일종의 보상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의무와 권리는 공존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자칫 의무를 다해야 권리를 말할 수 있다는 뜻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위축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민원 폭탄 넣어도 볼 사람은 다 결제해서 보는 21세기. 원래 못 보게 하면 더 보고 싶어지는 거 아닌지요 후후

이러다 교육감 후보도 정당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더해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대체 극단적 페미니즘 교육이 무엇이며... 극단적이라 여길만한 교육이 한국에 있긴 했었나요. 학교 내 성차별을 생각하면 제대로 된 교육을 하겠다 말해도 모자를 상황인데...

무슨 책을 읽으라고 권장도서 목록 만들고, 예산도 지원해주던 시대는 어디 가고 무슨 책은 읽지 말라는 취지의 정책만 남았을까요. 학생들에게 읽지 말라 해도 굳이 찾아 읽는 소중한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은 건지...

조선일보는 한강 작가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두고 “누가 그에게 한국인을 대변할 권리를 주었냐”라며 비판한 적 있었죠. 그러면서도 한국의 입장이라 상정한 ‘북한에 대한 충분한 비판이 없다’고 하는데, 한강 작가에 대한 트집 잡기에 가까운 비판도 이러한 사고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한강 작가가 한국 사회 전반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한 덕이라 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오히려 한강 작가는 한국 사회의 주류가 비추지 않는 이면 -이라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현실적인 것들- 을 비추고 있고요. 한강 작가의 작품을 깎아내리려 애쓰는 사람들은 왜들 그러는가 의아해서 찾아본 기사였습니다.

초저가와 덤핑의 시대는 환경을 담보로 한 장난질... 옷 사면 책임감 있게 오래 입읍시다

블랙리스트나 금지 목록에 오른 작품을 만든 이들... 한강 작가님 봉준호 감독님 등 수많은 분들의 훌륭한 작품과 성과를 보며 알 수 있는 사실: 부당하게 탄압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미감조차 별로다

개편안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본인 부담 비용이 평균 1.4배 가량 오른다고 합니다.

“내년에 자신이 얼마나 아플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의료비가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정률제를 엎지 않는 한 정률제에 대한 대안은 없다”

면허 대여나 명의 도용 후 기관 개설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닐 텐데요. 이들에 대한 금액 환수가 더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네요.